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가사 석조 승가대사좌상 (승가대사상) 

승가대사는 인도 승려로 당나라에서 활약했던 승려이다. 관음보살로 널리 추앙을 받았으며 그를 추종하는 승려들이 적지 않았다.

신라에도 그를 그리는 승려들이 있었는데 1024년 지광 등이 중심이 되어 광유 등이 조성하여 승가사 승가굴에 봉안했다.
불상이나 보살상도 아닌 승려상을 만든 것은 그리 흔치 않은 경우로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을 제외하고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
이다.
하얀 피부를 지닌 그를 살펴보면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고 얼굴은 넓적하면서도 광대뼈가 튀어나와 노인같은 인상으로 보인다.
긴 상체에 비해 체가 유난히 넓어 고려 초기 철불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양 어깨를 감싼 옷은 주름선이 굵으면서도
간결하다. 몸통 뒤에는 시커먼 피부에 광배가 있는데 머리 뒤쪽 두광에는 연꽃무늬와 덩쿨무늬, 모란무늬가 새겨져 있고, 둥근 원

형의 신광에는 덩쿨, 보상화무늬가 새겨져 있다. 광배 뒷면에는 태평 4년(1024년)에 조성되었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그의 탄생

시기를 알려준다.
승가대사상은 예전에는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52호였으나 근래 보물 1,000호로 승격되었다. (최근에 국가 보물이 2,000호까지 늘

어났음)





2. 승가대사좌상 (승가대사상)

승가굴이라 불리는 굴 속에 승가대사상이 깃들여져 있다. 승가굴은 승가사가 창건되던 시절부터 등장하는 자연산 굴로 수행 공간
으로 쓰였으며 현재는 승가대사상을 약사불로 삼으면서 약사전을 칭하고 있다. 대사상 옆에는 대자연이 베푼 샘터가 있는데 바가
지에 떠서 살짝 들이키면 된다. 굴 속이라 한여름에도 시원하며 겨울에는 반대로 따스하다.





3.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승가사 경내에서 북쪽 높은 곳 구석진 곳에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커다란 바위에 홈을 약간 파고 마애불을 크게 새겼으며,
머리 위에는 머리돌을 넣어 마애불의 얼굴을 보호한다.
단호한 표정을 지은 듯한 얼굴로 입가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으며, 몸체는 당당하지만 각이지고 평판적인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어
경직된 모습처럼 보인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 옷을 걸친 우견편단으로 왼팔에 새겨진 옷주름에서는 기하학
적인 추상성이 엿보인다. 손은 왼손을 배에 대고 오른쪽은 무릎 위에 올린 모습이고,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에는 연꽃무늬가 화사
하게 새겨져 있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월북미술가인 김용준은 신라 후기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1947년 12월 14일자 경향신문에

'눈썹과 눈으로부터 코 입술이 모두 다 예쁘고 시원스런 표현이라든지 신라 석조의 특색인 턱 아래 한 곡선을 그어 아래턱을 만든
솜씨며, 얼굴 모양의 턱이 꽉 받치고 원만 후덕하고 복스러운 맛이라든지 의복과 가부좌의 자세며 팔각형으로 된 천개를 반쯤 돌

을 파고 넣은 것과 연좌의 유려한 선' 등을 들어 틀림없는 신라 조각이라 했다.
승가사 경내와 가까워 승가사의 관리를 받은 것으로 보이며, 1968년 김신조의 북한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부근에서 격전이 벌어
적지 않게 총상을 입기도 했다. (그때 크게 중수를 했음) 남북 분단의 비극이 사람 뿐 아니라 자연과 문화유산까지 고통을 주었
것이다.





4. '가양심신(可養心神)' 바위글씨
승가굴(약사전) 부근 바위에 마치 뱀처럼 기어가는 듯한 모습의 바위글씨 4자가 새겨져 있다. 그는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 여겨

지는데 가양심신이란 마음을 수양하기 좋은 명당길지라는 뜻이다. 즉 승가사를 심신 수양에 좋은 곳이라 표현해 한 글자 선물로
준 것이다.



5. 파괴된 비석의 아랫도리, 비좌

고색의 때로 가득한 화강암 비좌로 3단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넓적한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어느 비석의 밑도리였는지는 귀신
도 모르는 실정이나 고려 중기 승려인 탄연이 쓴 승가굴 중수비가 승가사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비석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해서 승가사 5월 나들이는 마무리가 되었다. (승가사는 지금까지 4~5번 정도 가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