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와 처서가 지났으니 가을인가? 하지만 파란하늘이 여전히 두렵다. 유래 없는 티베트의 고기압이 높은 하늘을 점령한 올해, 우리 여름은 전에 없이 맑고 뜨거웠다. 뜨거운 날이 계속되면서 하늘은 활기를 잃었다. 소나기조차 뿌릴 기운을 내지 못했다. 태양의 입사각도가 줄었으니 아침저녁의 바람이 분명히 선선해졌지만 더위에 지친 우리는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을 반기기 어렵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막아서는 도시는 공기와 땅을 달궈놓았다. 살아 있는 것들에 저주를 퍼붓는 태양 아래 원인 제공자는 형벌을 요구받는데, 모면하려 황급히 그늘로 숨어드는 인간은 숨이 턱턱 막혔다. 한데 철근콘크리트 안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바뀌었다. 저주받는 거리와 이어진 재래시장의 상인은 마른 선풍기 바람에 축 늘어져 헐떡였지만 양판점 지하 식품매장은 늘 왁자지껄 했다. 에어컨을 앞세우는 인간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누비는 승용차 안의 인간도 치솟는 폭염을 비웃었다.


양판점 식품매장의 냉장 커튼 안쪽에서 싱싱함을 과시하는 과일과 채소들은 염천 하늘 아래 농부의 땀방울을 받으며 자랐다. 뒤 돌아서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잡초들을 손으로 뽑는 유기농민은 하늘을 함부로 원망할 수 없다. 납품 시간 맞추려 챙 넓은 모자 아래에서 미지근한 물 연실 들이키던 단양군 한결농원의 농군은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판에 제목 없는 시 한 편을 올렸다. 에어컨이 만든 시원함으로 폭염을 비켜가는 도시인을 대신해 형벌을 받으며 하늘에 용서를 빌어야 했을까?

 

하늘이시여,

대자연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욕심 많고 잔인하며 어리석은

인간세상 벌하시는 건 달게 받사오나

염치불구하고

하루만 비 내려주시옵기를

간청하나이다.

시퍼런 하늘을 올려다 보기

두렵고 무섭나이다.

 

기상관측 이래 111년 만의 기록이라던 이번 폭염은 높은 하늘에 거대한 열돔이 드리웠기 때문이라고 기상전문가는 분석했다. 열돔? 영어로 ‘heat dome’로 체육관 같이 거대한 지붕이 뜨겁다는 의미일 텐데, 지상 5km에서 12km 사이 중상층 대류권에 정체되는 뜨거운 고기압이 지상의 공기를 솥뚜껑처럼 가둬놓는 현상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건 이번 폭염의 원인이 아니다. 열돔 현상의 원인은 지구온난화라고 기후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지구의 온도가 예년에 없이 높아지면서 티베트 고원에 쌓인 눈이 일찍 녹아 나타난 결과라는 게 아닌가.


잘 알다시피, 지구온난화는 북극해의 두툼한 얼음을 녹인다. 북극권의 얼음이 얇아지자 북극항로가 열렸다고 환호하고 북극해 아래 가스층 개발을 놓고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지구촌 생태계에 광범위하게 전가된다. 얇아진 얼음을 쇄빙선으로 깨며 북극해의 항로를 줄이면 수출입 업자들의 주머니는 그만큼 두둑해지겠지만 북국권의 터줏대감인 북극곰은 먹이와 삶터를 잃는다. 그뿐인가? 북극권 상층의 공기층을 붙잡는 제트기류가 느슨해지며 아래 위도 국가들은 때 아닌 한파에 몸서리쳐야 한다.


티베트 고원에 쌓인 눈이나 북극해의 얼음, 그리고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는 새하얗다. 하얀 색은 햇빛을 반사시킨다. 전문가는 그런 효과를 알베도(albedo)라 하는데, 북극권의 얼음과 티베트의 알베도가 줄어들면 흡수되는 햇빛이 늘어난 만큼 온도가 오른다. 문제는 알베도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가 느슨해진다는데 있다. 북극권 아래 지역에 한파가 느닷없이 전파되듯 티베트의 온기가 주변으로 확산되는데, 그 결과 우리 상층에 열돔이 드리웠다.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한국상공에서 겹쳐져 고기압지붕인 열돔 현상을 만들어 폭염을 주도하고 있다.-동아일보 DB 제공

