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두려운 핵동맹의 이데올로기

 

지난 427, 영덕군민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영덕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예정구역 지정사업 환경성 검토서 초안주민공람 및 설명회’(이후 주민설명회)가 무산되었다. ‘환경정책기본법의 시행령에 분명히 개최 14일 전까지 중앙일간신문과 대상 지역의 일간신문에 1회 이상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되었지만, 7일 전에 공고했고, 지역신문에 공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설명회를 서둘렀다. 그뿐인가. 불법성을 지적하는 주민에게 소화기를 난사하는 폭력이 자행되었지만 경찰은 폭력 가담자가 아닌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 쓴 주민들을 연행하는 공적 폭력을 수행했다.


신규 핵발전소 유치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은 법정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대학교의 사회과학 전공 교수가 영덕과 삼척 주민을 대상으로 연구해, 주민 의견 수렴이 불충분한 것으로 밝힌 것이다. 주민 참여에 의한 숙의 과정은 생략되고 관 주도로 형식적 절차가 강행되었다는 게 아닌가.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주민설명회장에서 업무방해로 주민을 고발했고 경찰이 하는 수 없이 개입한 것처럼 둘러댔지만, 용역이 미리 점거한 주민설명회장 안처럼 밖에도 경찰이 진작 대기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핵폭탄원자력발전’, 전쟁과 평화적 목적으로 달리 사용한다는 그 두 가지는 다를까. 40여 년 전, 각 급 학교는 핵에너지라 했다. 우라늄의 핵이 분열하면서 얻는 에너지기 때문에 핵발전소라 했건만, 언젠가부터 원자력발전소로 이름을 슬그머니 바꿨다. 하지만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핵발전이 위험하다는 사실, 핵발전소를 추진하려는 이들은 애초부터 모르지 않았다. 그러기에 관련 정보를 독점하면서 폭탄과 발전소가 다른 듯 선전하며 절대 안전신화를 민중에 주입했던 것일 터. 하지만 터뜨리지 않았던 핵폭탄과 달리 핵발전소는 크고 작은 사고를 숱하게 냈다.


핵무기에 들어가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데 더 없이 좋은 수단은 핵발전소가 제공한다. 핵이 분열되면서 우라늄이 플루토늄으로 바뀌기 때문에 원심분리로 정제하면 비용도 대폭 줄이면서 막대한 양의 핵무기 원료를 확보할 수 있다. 핵을 평화적인 발전소 원료로 사용하자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이후,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유의 설명이기도 하다. 미국의 독보적 패권을 위해 동맹국에 핵발전소를 적극 지원해온 결과다. 그 시절부터 미국은 동맹국의 핵발전소 유치를 적극 지원했다. 두둑한 장학금으로 과학영재에 유학 기회를 제공했고, 되돌아간 동맹국에서 고위 관료가 된 과학영재는 미국이 원하는 정책에 호응했다. 우리와 일본이 그랬다.


미국의 의도적 지원으로 막대해진 동맹국의 자본과 권력은 과학영재를 충원하며 핵발전소를 추진하면서 교육과 언론을 적절히 활용했다. 안전할 뿐 아니라 무궁무진한 핵에너지는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세뇌했다. 군사정권에 의해 막무가내 추진된 우리나라는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억압하면서 정치와 자본, 언론과 학계가 쉽게 결속했다. 핵산업 동맹관계(이후 핵동맹)를 맺으며 세력을 거듭 확장할 수 있었다. 미국 드리마일과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하자 이름을 원자력으로 바꾸며 규모를 거듭 키웠다. 몸집이 막대해진 핵동맹은 군사정권이 물러난 뒤에도 발전소를 홍보하는 기금을 전기요금에서 떼어내 언론을 동원하며 민중을 교묘하게 세뇌했다. 오로지 자기 이익의 확대를 위해.


한번 결속한 동맹은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다. 권력과 돈과 시간과 정보를 독점하는 그들은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숨기지 못하면서 핵동맹에 이의를 다는 자가 생기면 드러난 사실까지 왜곡하며 모종의 조치를 취한다.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법을 입맛에 맞게 개정한다. 돈으로 회유하다 안 되면 공권력을 동원해 구속하고, 전문가를 내세워 문제가 없다고 윽박지른다. 간혹 자신들이 주도한 법률을 어기지만 그 때문에 맥동맹이 와해하는 경우는 없다. 길들어진 언론과 공권력이 침묵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주민설명회의 부당함을 일체 보도하지 않는 언론과 소화기를 난사한 용역이 누구인지 알아도 꿈쩍하자 않는 영덕의 경찰이 그 증거다.


핵동맹만이 아니다. 위험성을 알아도 계속 재배하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 비윤리성을 외면하며 막대한 예산을 쓸어담는 배아복제, 세계 식량구조를 더욱 왜곡시키는 바이오연료,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멈출 생각이 없는 실험동물, 지구온난화 예방에 효과가 높은 갯벌을 훼손하는 조력발전, 확장하는 중국을 미군이 겨눌 제주도 강정의 해군기지, 줄줄 강물이 새는 대형 보로 상류 지천을 거듭 침식하게 만드는 4대강 사업, 헤아리자니 끝도 없는 분야들이 동맹의 목록이다. 모순이 드러나도 동맹은 여간해서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느낄수록 몸집을 키우려 서슬을 번득인다.


핵발전소를 지으려는 핵동맹은 무산된 주민설명회를 영덕에서 다시 시도할 것이다. 이미 1995년 굴업도에 핵폐기장을 강행하려 했을 때 그랬듯, 용역 대신 핵동맹에 목줄이 잡힌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대거 동원할지 모른다. 자신의 지원으로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용역들을 여전히 동원할 핵동맹은 반대하는 주민들을 한명 씩 회유하거나 협박하는데 활용할지 모른다. 모름지기 동맹들은 여태 그래왔다. 동맹의 하청을 받으며 모종의 언질까지 받은 용역은 거리낌 없이 불법과 탈법을 자행할 것이다. 불더미 용산참사에서 보았듯, 앞으로 소화기 난사는 애교에 불과할 것이다. 불법과 탈법이 도를 넘어, 너그럽던 언론이 양심 가진 기자의 취재와 보도 요구를 못 이긴다면, 핵동맹은 마지못해 꼬리 자르기에 나설 것이다.


핵동맹이 굳건하면 할수록 핵발전소의 안전은 등한시될 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해 핵발전소를 투명하게 통제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수장에 핵발전소 확장을 위해 몸이 달아오른 사람을 앉힌 우리와 같은 국가는 안전을 장담하기 더욱 어렵다. 핵동맹은 하청을 좋아한다. 그래야 책임 소재에서 희석되기 때문이지만, 제 몸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지 않던가. 용역도 하청이지만, 핵발전소 짓고 운영하는 동안 이어지는 하청은 핵동맹의 주요 경영 수단이다. 하청에 재하청이 반복될수록 책임은 물론이고 안전의식도 실종되기 일쑤다. 우리는 물론이고 이미 핵발전소가 폭발한 일본과 미국도, 아직 폭발 전인 영국과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폭발해도 책임질 이가 없다는 점을 공유한다. 핵발전소 사고 원인이 제각각인 이유를 성명한다. 납품 비리가 만연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누가 시켜서 반대운동을 하는지 핵동맹은 그게 늘 궁금하다. 촛불집회의 자금을 누가 제공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핵동맹의 의식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인 까닭이다. 폭발되는 한이 있더라도 핵발전소를 절대 끄거나 폐쇄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들은 촛불이 두렵다. 촛불이 모이면 사색이 된다. (작은책, 2012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