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가는 봄을 살려낸 환경고전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2011

 

 

1998,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는 특집 면을 기획, 미국의 봄은 여전히 새소리와 함께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심각한 농약 중독으로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을 것으로 예견했던 레이첼 카슨의 1962침묵의 봄주장이 틀렸다고 선언하려는 의도일 리 없었다. 일찍이 레이첼 카슨의 경고가 없었다면, 미국의 봄은 진작부터 침묵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레이첼 카슨 서거 30주년을 기념하여 카슨 여사와 그의 기념비적 환경도서의 고전, 침묵의 봄을 기리고자 하는 특집이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집필하고 한 세대가 지난 1990년대 초, 강원도 미시령을 빠져나와 속초로 이어지는 신평리 벌판에서 세계 잼버리 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가 무르익을 무렵, 수려한 생태계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설악산 기슭에서 야생조류를 관찰하는 날이 다가오자, 우리의 대회 담당자는 참가자들이 행여 모기 물릴세라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는 친절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날, 만 명이 넘었을 탐조인원 중, 살아 숨 쉬며 노래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새를 관찰한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죽어 나자빠진 곤충들은 진저리나도록 보아야만 했다.


이차대전 중, 인마 살상용으로 생산했던 화학무기 재료가 종전 이후 창고에 넘치자, ‘탱크를 보습으로!’ 라는 기치를 가장한 군산복합체에 의해 재고처리용으로 개발되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농약은,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한 지역에서 단순한 품종을 대규모로 심어 곳곳으로 분배하는 이른바 중앙 집중적 생산력주의는 농약이 없으면 농작물의 생장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세계는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와 매장량이 한정된 자원을 더욱 과다하게 소비하며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부추기기 시작했고, 농촌도 거기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 이웃과 나누어 먹기 위해 농사지을 적에 필요하지 않았던 농약이었지만, 산업사회를 위해 농촌을 소외하면서 불가피해졌다. 농민을 도시 노동자로 끌어내기 위해 강력하게 펼친 농작물 저가 정책은 농촌을 공동화하게 유도했고, 일손을 잃은 농촌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의 식민지가 되었다. 농작물을 싼 가격으로 공급하기 위해 몇 가지 안 되는 농작물을 넓은 면적에 다량으로 심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농촌은 김매고 벌레 쫓아내는 일은 약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구조화되었다.


당초 기대했던 바와 크게 다르게 농약은 잡초와 해충들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파라치온이 담겨 있던 가방을 만졌다는 이유만으로 두 명의 어린이가 죽고 분무기 노즐과 농약 탱크 뚜껑을 잡았던 사람이 며칠 만에 죽는, 눈에 드러나는 사건만이 아니었다. 생태계 저변을 치명적으로 교란한 농약이 먹이사슬을 따라 최고 수 백만 배 농축되는 현상으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피해가 속출하고 말았다. 단일 작목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농부는 달려드는 벌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살충제를 뿌렸고, 살충제를 맞고 떨어진 곤충을 닭이 쪼아 먹자 닭들이 다리를 쭉 뻗고 죽어 가는 게 아닌가. 상품가치를 잃은 닭을 아깝다고 삶아먹은 농부의 운명은 그가 죽인 해충이나 닭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1960년대 초, 농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녹색혁명으로 농약사용량은 더욱 늘어나고, 농약사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사세가 확장 탄탄대로를 만끽할 수 있었던 미국의 농약 제조회사들은, 시민들이 침묵의 봄을 읽기 시작하면서 농약 살포하는 양이 곤두박질치는 양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농약회사들은 거의 망하지 않았다. 세계적 농약 사용량은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침묵의 봄이후 50만 배에 달하고 있다. 판로가 막힌 농약회사들은 다국적기업으로 화려하게 변신,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에 팔아먹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한국은 OECD 평균 6배 이상의 농약을 살포하는 실적을 올린다. 이웃보다 더 뿌려야 안심하는 조바심은 이미 부메랑이 되었다.


레이첼 카슨 시절, 해마다 500종류에 달했던 신개발 화학제품이 40여 년이 지난 요즘, 수천 가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확증할 수 있는 인체 안전성은 요원한 마당이다. 인체를 대상으로 연구한 개개 제품의 안전성도 얼마 안가 부정되는 처지에 생태계 안전성은 거론조차 하기 어렵고, 화학제품 사이의 영향력 상승관계는 파악이 전혀 불가능한 실정이다. 개발회사에서 제출한 자료에 의존한 안전성 평가만을 믿고 광범위하게 남용한 이후 부지불식간에 발생된 인체와 생태계의 위험사례는 어디 한 두 가지인가. 하지만 제철 제 고장 농작물을 질식사시킨 농촌에 화려하게 등극한 국제 비교우위 신자유주의 농업구조는 단순한 농약중독 시대를 넘어 유전자 조작된 돌연변이 농작물의 범세계적 단작 시대로 우리들을 밀어 넣고 있다. 지구촌 70억의 인구는 몇 안 되는 다국적기업의 손아귀에 거의 장악되었다.


수도권에서 가장 울창한 극상림을 간직하고 있는 전등사 숲을 거닐 적이다. 동행하던 미국 환경운동가가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의아해 한다. 새뿐인가. 개구리 소리 거의 들리지 않는다.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도 멈췄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경고한지 한 세대가 지나, 반성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고요해지고 만 것이다.


     더 늦지 전에 우리도 내 강산이 침묵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어서 인식해야 한다. 농약뿐이 아니라 광우병과 구제역, 그리고 수많은 독성 첨가물과 함께 돌연변이 농산물까지 범람하는 이때, 우리는 침묵의 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충분하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이래 여전히 미국을 움직인 20권의 책가운데 한 권으로 자리 잡고 있는 환경서적의 고전 침묵의 봄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니, 201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