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녕대군 이제 묘역의 사당인 지덕사

지덕사는 양녕대군과 광산김씨 부인의 사당으로 1675년에 숙종이 양녕의 덕망을 기리고자 세웠다. 1789년 정조는 '지덕사'
란 현판을 내렸는데, 사연은 이렇다. 
주나라 태왕의 맏아들인 태백이 태왕의 심중을 알고 세자 자리를 동생에게 양보한 사례가 있었다. 이후 공자가 태백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태백은 가히 지덕이라 할 수 있다' 말을 하니 거기서 사당 이름을 따왔다. 이는 양녕이 세자 자리를 동생인 충

녕(세종)에게 양보한 행적을 주나라 태백에 빗대어 '지덕사'란 이름을 내린 것이다.

원래 사당은 남대문 밖 도동(서울역 동남쪽)에 있었으나 1912년 묘역이 있는 국사봉 밑 현 자리로 이전되었으며, 2018년 4
월에 양녕 묘역이 자유의 공간으로 해방이 되었으나 지덕사는 사당인 탓에 여전히 빗장을 걸어잠구고 있다. 하여 관리사무
소에 관람을 요청해 보았으나 안된다고 그런다.

지덕사 내부는 사당(지덕사)을 중심으로 제사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 제사를 준비하는 제사장 등의 부속 건물을 지니고 있

으며, 사당 정문은 삼문이다. 그리고 사당 뒤에는 별도의 협문이 있다.



2. 굳게 닫힌 지덕사 삼문
문짝이 3개 있어서 삼문(3개의 문)이라 부른다. 흔히 말하는 삼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문 마다 각각 지붕을 지니고 있

고 그것이 3개로 이루어져 있어서 삼문이라 부르며, 바깥 삼문은 외삼문, 사당 앞 삼문은 내삼문이라 부름)


3. 뒷쪽에서 바라본 지덕사의 맞배지붕 뒷통수와 제기고(지덕사 옆 건물)



4. 지덕사 배치도와 단면도


5. 양녕대군 묘역의 재실인 도광재 현판


6. 산뜻하게 꾸며진 지덕사 주변
양녕 묘역은 공원 같은 상큼한 모습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7. 양녕묘역 산책로


8. 지덕사 앞에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 (이 나무는 뭐지??)


9. 양녕대군 묘역의 정문인 양명문
삼문 형태로 이루어진 양명문은 평소에는 좌/우 2개의 문을 열어두며. 가운데 문은 양녕 묘역 제향일 등 극히 일부 날에만 열
린다.




10. 길(국사봉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지덕사 (가운데 큰 집이 지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