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 앨런 어윈 지음, 김명진 외 옮김, 당대, 2011.

 

 

일본 후쿠시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자 기다렸다는 듯 환경운동가들이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쳤다. 25년 전 체르노빌의 사례까지 들먹이며 선동하는 소리를 듣자니 관련 과학자들은 속이 터진다. “저런! 과학도 제대로 모르면서 저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대안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는 소리잖아!” 많은 제자를 키워낸 원로 과학자는 체르노빌 사건 이후 요즘처럼 시민들과 언론이 과학을 노골적으로 불신했던 시기가 또 있었나 싶다. 풍부한 연구 실적으로 학계에서 존경받는 과학자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환경활동가의 전공이 궁금할지 모른다.

 

GMO 논란이 거셌을 때, 한 과학자는 취재에 나선 기자들에게 과학을 좀 공부하고 질문해달라고 하소연했다.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질문 공세에 지쳤다는 표정이 역력했는데, 사실 고등학교 시절 생물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대학생에게 방사선에 의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DNA 염기서열과 단백질 합성의 관계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염색체가 왜 한 쌍인지, 어떻게 유전되는지 알지 못했던 대학생이었다. 그들이 과학을 조금도 공부하지 않고 언론고시에 패스하고 나서, 오로지 특종을 위해 환경활동가의 거침없는 발언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기자로 변신한 현실이 일선의 과학자들은 영 마뜩치 않을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과 일부 정치인들의 다분히 의도적인 역사 왜곡에 진저리를 쳤는지 교육과학부장관이 역사를 드디어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과학은 왜 선택이어야 하나. 기자든 대중이든, 여전히 과학을 모르니 비과학자들의 무책임한 선동에 쉽게 놀아나는 게 아닌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과학을 계몽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될만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생각해보자. 많은 연구비를 받는 저명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할 정도로 복잡하고 거대해진 분야가 현대과학이다. 그러므로 정작 입학시험에 필수가 아닌 역사와 달리 과학과목이 필수가 된다 해도 대중이 그 복잡한 현대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원로 과학자들도 충분히 이해하긴 할 것이나, 다만 과학을 이해하려 노력도 하지 않은 기자가 거침없이 과학을 맹공격하는 환경활동가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걱정스러울 따름일 게다.

 

저러다가 전국의 시민들이 현혹되고, 그 결과 유권자의 동향에 민감해 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까지 과학을 부정하고 나서는 게 아닐까. 원로 과학자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여전히 과학을 신뢰한다. 그렇다고 환경운동가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과학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을 수 있다. 같은 대학의 같은 학과에서 함께 근무하는 과학자도 전공이 다르면 점점 복잡해지는 과학용어나 단위를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대중은 잘 모를 수 있는데, 대중 앞에서 과학을 쉽게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는 과학자도 그 시실을 잊으면 곤란하다. 대중의 문제의식을 무시할 개연성이 높아질 수 있는 탓이다.

 

한데 어떨까.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선 환경활동가는 과학 자체를 비판하고, 기자는 서슴없이 내뱉는 환경운동가의 말만 여과 없이 보도하는 걸까. 기자나 환경운동가가 복잡한 현대과학을 전공, 또는 공부하지 않았다고 그들의 주장에 과학적 합리성이 없는 걸까. 언제부턴가 과학이 시민 곁에 머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대중은 언론이나 환경운동가의 선동이나 주장과 관계없이,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은 대중의 인식을 분명히 선도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중이 가지는 상식 안에서 움직인다. 그건 환경운동가도 마찬가지다.

 

