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해온 물건의 이력, 그 알파와 오메가

물건 이야기, 애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김영사, 2011.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3학년 때 사용했던 참고서들이 쓰레기로 수북이 나왔다. 한 신문은 고등학생 한 명이 1년에 80만 원에 달하는 참고서들을 구입한다고 보도했는데, 합격에 얼마나 기여했을지 알 수 없는 그 참고서들은 시효를 잃고 무거운 종이 뭉치가 되었다. 미련 없이 버려도 재활용되겠지. 그렇게 믿을 수 있어야 버리는 이의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느새 우리는 없어도 되는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계절이 바뀌면 내버리는 멀쩡한 옷이 많고, 훑어볼 적도 드문 신문과 잡지가 적지 않게 쌓인다. 식구도 몇 안 되는데 신발장은 꽉 찬다. 신발 한 켤레로 등하교는 물론이고 등산과 달리기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세련된 일상을 누리려면 런닝화와 조깅화를 분리하라고 광고는 소비자의 눈과 귀를 쉴 틈 없이 유혹한다. 계절을 달리하는 구두와 운동화들로 신발장이 붐비는 소비자들은 광고에 솔깃하고, 그만큼 쓰레기는 늘어난다.


공장에서 만들어 내놓는 물건은 생산된 것일까. 차라리 변형이라고 보아야 옳은 게 아닐까. 광물이나 생물자원에서 추출한 원료를 가공하여 물건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쓰레기도 나오지만, 가공된 물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된다. 가공은 곧 변형이다. 사용한 참고서를 후배에게 전하려 하니 꺼린다고 한다. 출판사가 내용을 바꿔 소용없다는 게 아닌가. 졸지에 활자무덤으로 전락한 참고서들은 물건으로 나온 지 1년 만에 재활용을 위한 폐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물건은 생산된다고 정의한다.


절실한 필요보다 편의를 위해, 호기심이나 유행과 과시를 위해 구입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생산돼 어떤 방식으로 내게 전달되며, 버리면 쓰레기가 되어 어떤 처리를 거쳐 사라지는지, 소비자 대부분은 그 과정을 모른다. 관심을 없다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 관심 갖기 어렵기 때문일 게다. 물건이 만들어지기 전과 후, 그리고 내 손을 떠나 폐기된 이후, 누가 어떤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지 소비자는 알 도리가 없다.


싫증나거나 고장으로 효용 가치를 잃었을 때, 물건을 쓰레기통에 간단히 버리는 소비자일지라도 자신이 소유했거나 새로 소유할 물건이 어떻게 생산돼 어떻게 폐기되는지, 그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진다면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불필요한 물건의 구입을 자제하거나 구입한 물건은 싫증나더라도 꾹 참고 더 사용할 수 있다. 고장 나면 고치거나 버려야한다면 재활용을 염두에 둘지 모른다. 물건을 만들고 폐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에 고마움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린피스 운동과 소각장 반대운동을 하면서 물건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온 애니 레너드는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이라는 부재를 우리 출판사에서 붙인 물건 이야기펴냈다. 그는 우리와 비슷하게 소비하는 국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물건들의 이력을 다섯 단계로 나눠 살펴보았다. 물건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물, 광석과 석유는 어떻게 추출하는지, 면 티셔츠와 컴퓨터는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물건을 생산한 지역에서 내 손으로 어떻게 유통돼 들어오는지, 물건을 소비할 때 발생하는 불평등은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는지, 물건을 버릴 때 발생하는 환경 문제들을 심도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짚어보았다.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상식인데, 나무를 베어 운송 가공하는 과정을 거치며 1톤의 종이를 만드는데 다른 자원 98톤이 소비된 뒤 버려진다는 건 상식이 아니다. 나무가 대규모로 벌목되면서 숲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생물다양성이 훼손되며 토착민은 터전을 잃는다는 사실도 소비자에게 생소하다.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데 970리터가 필요한 물은 어떤가. 면화 재배에 들어가는 물은 면화와 더불어 막대하게 수출하는 셈인데, 면화 재배지역의 주민들은 그 때문에 항상 목이 마르다. 반지 하나에 들어가는 금을 광석에서 추출하기 위해 20톤의 폐기물을 쏟아내고, 영원하다는 다이아몬드를 위해 전쟁과 착취가 자행된다는 거, 소비자들은 관심을 갖지 않거나 모르는 체 할 것이다. 토착민의 생존권을 짓밟아야 새로운 자원을 찾을 수 있는 원유는 시방 충분한가. 산유국은 쉬쉬하지만, 소비보다 시추하는 양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흥청거리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면화 생산으로 사막화가 심화되는 중앙아시아는 곡물보다 높은 농도로 뿌리는 농약으로 고통스럽다. 유용성 높은 곤충과 미생물을 몰살시킨 농약은 몰아내려는 해충의 내성을 강화하고 말았다. 해충 피해는 더욱 심해지더니 농약은 농부의 몸을 병들게 했다. 미국이 1년간 인쇄하는 책을 위해 뉴욕 센트럴파크의 1150배에 달하는 나무가 종이로 변하는데, 걱정해야 할 현실은 벌목만이 아니다. 제제공장에서 내뿜는 온실가스는 공업 분야 5위에 해당하고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는 물질은 혀를 내두르게 배출된다. 그래도 종이는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에 비하면 약과다. 반도체 공장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린다. 전기를 마구 소비하는 알루미늄 캔과 자체가 독성물질에 가까운 PVC, 그리고 숱한 유기화학물질이 노동자와 공장 주변의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표현하기 난처할 정도로 무겁다.


