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쌍릉(소왕릉)에서 문자없는 묘표석 2개 발견

 

 

- 발굴현장 설명회 / 9. 20. 오후 2

 

    


 

 

문화재청과 익산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시행한 익산시 석왕동 6-11번지 일원 쌍릉(사적 제87) 발굴조사 중 소왕릉에서 묘표석이 확인돼 20일 오후 2시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대왕릉과 소왕릉을 합친 쌍릉은 문헌에 의하면 마한 무강왕혹은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 능으로 알려졌고, 고려시대 도굴기록도 남아 있는데 1917년 일본인 학자(야쓰이 세이이쓰, 谷井濟一)에 의해 발굴됐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20178월부터 고분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조사가 진행됐다.

 

 

소왕릉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94월 고유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봉분과 묘도 축조과정과 양상을 파악했으며, 일제강점기 발굴흔적과 이전 도굴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목되는 것은 국내최초 왕릉급 고분에서 두 종류 묘표석이 발견된 점으로 석비石碑형과 석주石柱형이 나왔는데, 석비형은 일반 비석과 유사형태로 석실 입구에서 약 1미터 떨어진 지점에 비스듬히 세워진 채로 확인됐으며, 길이 125, 너비 77, 두께 13이며, 석실을 향한 전면에는 매우 정교하게 가공됐고, 뒷면은 약간 볼록하다.

 

 

석주형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봉토 내에 뉘어진 상태로 발견돼 원래 위치인지는 불분명하나 길이 110, 너비 56기둥모양으로 상부는 둥글게 가공됐고, 몸체는 둥근 사각형 형태다.

 

 

이들 두 묘표석은 문자가 새겨지지 않은(무자비無字碑)로 발견됐는데 석주형과 비슷한 예는 중국 만주 집안集安 태왕릉 부근 고구려 봉토석실분인 우산하禹山下 1080호 봉토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 발견된 묘표석은 각각 석실입구와 봉토 중에 위치하고 문자가 없어 무덤수호 진묘鎭墓와 관련된 시설물로 추정되며, 장묘제 연구에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익산 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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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원문>

 

익산 쌍릉(소왕릉)에서 문자없는 묘표석 2개 발견

 

- 발굴현장 설명회 / 9. 20. 오후 2-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익산시(시장 정헌율),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가 시행한 익산 쌍릉(사적 제87) 발굴조사 중 소왕릉에서 묘표석이 확인되어 20일 오후 2시에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 발굴현장: 전북 익산시 석왕동 6-11번지 일원

 

* 익산 쌍릉(사적 제87): 익산시 석왕동의 백제 시대 무덤으로,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가량 서로 떨어져 있음

 

 

익산 쌍릉은 문헌 기록에 의하면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 능으로 알려져 왔고, 고려 시대에 이미 도굴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들 두 고분은 1917년 일본인 학자(야쓰이 세이이쓰, 谷井濟一)에 의해 발굴된 바 있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20178월부터 고분의 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조사가 진행되어 왔다.

 

 

소왕릉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94월 고유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봉분과 묘도의 축조과정과 양상을 파악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발굴 흔적과 그 이전 도굴 흔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내 최초로 왕릉급 고분에서 두 종류의 묘표석이 발견된 점이다. 석비(石碑)형으로 된 것과 석주(石柱)형으로 된 것이 나왔는데, 석비형 묘표석은 일반적인 비석과 유사한 형태로 석실 입구에서 약 1미터 떨어진 지점에 약간 비스듬하게 세워진 채로 확인되었다. 크기는 길이 125, 너비 77, 두께 13이며, 석실을 향하고 있는 전면에는 매우 정교하게 가공되었고, 그 뒷면은 약간 볼록한 형태다.

 

석주형 묘표석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봉토 내에서 뉘어진 상태로 발견되어 원래 위치인지는 불분명하다. 길이 110, 너비 56의 기둥모양으로 상부는 둥글게 가공되었고, 몸체는 둥근 사각형 형태다. 이들 두 묘표석은 문자가 새겨지지 않은(무자비, 無字碑) 형태로 발견되었다. 참고로 석주형 묘표석과 비슷한 예는 중국 만주 집안(集安) 지역의 태왕릉 부근에 있는 고구려 봉토석실분인 우산하(禹山下) 1080호의 봉토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 묘표석들이 나온 소왕릉의 봉분은 지름 12m, 높이 2.7m 정도로,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사질점토를 번갈아 쌓아올린 판축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대왕릉 판축기법과도 유사하다. 석실은 백제 사비시대의 전형적인 단면 육각형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이다. 석실의 규모(길이 340, 128, 높이 176)는 대왕릉의 석실 규모(길이 400, 175, 높이 225)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측벽 2, 바닥석 3, 개석(덮개돌) 2, 후벽 1, 고임석 1매의 구조 짜임새는 동일하며, 석재 가공 역시 치밀한 편이다.

 

연도는 길이가 짧은 편으로, 연도 폐쇄석과 현문(현실 문) 폐쇄석이 두 겹으로 구성되어 대왕릉과 같은 양상이다. 소왕릉 석실의 바닥에는 관대(길이 242, 62, 높이 18)가 놓여있었다.

 

* 연도(羨道):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 현실(玄室): 시신을 안치한 방

 

* 관대(棺臺): 무덤 안에 시신을 넣은 관을 얹어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널받침)

 

 

묘도는 석실 입구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규모는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 현재까지 확인된 길이는 10m 가량이다. 일정한 성토(盛土,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기술)를 통해 묘도부를 조성한 후 되파기한 걸로 판단된다. 폐쇄부는 점질토와 사질점토를 번갈아 쌓았다. 묘도부 10m 지점 끝단에서는 다듬은 석재를 이용해 반원형상의 석재를 놓아 묘역의 범위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석실 천장의 북동쪽 고임석(천장부를 받치는 석재) 부분에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들어진 길이 68, 높이 45정도의 도굴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 묘도(墓道):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체를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

 

 

소왕릉은 선화공주와 관련된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분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번 발굴에서는 이와 관련된 적극적인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봉토나 석실의 규모와 품격에 있어서 왕릉급 임을 확인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묘표석은 각각 석실입구와 봉토 중에 위치하고 문자가 없는 점에서 무덤을 수호하는 진묘(鎭墓)와 관련된 시설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백제왕실의 장묘제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남은 조사와 인근 대왕릉과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주인공의 실체가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익산시와 함께 쌍릉을 비롯한 익산지역 핵심유적에 대한 단계적인 조사를 통하여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보존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