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       
인생 1234모작을 디자인하라
                                                                    
                                                                                                            이보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일정기간 동안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다.

그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이것은 진리이다.

이 진리는 결코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고 역사는 이 과정 속에서 계속 순환하고 있다.

결국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다가 죽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은 살다가 죽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하고 다시 요단강을 건너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차별화 된 삶의 자세이다.


그러나 삶을 단계적으로 구분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편의 상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을 123모작으로 구분하고

생을 마감한 후의 삶을 4모작으로 구분하고

여기에 대비하는 알찬 삶을 디자인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제1모작은 부모로부터 태어나 보살핌을 받고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그동안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만남이 그 사람의 운명이다.

만남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만남이 곧 운명으로 다가온다.

 선택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 시기에 태어났다.

내 부모도 남녀의 성별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중국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웃의 섬나라 일본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만남이 그 사람의 운명이고 숙명인 것이다.

우리는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다다른다.

 이 시기에 학업에 전념하여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끌며

육아를 하고 직장에서도 전성기를 누린다. 

연세대학교 98세의 김형석 명예교수의 ‘백세를 살아보니’ 책을 읽어 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75세 까지라고 한다.

1모작 60세 까지의 인생은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진정 가치 있는 자신의 삶은 인생 2모작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세 가지의 선택이

직업과 배우자와 인생관과 가치관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거나 사업체에서 은퇴해서 60세를 전후해서

제2막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이 때의 삶도 1모작 보다 더 많이 누리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육체적으로 전성기만은 못해도 비교적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를 대비해서

제2모작 노후대책을 세워야 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어느 정도의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제2모작에서 새로운 인생으로서 노후대책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지혜롭게 살아야 성공한 인생으로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1모작보다도 더 중요한 시기라고도 말 할 수 있다.

그것은 노후를 위한 저축과 제2의 직업에 마련해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은 3모작을 사는 문제이다.

누구나 2모작을 마감하면 육체적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휠체어를 타야 이동이 가능하고 기저귀를 차고 누워서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화장실도 갈수 없거나

중병으로 무기력한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치매에 걸리게 되면 그 비참함은 이로 말 할 수가 없다.

매미나 잠자리 같은 곤충은 생의 마지막이 화려해서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노래를 부르며 생을 마감하는데

사람은 마지막이 비참해서 태어나면서 운다는 에세이를 읽은 기억이 있다.


인기연예인도 유명정치인도 국내최고의 재벌도 누구나 비켜 갈 수 없는 3모작의 인생길이다.

 급성 심장마비로 죽거나 교통사고 등 사고사의 경우는 물론 예외이다.

그래서 3모작을 대비해서 누가 나의 마지막 생을 지켜 줄 것인가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부지간이거나 아들이나 딸이거나 다양한 대상이 감당할 몫이지만

미리 정해 두지 않으면 그 때에 이르러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은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요양원도 미리 정해 두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이제 4모작에 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기독교인은 사후에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기에

죽음의 공포를 비교적 덜하게 되지만 천국의 확신이 없다면

죽음은 역시 두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천국에 가면 아픔도 배고픔도 고통도 늙지도 않고

다시 죽음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어떤 고난도 두려움도 아픔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후에 육신을 머물게 할 무덤과 납골당이라도 미리 준비하기를 바란다.

 또 유족에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보다 확실한 4모작을 위해서는 생활 중심에 하나님이 자리 매김하고

예배를 생활화하고 기도는 늘 일상화하고 말씀을 체질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범사에 감사하며 봉사하고 세상일과의 교제는 차별화할 뿐 아니라

전도를 사명으로 알고 실천해서 지옥으로 떨어지지 말고

요단강을 무사히 건너가야 할 것이다.

인생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가 목표가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그곳에 이르기 까지 알차게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