세금으로 조성한 막대한 연구비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연구가 왜 필요하고 그 결과가 자식 키우는 시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는 과학자들은 보기 드물다. 언론이 제대로 취재를 하지 않아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과학을 모르는 기자와 시민단체 활동가의 비판을 듣기 싫어하면서 그저 똑똑한 우리를 믿으면 된다는 투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소외된 대중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연구자금을 필요로 하는 과학일수록 과학은 시민사회와 동떨어지면 안 된다. 이익은 멀어도 피해는 가깝지 않은가. 적어도 시민사회에 영향이 큰 과학이라면 시민들의 관심사와 판단에서 합리성을 찾아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시민과학에서 앨런 어윈은 과학은 시민에게 복무하고 있는가?” 묻는다. 과학을 알든 모르든, 전공했든 아니든, 시민들과 환경운동가, 그리고 언론과 과학자까지, 과학은 자신의 분야를 시민사회에서 방향을 잡고 제 오지랖을 넓혀야한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친다. 대중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간에서 열심히 과학을 연구했을지라도 시민의 주장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시민과학시민과학센터에서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화두로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려 애쓴 젊은이 세 명이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이들은 대중을 무지하고 감정적인 존재로 본 과학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과 시민의 관계를 대칭적으로 이해하려는 서유럽과 달리 여전히 낡은 관념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어느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시민과학을 대중과 기자와 환경운동가는 물론 과학자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사실들의 묶음인 동시에 합리적 사고의 개념틀임에 분명하지만 시민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대안적 방식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과학의 저자는 새롭게 등장한 시민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과학자의 일방적 과학주의 시각에 도전하겠노라 선언한다. 1995년에 꺼낸 말이다. 시민을 그저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 이른바 근대성에 대한 도전이다.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과학의 오만함에 반기를 드는 대중의 회의적 태도를 지지하는 앨런 어윈은 기술의 비극을 거듭 촉발하는 현대과학은 자기비판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민중을 위한 과학, 다시 말해 시민과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든 싫든, 시민들의 문화에 반영되는 것이 과학인만큼 과학은 시민의 생각이 포괄하는 과학적 합리성을 주목해야 옳다고 보는 까닭이다.

 

2,4,5-T 제초제의 사례를 보자. 제시한 용법에 따라 사용한다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농약자문위원회는 실무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않는 관련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지만 현실은 어떨까. 농장에 부는 바람이 언제나 사용자를 향하지 않는 건 아니다. 현실은 농도를 정확히 맞출 수 없게 할 때가 많다. 그 결과 장애아를 낳게 된 노동자는 고용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위해성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과학적 자료를 희생자에게 요구하는 관련 과학자의 자세에 크게 실망한 농업계통노동자연맹은 문제의 제초제 사용금지와 규제 강화를 위한 투쟁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앨런 어윈은 썼다. ‘사실로 무장한 과학자비합리적인 시민집단사이의 충돌로 치부된 광우병은 우리나 영국이나 큰 사회적 논란과 비극을 낳았다. 한데 안타깝게도 과학자가 주도한 광우병 논쟁의 결과는 200명에 가까운 영국인이 광우병으로 사망하게 하고 수백만 마리의 소를 살처분하게 하는 현실로 이어져야 했다.

 

시민과학25년 전 체르노빌의 돌이킬 수 없었던 사고를 계기로 등장한 위험사회관념을 돌이키며 시민 기반의 지식과 이해를 지향하는 과학지식사회학을 제시한다. 과학의 정책결정에 배제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논쟁조차 정당하게 기여할 수 없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온 보통 시민들의 지식에서 과학정책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예는 최근 들어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시민들이 납득할 수준으로 충분한 시간 동안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하는 공청회나 폭넓은 사회적 논쟁을 이끌어내는 구성적 기술영향평가의 예를 시민과학은 주목한다. 아울러 그 실천적 대안으로 북유럽의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과학상점의 사례를 제시한다. 어려움을 처한 시민들의 과학적 궁금증을 과학자가 시민과 함께 해결하는 프로그램은 시민과학을 지향한다. 결국 과학은 시민에게 답을 구해야 한다는 거다.

 

시민과학은 과학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일상에서 과학을 재구성하자고 주장한다. 그를 위해 주요한 사례를 중심으로 놓고 심도 있는 논증을 이끌어내는데, 이 척박한 환경에서 젊음을 바치며 행동하는 이 땅의 옮긴이들이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영상문화에 익숙해진 대중이 얼른 이해할 정도의 수준은 넘어선다. 따라서 시민의 처지에서 과학을 이해하고 환경운동에 몰입하고자하는 활동가, 또는 시민을 위한 과학에 매진하고자 입문한 과학도에게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시민과학을 읽고 힘을 얻으면 초심을 잃지 않는 시민과학자로 자신 있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시민과학자가 대중의 곁에 많을수록 과학이 저지르는 끔찍한 실수는 줄어들 게 분명하니까. (사이언스타임즈, 201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