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다 날마다, 역사도 사람도 전주의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그래도 변하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 전주의 뿌리. 우리삶의 터전인 전주의 뿌리는 항상 그대로여야 한다. 그리고 그뿌리위에서 역사도 사람도 모습도 변모해간다는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잊고 있다. 전주의 뿌리를.. 잊고있는 전주의 뿌리를 찾는데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어 아주 작은실뿌리 하나라도 찾아내어 우리가 간직할 수 있다면 난 보람으로 생각한다. 이블로거를 만든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것인가를......
아름다운 사랑이란누구나 사랑을 시작하고사랑에 빠지게 되면세상의 온갖 만물이 다아름답게 느껴지고 가슴은 환희로 가득하다.그러므로 타인의 눈에커다랗게 보이는 상대의 결점까지도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며세상의 만물을 바라보는 눈이확 달라 지는 것이다.이세상에서자기 연인만이 가장 멋지고, 매력적이라고 믿으며 행복해 한다.이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면알 듯 모를 듯한 신비감이상대의 결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
한벽당은 승암산 기슭인 발산 머리의 절벽을 깍아 세운 누각으로서 옛 사람은 한벽청연이라 하여 전주 팔경의 하나로 꼽았으며, 그 서쪽 일대는 자만동 또는 옥류동이라 불리었다. 한벽당은 우리고장뿐만 아니라, 호남의 명승으로 알려져서 시인 묵객들이 그칠새 없이 찾아든 곳으로 제영한시가 많이 전해오고 호남 읍지에는 이경전, 이경여, 이기발, 김진상등 19명의 저명한 인사들의 시문이 담겨 있어 그 시절의 풍류를 살필...
전주향교는 조선조에 있어서 府 牧 郡 縣 곧 크고 작고간에 지방의 각고을마다 반드시 한곳씩 건립하여 유교에 의한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었다. 그 창건에 관해서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인종 5년에 여러 고을에 영을 내려 학교를 세워 도를 가르치라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私塾이나 서당 따위와는 달리 官學이라는 성격을 가진것이었다. 조선조의 향교는 반드시 文廟(문선왕조의 약칭)를 중심으로 하는...
가을이여 안녕/ 思 該 현 영진 찬바람이 메마른 가슴 파고들 때 문틈 사이로 겨울이 성큼 다가와 이유 없는 슬픔이 가슴을 적십니다. 가을은 성큼 뒷걸음치며 달아나고 소리쳐 불러도 목소리는 저 담장 너머 휘날리는 낙엽과 함께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앙상한 모습 메마른 나무 가지가지마다 계절이 길목에 시린 가슴 풀어놓고 아픈 그리움 구구절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눈물 젖은 낙엽 위에 못다 쓴 편지를 써 봅니다. 아직...
조경단은 전주덕진에 있는 건지산에 있다. 이곳은 전주이씨 시조의 묘소로 정해져 1896년(광무3년)5월에 단을 쌓고 조경단이라 부르기로 하고 비를 세운 것이다. 이는 경기전과 그 뒤 영조때에 창건한 조경묘와 함께 전주가 왕조 이씨의 발상지라는 의의를 한층 현실화 하는 조치였다. 이는 갑오 동학군의 전주부성 점령으로 전주를 성역화 하려는 기운이 팽배해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조경단을 쌓은 다음해에 ...
조경묘는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공과 시조비의 위관을 봉안한곳이다. 1771년(영조47)에 창건된 것인데 현재 경기전 구내 북편에 위치한다. 전하는 바로는 전주이씨는 전주에서 발생하였다 하나 당시까지만 해도 시조묘가 없었다. 이한공은 벼슬이 신라사공으로 전주동교의 발산아래 자만동에 거주하였다 하는데 이태조의 21세조에 해당한다. 태조의 4대조 이안사가 강원도 삼척을 거쳐 함경도 덕원땅에 옮겨갈때까지 19대를 전...
경기전은 조선왕조의 창업주인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현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안 동남쪽에 자리하여 넓은 면적을 점유하고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그 서쪽 대지 절반 이상을 학교부지로 쪼개어 부속건물 일체를 허물어 버렸다. 전주에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것은 1410년(태종10년)으로서 당시에는 경주 편양과 함께 어용전이라 부르다가 태종 12년 11월부터는 진전이라 개칭하였다. 이로부터 33년이 지난 1442년(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