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창원에 있다.

발을 디딘지 1년 반이 되었고, 숙소까지 얻어 지낸 시간도 1년이 넘었다.

게다가 계약(?)을 완결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더 필요하며, 프로젝트 규모와 위상도 작지 않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머뭄...


<투시도... 많은 검토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결정된 시안... 완성된 조감도나 투시도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다...>


 

머무는 곳과 동화되려면 주변을 알아야 하는데 창원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다.

작지 않은 기간 각지를 주유했지만 인연이 없었던 동네.

국보가 없었고, 보물을 알지 못했으며,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선택과 집중이란 효율에 미래를 보지 못하는 좁은 식견이 만든 편식의 함정...

창원과 이리 깊은 인연을 맺을 거란 걸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마동사지 삼층석탑... 유물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눈높이와 거리를 중시하는 나는, 한 번 보더라도 풍부하게 느끼려 노력하는 편인데, 창원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었다...>


 

2014년 가을이 첫 인연이었지?

6개월이란 적지 않은 기간이었음에도 나는 현장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변 산이름을 딴 사찰도, 주남저수지도, 하다못해 사격장도...

언제고 시간을 내 섭렵해보겠다는 의지는 늘 시계추처럼 고정된 동선을 벗어나지 못했지.

시간이 없다는 핑계였지만, 그 때 못한 걸 시간이 생긴다고 금방 할 수 있었을까?

지금 무언가를 못한다는 건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절실함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창원시 일부 조망... 대략 160~170m 높이에서 촬영한 것이다...>


 

우연찮게 창원이 다시 다가온 건 서울로 복귀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5년 겨울이었다.

가능성뿐이었지만, 뜬구름 같은 논의들이 붉은 인장으로 결박 되는 데에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그 밀도와 속도만큼은 상상을 초월했다.

절박함이었을까? 자신감이었을까?

<경남 남부 지도... 경상남도 지도를 보면 농경문화가 정착하기엔 만만치 않은 지리적 환경을 갖추고 있는 걸로 보인다. 높고 낮은 산들이 집중된데다 그나마 평지는 장대한 낙동강의 범람으로 그 유역이 넓게 발전하기엔 한계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 이런 이유 때문인지 삼국시대 가야는 중앙집중적 구조의 국가시스템을 완성하기에 한계가 있었을 듯하다... 또 경남지방에서 삼국시대 당시 군사요충지였던 울산을 제외하면, 부족국가 이상 규모가 정착하기에는 현재 고속도로가 지나는 양산, 밀양, 창녕, 합천, 함양, 산청, 진주, 사천, 함안, 창원, 김해 정도(당시 선박기술로 부산에 포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 듯...)에만 시가지가 형성될 규모를 갖출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지금 승부를 걸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판단도 처음이었고,

일의 성패에 마음을 비우고, 할 수 있는 방법과 될 수 있는 길만 달려온 게 1년이 넘었다.

뿌리를 내리고 가시화되는 현단계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엄중함이 남아있지만,

분명한 건 창원과 나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창원주변 지도... 창원주변 산악을 벗어난 평지를 찾아봐도 마산과 창원, 진해와 진례면, 김해시 정도다. 이중 마산과 김해는 낙동강 범람에 대비한 치수와 간척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도시가 확장되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 현재의 문화재 분포와 지리적 요인을 너무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것인지는 몰라도, 김해를 제외하면 마산과 창원, 진해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까지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갖지 못했을 것(강릉지역과 대비된다)이라는 선입견이 이쪽으로 답사여행 코스를 잡는데 걸림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성산패총...>


<한동안 역사 속에서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창원은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인류가 정착한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다...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곳과 살기 좋은 곳, 그리고 지금 좋은 곳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본다...>


 

1년여 시간이 지나면서 창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볼 시간들을 갖고 있다.

내가 객지에서 돌아다닐 곳이라곤 관공서와 부동산, 식당과 마트가 전부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곳들을 하나씩 챙겨볼 요량으로 찾아다니고 있는데,

역시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탑과 불상, 그리고 역사의 흔적이 남은 곳들이다.

<창원 지도... 현 창원시는 50만 창원, 41만 마산, 그리고 16만 진해가 통합해 만들어진 도시로(그리고 광역시로 승격되지 않은 인구 100만 이상 도시로는 수원과 고양시가 있다), 구미, 울산, 여수, 수원, 거제 등과 함께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 내게 익숙한 도시 이름은 마산이지만(1910년 창원부를 마산부로 고쳤음), 인구나 생산규모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창원(창원부 1408)이 마산(마산창 1760)보다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었다. 진경대사 심희(보월능공탑/보물362호와 탑비/보물363호가 중앙박물관에 전시/소장되어 있다)에 의해 900년 전후 신라 구산선문 중 하나인 봉림산문이 창원 봉림사에서 개창되었지만 이후 부침을 계속하면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축소되었고, 1979년 부마민주항쟁 이후인 1980년 창원시가 설치되고, 2010년 통합시가 되었다. 이 중 구창원은 1980년대 창원대로를 중심으로 남쪽은 공단을, 북쪽은 주거 및 소비가 구획된 계획도시의 면모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중화학공업 중 화학과 철강을 제외한 기계부품 제조업 공단이 집중된  곳이 창원이다. 삼국시대에도 야철지로 유명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