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민사 정문

바다의 해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아산 현충사를 비롯해 전국에 많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 중 제일 먼저 지어진
당은 어디일까? 그 해답은 바로 여수 충민사이다.

1601년 오성 이항복이 왕명을 받아 통제사 이시언을 시켜 사당을 지었는데, 우부승지 김상용이 선조에게 간청하여 충민

사액을 받았다. 1732년 중수했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정리 사업 때 충민단만 남기고 싹 철거된 것을 1873
지역 유림들의 진정으로 다시 지었다. 이때 판서 윤용술이 충민사 현판을 작성하여 사당에 내걸었다.

1919년 고약한 왜정이 사당을 부셨으나 1947년 지역 주민들이 다시 지었으며, 1975년 정화사업으로 지금에 이른다.


충민사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이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춘기 석채례를 지

내고 음력 9월 10일에 추기 석채례를, 양력 4월 28일에 충무공 탄신제를 지낸다.

이순신 장군 사당 중 최초로 지어지고 최초로 사액을 받은 사당으로 아산 현충사보다 103년 일찍 건립된 유서가 깊은 곳

이다.


2. 익살스럽게 생긴 여수 연등동 벅수 모조품

연등동 벅수는 그 흔한 돌장승으로 보면 된다. (장승을 여수 지역에서는 벅수라고 부름) 1788년에 지어진 것으로 예전 좌수영
서문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좌수영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및 이정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든 좌수영과도 관

련이 조금 있어서 전라좌수영을 천하 제일의 수군기지로 키웠던 이순신 장군의 사당, 충민사에 그 모조품을 세워 사당을 지키

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3. 평화로운 모습의 충민사 외곽




4. 충민사 홍살


5. 충민사 중심부로 인도하는 계단과 외삼문 - 저 높은 곳에 충민사 사당이 자리해 있다.



6. 충민사 약수터 (석간수)
이순신 장군이 매일 이곳 물을 마셨다고 한다. 아직 수질은 양호하여 한 모금 쭉 들이키니 목구멍과 몸 속이 싹 시원해진다.

저 물의 힘으로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모양이다. 참고로 이순신과 그의 수군이 처리한 왜선은 무려 700

여 척, 도축한 왜군의 수는 10만에 이른다. 반면 전사한 그의 수군은 3자리에 불과하며, 파괴된 배도 없다. (조금 부서진 배

는 여럿 있음)
단 6년 동안 전쟁을 수행하다보니 전염병이 좀 속을 썩여 아까운 그의 수군들이 수백 명씩 죽어나가기도 했다.


7. 충민사 정화 사적비

박정희 정권이 1975년 충민사를 정화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다. 박정희는 천하를 지키다 산화한 이들의 사당을 크게 정화
하고 성역화했는데 그것까지는 좋으나 문제는 그가 좋아하는 베이지색을 사당 건물에 강제로 입혔다는 것이다. 하여 많은
사당과 성역화된 역사 명소의 건물들이 죄다 베이지색 떡칠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베이지색을 많이 걷어내었음)


8. 충민사의 핵심부를 머금고 있는 내삼문


9. 시원스런 팔작지붕을 지닌 충민사 본전 (충민사 중심 건물)

충무공 이순신과 이억기, 안홍국이 봉안되어 있다.



10. 충민사에 봉안된 충무공 이순신 영정

이순신의 표준 영정으로 저 영정을 그린 이는 친일파 화가인 김은호이다. 이 나라가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러운 일파 화가가 거룩한 해신의 영정까지 그리넣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친일 떨거지들은 정치, 경제, 역사,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말기 암환자의 암세포처럼 두텁게 깔려있어 이 나라를 좀 먹고 있다. 하루 빨리 그들을 청산하고 처

단하여 나라를 바로 세워야될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마저도 점점 요원해지는 것 같다.

특히 정치, 행정, 사법, 교육에서 친일 매국노의 자손들이 더럽게들 설치고 있어 문제이다. 저들의 모가지를 싹 따버리고 단죄
 정의의 용사와 몸부림이 절실하다.


11. 전라우수사 의민공 이억기의 영정
이억기(1561-1597)는 전주이씨 사람으로 무예와 수영에 능했다. 경흥부사로 있을 때 두만강 너머의 번호가 소란을 피우자 이

를 소탕했으며, 1592년 전라우도수사가 되어 전라우도의 바다를 맡았다. 그는 이순신과 손잡고 그를 도와 많은 전공을 세웠으

며, 이순신이 참소를 당해 고통을 겪자 이항복과 함께 이순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1597년 어리석은 원균이 무리하게 수군을 이끌고 출진하면서 칠천량에서 잠시 쉬었는데, 이때 왜군의 파상적인 기습 공격으로

이순신이 공들여 키운 수군은 거의 전멸을 당하고 이억기는 용전하다가 힘이 다해 결국 물로 뛰어들어 전사했다.


12. 충현공 안홍국(1555~1597) 영정

안홍국은 순흥안씨 사람으로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많은 전공을 세웠다. 1597년 보성군수가 되었고, 이순신이 불의의

파직을 당하자 원균 휘하에서 중군으로 참전했는데, 군선 30여 척을 이끌고 안골포와 가덕도의 왜군 주둔지를 공격하다가 안

골포해전에서 전사했다.


13.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춘 잘생긴 충민사 사적비


14. 충민사 뜨락에 놓여진 커다란 돌들 - 돌의 생김새를 봐서는 옛 충민사 건물의 주춧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