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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의 한글화 문제점

 

마지막으로 삼귀의 중에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의 번역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금의 한글 삼귀의는 1970년에 찬불가 공모전에서 당선된 최영철교사의 작품이라 하는데 불교를 잘 몰랐던 재가자였습니다. 이 분이 만든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3년 종단 의례위원회가 만들어져 승가공동체의 의미를 살린 삼귀의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20166월 중앙종회 제206회에서 지금의 삼귀의와 사홍서원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때 의례위원(2013~2016)은 인묵, 동주, 지현, 지홍, 화암, 일관, 법상, 혜명 원명(2015), 주경(2015)스님등입니다. 이들은 천수경 끝에 나오는 삼귀의를 시방세계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시방세계 가르침에 귀명합니다. 시방세계 스님들께 귀명합니다로 기존 삼귀의도 다르게 번역했습니다. 조계종에서는 상감 사라남 가차미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율장에서 정의되는 승가의 의미와 경에서 나타나는 승가의 용례에 비추어 보면 여러모로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첫째 이미 비구(bhiu)나 비구니(bhikkuni)를 스님 혹은 스님들이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경에는 비구승가에 귀의 합니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데 승가가 스님들이라면 스님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동어반복이 됩니다. ’스님들은 비구(bhiu)나 비구니(bhikkuni)를 번역어이지 상가의 번역어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경에서 재가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할 때는 부처님과 담마와 비구승가에 귀의 합니다라고 자주 나타납니다. 보배경은 사쌍팔배의 칭찬받는 부처님의 제자들은 공양받을 만하며, 그들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습니다. 승가안에(sanghe,처소격) 이 훌륭한 보배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사쌍팔배의 성인들인 승보(僧寶)는 승가에 포함되어 있기에 승가에 귀의하는 것으로 승보에도 귀의한 것이 됩니다. 한글 삼귀의는 거룩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에 거룩한 스님들(사쌍팔배)’에게만 귀의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셋째 스님들이라는 복수는 2인 이상의 스님들을 의미하는데 승가는 최소한 4인 이상이어야 승가라 할 수 있습니다. 2~3의 스님들 모임은 자자포살등 여법한 갈마를 할 수 없기에 승가공동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넷째 우리 선배스님들은 삼귀의를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 귀의승중중존(歸依僧衆中尊)’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지혜와 실천을 갖추신 존귀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탐욕을 떠난 존귀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일체의 대중() 가운데서 존귀한 공동체(community)에 귀의합니다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승가를 스님들로 번역하는 것은 공동체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행위로 선배스님들의 뜻과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다섯째 웰라마 경(A9:20)에서 부처님은 같은 공양물이라도 대상에 따라 공양공덕이 달라짐을 설명하면서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아라한이나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보다 공덕이 크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자여,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사방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이 경에서 보듯이 백 명의 일래자, 백 명의 불환자, 백 명의 아라한이 라는 표현이 곧 승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동차 부품이 모여있다고 자동차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듯이 백명이 모여 있다고 해서 승가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방승가나 현전승가처럼 승가는 언제나 공동체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그 공동체성 때문에 아라한이나 벽지불이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승가에 공양하는 공덕이 더 큰 것입니다. 부처님은 불멸후 미래세에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삿된 법을 가진 가짜 수행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시며 설사 그들에게 보시하더라도 승가라는 이름으로 보시하면 공덕이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이 승가를 위해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푼다면 승가를 위한 보시는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다고 말한다.”(M142)

 

여섯째 나무장수 경(A6:59)에서 부처님은 개인비구에게 보시하기보다는 승가에 보시 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개인에게 보시했을 경우 혹은 몇몇스님들에게 보시했을 경우 그 비구들이 계율을 잘 지키지 않고 비난받을 짓을 하게 되면 보시한 것을 후회하고 스님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스님에게 보시하지 말고 승가에 보시하십시요라고 권유합니다. 승가에 보시한다면 그 시주물은 공유물이 되어서 공덕이 큰 것입니다. 승가를 '스님들'로 해석한다면 '스님들'이 병들고 죽으면 승가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승가는 단순히 스님들이라는 복수의 개념이 아니라 자자 포살 갈마등이 이루어지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일곱째 열반경에서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합니다.

