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속에 파 묻혀 있던 보석 같은 힌두 신전

 

 

 

 

마말라푸람 해안석조사원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매료되어 있던 나는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파이브 라타(Five Ratha)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섯 개의 라타는 판치 라타스(Panchi Ranthes)라 불리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파이브 라타로 부르기로 한다. 파이브 라타는 해안사원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다.

 

노을이 아름답게 물드는 한적한 해안 길을 걷는 기분이 퍽 고무적이다. 오랜 옛날에는 왕들이 신에게 참배를 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에는 허물어져 가는 석조사원이 한 때 영화로웠던 세월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간은 기아무도 다려 주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저 모든 것이 사라져 갈 뿐이다.

이 우주상의 모든 만물은 항상 돌고 변하며 잠시라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저 석조사원도 언젠가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만 안타까움이 뇌리를 스쳐간다.

 

해안의 모래톱을 걸어가는데 푸른 바다에서 한줄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점점 멀어져 가는 해안사원을 뒤로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나는 파이브 라타에 도착했다.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라 서둘러야 한다. 파이브 라타는 입구에서 250루피의 입장료를 받았다.

 

그런데…

파이브 라타 입구를 들어서자

"이럴 수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곳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석 같은 유적들이 고즈넉이 들어서 있었다. 고풍스러움, 화려함, 균형미, 배치의 비례, 안정감이 넘치는 사원은 그 어떤 수사를 동원해도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파이브 라타 사원군은 마치 작은 조각공원을 방불케 한다. 돌로 빚어낸 신전들이 따스한 석양 빛을 받으며 고색 찬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 유적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19세기 영국 통치시기에 발굴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파이브 라타(Five Ratha)는 인도의 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판다바(Pandahava)의 다섯 형제 이름을 본 따 지은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드라우파티 라타(Draupati Ratha),

아르주나 라타(Arjuuna Ratha),

비마 라타(Bhima Ratha),

다르마라자 라타(Dharmaraja Ratha),

나쿨라 사하데바 라타(Nakula sahadeveva Ratha)가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다.

 

 

 

 

'라타(Ratha)'는 '화려한 가마'를 뜻한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의 행상의례를 할 때 사원에 모셔둔 신상을 화려한 가마에 싣고 가두행렬을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가마를 '라타'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라타는 신을 태운 가마를 말하며, 힌두의 신들이 이동을 할 때에 타고 다니는 신전 또는 궁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판다바의 다섯 형제를 그린 신전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 바라타 왕조'라는 뜻을 가진 마하바라타는 BC 1400~1000년경에 실제 일어났던 사촌지간인 판다바의 형제와 카우라바의 형제간에 권력 쟁탈전을 그린 힌두 신화이다. 총 20만 개가 넘는 운문, 250만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마하바라타는 인도 판 '그리스 로마 신화'같은 존재이다.

 

마하바라타는 그 양도 방대하려니와 내용 또한 난해하여 접근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만 인도를 여러 차례 드나들다 보니 이슬비에 옷이 젓 듯 힌두문화에 대한 내용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남인도에 오면서 힌두 문화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 나는 '크리슈나 다르마'가 지은 소설 '마하바라타'를 읽기 시작했다. 마하바라타를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소설화한 이 작품은 신화, 전설, 종교, 철학, 도덕, 법제, 전쟁, 사회제도를 비롯하여 힌두교 기본 교의인 다르마와 카르마, 해탈, 윤회까지 방대한 내용을 소설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크리슈나 다르마는 마하바라타의 원저자인 비야사 데바의 학풍을 이어 받은 산스크리트어 학자라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1권, '주사위가 던져지다'와 2권, '시련'편을 읽고, 3권(전쟁)과 4권(해방)은 여행배낭에 넣어왔다. 그리고 장거리 여행을 할 때마다 틈틈이 조금씩 읽곤 했다. 특히 이곳 마말라푸람에 산재해 있는 고대 드라비디언들의 힌두유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하바라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마하바라타는 명문 바라타 왕국의 사촌간인 판다바 형제들과 카우라바 형제들간의 18일 간의 걸친 전쟁을 그린 내용이다. 소설의 내용은 선을 상징하는 판다바의 다섯 형제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악을 상징하는 카우라바 형제들을 물리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양쪽을 지원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흔히

 

"세상의 모든 것이 마하바라타에 있고,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세상에도 없다"

 

고 말을 한다. 그만큼 마하바라타가 후세 인도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인, 시인, 극작가들도 이 서사시를 근거로 문예작품을 남겨왔으며, 많은 조형미술도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그려내고 있다. 이곳 파이브 라타 사원도 바로 이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판다바의 다섯 형제 이름을 본 따서 조각을 한 것이다.

