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일정액의 돈을 거저 준다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최광은 지음, 박종철출판사, 2011.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른바 시카고 보이라고 일컫는 시카고대학교 경제학자의 거두, 고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말이다. 선물이든 무상원조든, 대가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시도된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서울역 광장에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노숙자에게 천원 지폐를 뿌리는 사내를 보았다. 비굴한 머슴에게 일당 나누어주듯 거만했던 그는 노숙자의 건강이나 영양 상태를 걱정한 것이라 믿기 어려웠는데, 노숙자가 나중에 점심을 살 거로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번져나가면서 많은 국가들이 통화량이 줄어 어려움을 겪을 때, 호주는 자국민에게 적지 않은 현금을 제공하며 국내외 여행을 권한 적 있다. 언뜻 세금 낭비 같았는데, 왜 호주는 국제여행까지 권했을까.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서 분석할 역량이 없는데, 목적지에서 돈을 쓰는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해외여행 준비로 적지 않은 돈을 쓸 테니 국내의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긴 되었을 것 같다. 호주 여행자를 만나 친해진 외국인이 답방을 와 돈 푸는 걸 기대했을지 모른다. 막혔던 통화량이 늘어나면 경기가 회복되는 건 상식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민이나 주민 모두에게 기초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을 거저 준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여름철 새벽 식당가에서 악취를 참아가며 음식쓰레기를 치워내던 청소원들은 더는 고된 일을 하지 않을 테니, 그 골목은 지저분해질까. 질문을 받은 대부분은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넘쳐 세상은 어지러워질 것으로 염려했다고 한다. 그러자 질문자는 되물었단다. 당신이라면 일을 버리고 빈둥거릴 것인지를. 그러자 이번엔 대답이 달랐단다.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노라고. 거의 한결같이.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 불특정다수에게 일정액의 돈을 거저로 나누어줄 리 없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다르다. 공익에 꼭 필요하다면 조건을 달지 않고 일정액의 돈을 나누어준다. 노인이나 취약 계층에게 제공하는 돈은 내버리는 게 아니다. 그들이 기초 생활을 위해 돈을 쓰면서 지역이나 국가의 경제는 그만큼 활기차게 된다. 모든 계층, 빈부 격차를 따지지 말고, 남녀노소는 물론 외국인과 중환자실의 환자까지 일정액의 돈을 그 지역에 살아 있는 동안 지불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 생활이 안정적이 된 이는 자신의 의지와 거리가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까.


“21세기 지구를 뒤흔들 희망 프로젝트로 부제를 단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은 보편적 복지로 논의를 제한할 책이 아니다. 저자 최광은이 사회당의 핵심 인사였지만 사회당의 강령에 충실한 책도 아니다. 아이의 장래든, 자신의 노후든, 기초 생활이 가능한 돈이 보장돼 있다면, 그 사람은 접어두었던 자신의 일을 찾아 신바람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택융자금을 갚으려 4대강의 모래를 퍼내 재앙을 일으키는 일, 자식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 방사능 농도가 심각한 원자로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4대강은 여전히 금모래은모래를 펼치며 굽이칠 테고 전기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얻었을지 모른다.


1980년대 중반, 유럽에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된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이에게 제공하는 일정액의 돈을 말한다. 최광은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에서 세계 최초로 일부 실시하는 브라질의 사례와 전 국민에게 본격적으로 확장할 것을 검토하는 나미비아의 예를 들며, 미국 알래스카 주의 사례도 살펴본다. 건강검진과 예방주사, 그리고 청소년의 등교를 조건으로 저소득 계층에 제공한 기본소득은 브라질의 빈부와 문화 격차를 단숨에 해소하게 했다. 가진 자에게 착취당하거나 범죄 집단에 휩쓸리지 않았는데, 나미비아도 비슷했다. 다만 배고픈 자에게 강제노동 시키려던 농장주만이 불평했다고 최광은은 전한다.


그렇다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막대한 석유를 허락 없이 빼가면서 주민들을 몰라라하는 부조리를 기본소득으로 해결한 알라스카는 석유 판매 대금을 기금으로 활용했고 브라질은 세금으로, 나미비아는 해외의 기부금으로 해결했다. 브라질처럼 세금 사용의 우선순위를 조절해 재원 일부를 확보할 수 있지만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최광은은 조세 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주문한다. 기본소득으로 노동과 복지의 패러다임을 싹 바꿀 수 있다고 전망하며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불행은 사라지리라 믿는다. 불안을 조성하는 사회 분위기가 잠재워지며 한결 여유가 생긴 사회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살피는 사회 안전망이 뿌리내릴 것으로 전망한다.


기존 정당의 진입 장벽 때문에 국회 진출에 실패한 뒤, 재창당을 절치부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회당 핵심 인사였던 최광은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에서 기본소득을 복지 차원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존심 건드리며 줄 세워 차등으로 내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분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복지의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논의를 끌어냈던 유럽은 국민 배당의 개념으로 접근한다고 녹색평론은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한 국가 또는 지역의 소득과 노동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함께 이끌어왔거나 이끌어갈 국민 또는 주민에 대한 당연한 배당이라는 거다.


     뉴딜정책은 거대한 댐 공사에 배고픈 미국인들을 동원했지만 진작 기본소득을 모든 이에게 제공했다면 테네시 강의 생태계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한 계곡의 공사판에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알라스카의 원주민에게 일정액의 돈을 주자 애초 걱정과 달리 게을러지거나 술로 흐느적거리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지역의 환경과 문화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늘었다. 최광은은 언급하지 않았어도 기본소득의 논의를 앞으로 환경 차원에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재원 문제까지 포함해서. (우리와다음, 201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