인건비가 싼 국가에 생산 공장을 차린 다국적기업은 거대한 선박이나 초를 다투는 점보기로 경쟁업체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공급하면서 가격을 낮추려 한다. 그 바람에 지역에 오랜 터 잡았던 소매상들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대형 마트가 지역의 이익을 독점하는데, 그로 인해 늘어난 실업자들은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언제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광고하더니 댁에는 있쑤?”로 바뀌면서 과시를 위한 경쟁적 소비는 시민사회에 우울증을 늘어나게 했다. 소비를 유도하는 기업체의 교묘한 전략에 휘말리는 소비자들은 유치한 정신 상태에서 충동구매를 일삼다 파산하고 만다.


구입하자마자 쓰레기가 되는 물건을 한 코미디언이 남의 물건은 똥이고 내 똥은 물건이라 풍자했다고 저자는 냉소하는데,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산업폐기물이 미국 전체 쓰레기의 76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의 30.9퍼센트는 물건의 포장재고 컵이나 의복과 같은 비내구성 쓰레기도 24.5퍼센트나 된다. 문제는 위험천만한 의료 폐기물과 전자제품 폐기물들인데, 소비자들은 그 쓰레기들이 어디에서 처리되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까닭인데, 쓰레기들은 문제 많은 매립장과 소각장에서 종말을 고하는 건 아니다. 다른 국가로 보내 문제를 국제화한다.


애니 레너드는 소비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한다. 삶을 악화시키는 소비까지 발전으로 평가하는 기존 GDP 대신, 환경과 경강, 행복과 평등, 교육과 참여 같은 긍정적 요인들도 더불어 계산하는 GPI를 소개하며, 생존을 위해 전혀 필요 없는 소비를 강요하며 환경을 막무가내 파괴하는 전쟁을 없애자고 호소한다. 환경오염이나 폭력을 치유하기 위해 발생하는 비용을 물건의 가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착한 물건의 가치를 비로소 인식할 게 아닌가. 물건보다 시간을 소중하게 평가하자면서,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이웃과 텃밭을 함께 일구는 공동주택을 꿈꾼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오염물질을 발생시키지 않는 산업에 완전 고용되어 공정하고 느긋한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거다. 제안은 좋은데, 물건 낭비하는 미국식 삶을 세계가 갈망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최근 종교단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분양하는 텃밭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주말 알뜰시장에 시민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본다. 애니 레너드의 희망이 실현될 가능성을 다소 엿볼 수 있으려나. 하지만 지난 4월 총선에서 다시 드러났듯, 개발과 발전에 대한 욕망은 우리 사회에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대안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채굴되는 석유가 정점을 지나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여태까지 추구한 탐욕은 계속될 수 없지 않은가.


     애니 레너드가 희망하는 공정하고 느긋한 내일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조상은 느긋하게 행복을 키웠다. 물건 이야기는 어쩌면 물건 부족했지만 생태계가 풍요롭고 이웃이 다정했던 과거에서 삶의 대안을 찾자고 제안하는 것인지 모른다. (반니, 201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