사진: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한국상공에서 겹쳐져 고기압지붕인 '열돔' 현상을 만들어 폭염을 주도하고 있다.-동아일보 DB 제공


지구온난화 분명한 징후는 티베트 고원과 한반도 주위에 국한하지 않았다. 언론은 1994년의 기록을 경신했다고 수치를 들먹였지만 2016년도 무척 더웠다. 작년에 폭염이 비켜간 것이 의외였다고 기상학자들이 분석하던데, 내년은 어떨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서울 면적 두 배 이상의 숲을 올 여름의 폭염 아래 화재로 잃었다. 이러다 불에 탈 숲마저 사라질까 겁난다. 숲이 사라지면 주변은 더욱 건조해지며 폭염은 심화된다. 미국만이 아니다. 지구는 끔찍하게 달아올랐다.


체온보다 기운이 높은 곳에 사람은 본디 살지 않았다. 타들어가는 사막에 사는 생명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은 터전을 삼지 않았다. 전기가 공기를 식히고 먼 곳에서 마실 물을 옮겨오면서 사람들은 사막까지 높은 건물을 짓고 아스팔트를 깔았지만 전기가 끊어지면 아비규환에 빠질 신기루일 따름이다. 2003년 폭염으로 노약자 위주로 7만 명의 목숨이 희생된 유럽은 폭염 피난처를 곳곳에 확보했다. 우리나라도 도서관과 관공서를 피난처로 개방했지만 늘어나는 희생자를 피할 수 없었는데, 전기료 누진제 완화로 내년 이후에도 계속될, 어쩌면 더욱 심화될 폭염에 대비해야 하나?


아프리카의 열기가 전파되는 유럽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열기에 몹시 당혹한다. 승용차 에어컨이 흔치 않던 유럽이지만 요즘 다를 텐데, 그들은 핵발전소 뿐 아니라 화력발전소도 줄인다. 이산화탄소와 초미세먼지를 막대하게 배출하지 않던가. 가정의 전기 사용량이 우리보다 많은 유럽의 국가는 자연에너지의 활용을 크게 늘렸다. 태양광 발전 패널을 지붕에 붙이고 풍력발전기가 드물지 않지만 그것만으로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인 건물을 확대하고 가전제품과 생산설비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했다. 그래도 심화되는 폭염은 피할 수 없으니 녹지와 습지를 최대로 확대한다.


공항 주변의 넓은 습지를 골프장으로 메우고 대도시 주변의 논밭을 아파트단지로 없앤 우리는 갯벌을 매립하고 산업단지와 고층아파트를 밀집시켰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대폭 늘린 대신 녹지와 습지를 없앤 것인데, 한 환경운동가는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누진제 완화로 전기요금이 줄어든 가정은 전체의 1% 이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폭염 때 매월 만 원 정도 줄어든 전기요금으로 심화될 지구촌의 폭염이 완화될까? 집이 덥다고 승용차의 에어컨을 켜는 상황에서, 획기적인 정부보조금으로 최신 에어컨을 가정마다 비치해도 가당하지 않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7월 붕괴한 라오스의 댐은 수백 명의 사상자와 수만의 이재민을 발생케 했다. 댐 건설에 참여한 우리 기업의 부실이 의심스러운데, 강우량도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예년에 없던 호우와 가뭄은 세계 곳곳에 빈발한다, 올 봄 강수량 덕분에 폭염에도 우린 마실 물이 충분했지만 봄 가뭄은 점점 지독해진다. 내년 폭염은 견딜 수 있을까? 폭염은 농작물을 타들어가게 했는데, 녹조로 끈적끈적한 강물은 쓸모없었다. 에어컨과 누진제 이외의 대책이 급하다.


독일 의회는 2030년부터 내연기관의 생산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고 많은 국가에서 공감했는데, 핵발전소 대신 화력발전소 중설로 대응한 우리나라는 오는 10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총회를 개최한다. 인천 송도신도시의 초호화 송도컨벤시아에 모여들 텐데, 송도신도시는 지구온난화를 자연적으로 예방하는 갯벌을 매립해 조성했다. 고급 승용차로 모일 세계의 기후전문 관료와 학자는 그 사실을 인식할까? (작은책, 2018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