1992년 엘에이 흑인폭동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장 많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거의 한인들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한인들이 타인종들을 무시하는 무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어쩌면 내 생의 절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월을, 신혼여행때 말고는 한반도 안에서 보낸 나에게 정말 여러 인종들이 모여사는 미국이 신기하고 또 신기했을 이민 초기에, 이민 선배들이 타인종...
지금은 장난꾸러기 소년들이 되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둘다 애기였을땐 달리 놀아줄 게 없을 땐 놀이터가 가장 만만했다. 좀 놀다 해가 어스름해지면 같이 놀던 아이들도, 두런두런 사는 얘기 나누던 아파트 여자들도 하나 둘씩 다들 집으로 들어갔다. 퇴근할 남편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부러움을 하나 가득 안고 아이 둘과 같이할 저녁을 지어 먹으러 나도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늘상 회식에 쩔어...
어젯밤에 둘째랑 잠들기전에 한 약속을 지킨다고 남편은 아침부터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댤걀후라이를 두개나 했다. 그것도 바삭한 껍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여간 신경을 쓴 게 아니었다. 게다가 큰 녀석은 노른자가 안터진걸 먹기 때문에 흰자는 바삭하게 익히면서도 노른자는 안터트리고 다 익히지 말아야하는 그야말로 묘기대행진를 하면서 밥상을 함께 차렸다. 자고일어나서 밥술뜨기란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학교가서...
마흔번째 생일, 열세번째 결혼기념일 2009년 11월 22일 서른 넘기 전에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는 친정엄마의 룰 아닌 룰을 지키느라 한국 나이로 스물 아홉살 생일에 결혼을 했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까마득하게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잊어버리고 만취해서 들어오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만...어떻게 하다 보니 벌써 만으로 마흔살이 되고 한 남자랑 십삼년이나 살게 되었습니다.
두어해전부터 인연을 맺은 한미장애인협회 토요학교 친구들이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었다. 갖고 있는 장애들이 다 달라서 가르치기는 힘들지만 다섯명의 선생님들께서 수고해주시는 덕택에 성년이 되어서도 달리 즐길 일이 없는 친구들에게 토요학교는 아주 즐거운 만남의 장소이다.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한 십년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토요학교가 이제는 성인들 뿐만 아니라 취학전 ...
자전거...민행이 자전거가 새로 하나 생겼다. 삼년여전에 친정부모님들께서 다녀가시면서 스쿠터 하나씩, 그리고 첫손자인 민행이에게는 자전거를 하나 사주시고 가셨는데 한 삼년 잘 타다가 봄쯤에 도난을 당했다. 새벽녘에 없어진 게 너무 분명하다면서 온 식구가 다 열을 올리고 안타까워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