비구들이여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흔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만일 승가가 '스님들'이라면 부처님은 "스님들에 대해서 의심이 있으면 물어라"라고 말한 격이 되는데 이러한 물음은 적절치 않습니다. 부처님이 승가에 대해서 물으라고 한 것은 그동안 부처님이 제정한 승가의 운영방법 즉, 포살, 자자, 수계갈마, 필수품을 구하는 법, 탁발하는 법, 객스님의 권리와 의무, 은사스님을 모시는 법등에 대해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물으라는 것입니다. 승가는 승가운영에 대한 총체적인 규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학생들''학교'라는 표현의 차이입니다. '학생들'이라는 것은 여행을 다니는 '학생들'일 경우도 있고 식당에서 만난 '학생들'일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라는 말에는 학생들을 포함하여 선생님들, 건물, 운동장, 수업시간표, 생활기록부, 기말고사, 방학, 교훈, 급훈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덟째 어느날 왕사성에 사는 재가자는 스님들이 밤새도록 수행하다가 아침에 이슬을 맞으며 나무 밑에나 동굴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님들이 이슬을 맞지 않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60개의 정사(꾸띠)를 지어 스님들께 보시하고자 했습니다. 막상 그 정사를 스님들에게 보시하려고 했을 때 부처님은 60개의 정사는 현재와 미래의 사방승가(四方僧伽)에 보시하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 이후로 현재까지 모든 승원과 수행처소들은 사방승가에 보시되어 왔습니다. 그 말은 수행자를 위해 지은 정사들은 지금 여기에 스님들뿐아니라 미래에 출가할 수행자들과 다른 지역 다른 나라의 수행자들도 머물고 수행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미래의 수행자들과 불자들이 사찰에 와서 불법을 배울 수 있도록 정법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도록 사찰을 공유물로 만드셨습니다. 사찰이 모든 이 들에게 열려 있어야하고 승가가 치지고 힘든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승가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확장되는 공동체(四方僧伽)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불교가 전해진지 1700년이 넘었는데도 가장 기초적인 승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스님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불자가 되는 것은 삼귀의를 함으로서 시작되며 스님들은 출가해서 열반할 때까지 삼귀의를 합니다. 스님들도 이미 출가하여 맑고 청정한 대중들 속해 있으면(旣已出家參陪淸衆) 항상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중을 잘 따라(常念柔和善順)야 하건만 한글 삼귀의는 청정한 대중이라는 의미가 사라졌으므로 스님들이 스님들에게 귀의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청정한 승가대중에 귀의한다는 것은 대중이 다함께 계목을 읽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점검하고(포살),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허물을 대중스님들께 지적해주길 요청하여 고치고(자자), 대중스님들과 경책과 격려를 주고 받으며(대중갈마), 부처님 법을 토론하며 수행을 점검하며(법담탁마)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렇게 수행자는 대중속에서 성장하고 대중은 수행자를 보호하며 무엇이건 대중이 다함께 결정하고 구성원 누구에게나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집니다. 독단적으로 사찰을 운영하거나 돈선거로 대중을 기만하거나 종법을 어겨 승가에 손해를 끼쳐도 같은 편이라고 봐주는 것은 진정으로 승가에 귀의한 것이 아닙니다.

 


귀의승을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번역하다 보니 재가자들이 스님들을 조금만 비판해도 종단에서는 삼보를 비난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감로수 판매수입이 다른곳으로 빠져나가게 한 자승스님을 고발한 조계종노조를 삼보를 비방했고 종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개인의 비리를 고발하여 승단의 손해를 막아보려는 행위는 칭찬을 들어야 함에도 이들을 징계한 것은 조계종 인사위원회의 스님들이 삼보와 승가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반증입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번역이 스님들 스스를 승보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권위적이게 만들고 재가자들의 비판을 용납하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청정승가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귀의승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저는 법정스님이 일찍이 제안하셨던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위없는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청정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는 삼귀의를 제안합니다. 종단에서는 공동체의 의미를 없애버린 삼귀의를 만들어 놓았지만 뜻있는 재가단체나 스님들은 이미 법정스님이 제안한 삼귀의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청정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는 삼귀의는 앞으로 종단에 미칠 선()한 영향력은 막대하리라 봅니다. -



청정한 승가에 귀의합니다.pp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