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를 가본 적 없어도 화면으로 많이 구경했다. 첩보영화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카지노 이외에 화려한 무대의 쇼를 라스베이거스는 자랑하던데, 거긴 적지 않은 돈을 지참해야 입장이 자유로울 거 같다. 무료로 방문자의 넋을 빼는 볼거리도 있단다. ‘벨라지오 분수 쇼가 그것으로, 음악에 맞춰 1200개 노즐에서 현란하게 분사하는 물줄기의 향연은 라스베이거스의 진수라고 한다. 한데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에 세웠다.


336억 톤의 물을 담는 미드호가 48킬로미터 떨어진 콜로라도 강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라스베이거스는 신기루 같은 광채를 발휘할 수 있다. 1936년 이후의 일이다. 인구 60만이 넘지만 관광객이 거주민의 수십 배에 달하는 라스베이거스는 후버댐이 없으면 명성을 유지할 수 없는데, 최근 지속되는 가뭄으로 미드호 수심이 30미터 이상 낮아졌다고 한다. 예전 같이 물을 공급받을 수 없는 라스베이거스는 생활하수를 철저히 정화해 분수 쇼를 이어간다고 한다.


미 캘리포니아는 오렌지로 유명했다. 최근 포도주로 명성을 추가한데 이어 아몬드는 세계 수요의 80%를 담당할 정도라고 한다. 1938년 존 스타인벡은 황폐화된 오클라호마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농부 가족의 애환을 분노의 포도에 담았는데, 요즘 캘리포니아에 젖과 꿀이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 없던 가뭄 탓이다. 포도주와 아몬드의 명성이 여전한 건 로키산맥의 빙하에서 사시사철 물을 공급하기 때문인데, 전 같지 않다고 한다. 폭설로 뒤덮이던 산간에 비가 내린다는 게 아닌가.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받은 2010년 동계올림픽 때, 밴쿠버에 폭설은커녕 비가 내렸다.

미국은 물부족국가인가? 거대한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울창했던 시절에 몰랐지만, 거의 벌채된 요즘, 미 서부는 강수량이 늘 부족하다고 통계는 지적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평균 소득을 높이는 도시마다 많은 인구를 거느리는데, 시민들이 물 부족을 호소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수돗물 원수를 다른 지역에서 넉넉히 조달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집 앞의 잔디에 뿌리는 물을 줄여야 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일까? 4대강 사업이 강행되던 시절, 정부는 유엔이 지정한 물부족국가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실제와 다르다고 시민단체는 반발했다. 유엔과 무관한 국제인구행동연구소에서 1993년에 작성한 자료가 당시 정부 주장의 근거였다고 주장했다. 강수량을 단순히 인구로 나눈 수치로, 연평균 1인당 1000톤 미만이면 기근, 1000톤에서 1700톤 미만은 부족, 1700톤 이상은 풍요로 구분했다는 거다. 그런 식이라면 사하라와 고비사막은 터무니없게 물이 풍요로워야하고 캘리포니아는 가여울 정도로 기근이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가. 지역의 물 서비스는 관리하기에 따라 양적 질적으로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물 관리가 우수한 국가에 해당한다.



사진: 도시의 지붕을 적시는 빗물은 그냥 버리기 아까운 자원이다. 


지금은 들끓던 민원이 줄고 수돗물도 깨끗해졌지만, 인천 서구는 갈색 수돗물로 한동안 심한 홍역을 앓았다. 문제가 해결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이 마련되었다지만 비슷한 사고는 인천 이외 지역에서 속출했다. 섣부른 해석과 달리 오래된 배관이 아니라 운영과 관리에 미숙함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으니 비슷한 사고는 반복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먼 곳에서 수돗물 원수를 끌어와 공급하는 중앙집중식 정책이 계속된다면 확신하기 어렵다.


동네 우물에서 길어 마셨던 시절, 물 절약은 어느 곳이나 일상이었다. 1960년대,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하라고 신신당부하던 담임 선생님은 용의검사를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 그때 많지 않던 가정의 빨래는 이웃과 시냇물에서 해결했다. 마을이 커지고 빨래터와 우물이 가정의 세탁기와 수도꼭지로 대체되면서 물 사용량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돗물 관로가 가정으로 이어졌어도 공급이 불안했던 시절, 물을 받아놓아야 안심했던 우리는 절약 생활을 잊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돗물의 규모가 커지고 공급이 안정되면서 낭비가 생활화되었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에 수도꼭지가 늘어나면서 물을 물 쓰듯 소비한다. 다만 어디에서 어떤 물을 가져와 수돗물을 만들었는지 모르면서 집안에 정수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지 않는다. 배수장에서 엄격하게 정화했다고 강조해도 믿지 못하므로 값비싼 정수기를 가정에 설치한다. 정수기 광고가 화면을 지배하는 우리나라가 특히 그렇다. 물보다 수도관이 문제라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어떤가? 인천 서구의 경험에서 우리는 수도관의 관리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담당 공무원의 낮은 자긍심을 관리부실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들의 급여나 지위를 높이면 소비자의 신뢰로 이어질까? 수돗물이든 전기든, 중앙집중식 공급체계에서 소비자의 신뢰는 참여로 형성된다. 이번 홍역을 계기로, 정부는 수돗물 공급체계에 소비자의 참여를 보장할 용의가 있을까?


인천시 같은 대도시라 해도 지역에서 수자원을 찾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획기적인 대안이 아니다.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 규모로 빗물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정화하거나 생활하수를 재처리하여 허드렛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오래 전부터 제안한 그 구체적인 방법은 이미 확보돼 있다. 가격도 높지 않다. 생활하수를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 정화처리한 뒤 바다나 강으로 버리는 방식은 낭비다. 지역에서 하수중간처리하여 활용하는 방식은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벌써 실행하고 있다. 하수중간처리와 빗물 활용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탓이다.



사진: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의 활용 모형도.


마시는 물을 공급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까? 수돗물을 가정에서 추가 정화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까지 합하면 대단할 텐데, 석유 고갈을 앞둔 지구온난화 시대에 합리적일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수돗물 공급체계는 머지않아 한계를 만날 것이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수돗물 요금은 상승한다. 석탄이나 핵보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시대가 정착한다면 지금과 같은 수돗물 공급 방식은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갈색 수돗물로 홍역을 앓은 인천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는 분명 물부족국가가 아니더라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기상이변은 새로운 물 공급체계를 요구한다. 중앙집중식은 아니다. 빗물과 하수중간처리도 대안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는데, 무엇보다 물을 낭비하는 습관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개인의 노력에 앞서 제도적인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도관의 오염을 부각하며 정수기 설치를 부추기는 상업광고를 경계하는 데에서 그칠 수 없다. 물을 낭비하지 않으면 불편한 요즘 생활을 바꿔야 한다. 옷을 넘치게 구입해 자주 세탁해야 하는 습관은 누가 어떻게 왜 부추겼을까? 소비자가 그런 광고에 현혹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주 목욕하지 않아도 건강했던 시절의 삶은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고민하고 생활습관의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도시가 너무 크다.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하던 마을로 돌아간다면 물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텐데,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늦었어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근원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늦기 전에 하나둘 현실화해야 한다. 심화되는 기후변화는 물을 지역에서 자급하던 시절로 돌아갈 것을 강요하므로. (작은책, 2019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