 

초입에 들어서니 자연암석이 고인돌처럼 아무렇게나 서 있다. 이 해안에는 이 암석보다 훨씬 거대한 바위들이 자연석 상태로 서 있었을 것이다. 석공들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망치를 들고 끌과 정으로 바위를 찍고 깎아내어 사원을 조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석공들의 피와 땀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신의 거처가 탄생한 것이다.

 

단일 바위에 조각한 드라비디언 석조예술의 극치

 

입구의 자연석 바로 옆에는 하나의 바위에 조각된 드라우파티 라타가 서 있다. 규모는 작지만 마치 우리나라 초가지붕을 이은 원두막처럼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두르가의 여신을 모신 사원으로 건물 앞에는 두르가가 타고 다녔던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두르가는 사자를 타고 물소마신 마히쉬아수라를 물리친 여신이다. 내부 벽에는 중앙에 오른 손을 번쩍 든 두르가 여신이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는 두르가 신을 경배하는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위쪽에는 난쟁이 신 4구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드라우파티 라타

 

 

▲비슈누 신전

 

 

두르가 신이 타고 다녔다니는 사자상

 

 

아르주나 라타

 

드라우파티 라타 바로 옆에 위치한 아르주나 라타는 방형 피라미드 형식의 3층 석조 건물로 이 역시 하나의 바위에 조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4면의 기단에는 각종 동물상을 조각하여 배열하고 상부에는 시카라로 보이는 왕관 형태의 대형 관석을 입혀놓고 있다.

 

건물 뒤에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란디가 조각되어 있다. 흔히 난디 상은 신전 앞에 있기 마련인데, 자연석을 놓여있는 그대로 조각을 하다 보니 뒤쪽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뒤쪽에 배치된 난디상이 오히려 더 정감이 간다. 그 난디상 위에는 원색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인도의 여인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난디상

 

 

비마 라타는 종방향 전후 면에 개방형 열주를 설치하여 신전의 기능을 한층 강화한 느낌이 든다. 사원 2층에는 차이티아(caitya, 고대 인도에서 암굴사원, 탑 등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양식으로 원통형 맞배지붕에 환기창을 만들어 멀리서 보면 마치 스투파처럼 보인다. 사원내부에는 '누워 있는 비슈누 상'이 미완성인 형태로 남아 있다.

 

 

 

비마 라타

 

 

우측 끝에 건축된 다르마라자 라타는 높이 10.6m에 이르는 4층 건물로 파이브 라타 중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바위를 이렇게 조각했을까? 각 층 창문마다 인물상을 조각해 넣고, 열주에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상단에는 성소를 조각하여 시바와 파르파티, 태양신 수리야와 번개의 신 인드라를 모시고 있다. 다섯 개의 라타 중에서 유일하게 나라심하 바르만 2세(630~668)를 칭송하는 내용이 기록된 흔적이 남아 있어, 이 사원이 바르만 2세 시기에 축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르마라자 라타

 

 

비마 라타 앞에 위치한 나쿨라 사하데바 라타는 번개의 신 인드라를 모신 3층 규모의 신전으로 규모는 작지만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건물의 우측에는 인드라 신이 타고 다녔다는 거대한 코끼리 사이 실제 크기로 조각되어 있다.

 

 

나쿨나사하데바 라타

 

 

신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어우러져 있는 파이브 라타는 평화롭게만 보인다. 파이브 라타를 숨바꼭질 하듯 유유자적하는 사람들도 모두 선인들처럼 보인다. 모래 속에서 천년 넘게 잠들었던 파이브 라타는 재질이 단일 자연 암산인 섬록암(閃綠岩, diorite)을 깎아 건축한 것이다. 섬록암은 화강암보다 더 단단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다섯 개의 라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일직선상에 수레 행렬 형태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우주상의 모든 만물은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게 되어 있다. 천 년이 넘게 보존된 이 파이브라타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불타는 이 세상의 모든 유위(有爲)한 법은 꿈이요, 환상이며,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번개와 같은 존재라고 설파했을까?

 

나는 파이브 라타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담장을 따라 사원을 다신 한 번 둘러보았다. 사원의 마당에 내 그림자가 환영처럼 길게 드리워졌다. 해가 지면 그림자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옛 것을 보면 마치 고향을 찾은 느낌이 든다. 정말 따스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파이브 라타 마당에 길게 드리운 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