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릉의 원찰인 남양주 봉선사

광릉숲 남쪽에 둥지를 튼 봉선사는 우리나라 교종의 본산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이다. 이렇게 대단한 위치와
위엄을 지닌 이 절은 969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했다고 전한다. 운악산 자락에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 운악산은 다름이 아닌 현등사를 품은 가평과 포천 경계의 운악산이다. 그 산세가 여기까지 미친다고

하여 여기도 운악산으로 친 것 같다. 이후 조선 세종 때 불교 7종을 선교양종으로 통합하면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1468년 세조의 능인 광릉을 절 부근에 썼는데,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 윤씨는 세종 때 아작난 운악사를 89칸 규모로 재
건하고 이름을 봉선사라 하여 광릉을 지키는 원찰로 삼았다. 
절이 완성되자 예종이 봉선사 현판을 내렸다고 전하여, 특별
히 대종(동종)을 절에 내렸다.

1550년 교종 수사찰이 되어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593년 낭혜가 중창

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다시 파괴되어 1637년 주지 계민이 중창했으며, 1749년 재점이 중수했다.
1790년 나라에서 천하 사찰을 관리하고자 5규정소를 설치하면서 봉선사는 함경도 사찰을 관리하는 규정소가 되었으며,
1848년 화주 성암과 월성이 중수했고, 1902년 서울 도성 안 원흥사를 수사찰인 대법산으로 삼았을 때 봉선사는 16개 중
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경기도 지역 사찰을 관리했다.

1911년 왜정이 사찰령을 반포하면서 31본산의 하나가 되었고, 교종대본산으로 지정되었다. 1926년 주지 월초가 대웅전

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삼성각을 지었으며, 6,25전쟁이 터지자 처음에는 별탈이 없었으나 1951년 3월 6일 부근에서 전투
가 벌어지면서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파괴되는 비운을 겪는다. (삼성각만 유일하게 살아남았음)

1959년 화엄이 범종각을 세우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운경, 능허가 운하당을 세웠으며, 1970년에 주지 운허가 큰법당

을 중건했다. 그리고 1977년 월운이 영각을 세웠다.

경내에는 큰법당과 관음전, 지장전, 삼성각, 조사전, 청풍루, 방적당, 회랑 등 20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

는 국가 보물인 동종(대종)과 비로자나삼신괘불도, 지방문화재인 칠성도, 독성도, 목조불좌상, 국가 등록문화재인 큰법당

이 있다.
절 앞에는 넓게 논두렁을 닦아 연꽃을 심었는데, 매년 7월 하순에는 행복바라미 봉선사 연꽃축제가 3일 일정으로 열린다.
내가 이번에 봉선사를 찾은 것은 바로 그 연꽃축제를 보고자 함이다. (올해 봉선사 연꽃축제는 7월19일~21일까지 열림,

본글은 작년 것)
봉선사와 광릉은 1km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나 충분히 한 덩어리로 둘러볼만하다. <시내버스는 1정거장 거리(의정부 21

번 버스 이용, 봉선사입구에서 광릉 정문까지 도보 20~25분 거리>


1. 봉선사 동종(대종)

동종은 봉선사의 제일 가는 보물로 범종루 1층에 들어있다. 1469년에 왕실에서 만들어 하사한 조선 초기 대형 범종의 하
로 높이 238cm, 입지름 168㎝, 두께 23㎝ 규모이다.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서로 등지며 종의 고리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조선 종의 모습이다. 종의 어깨에는 2중의 가로줄을 돌려 몸통 부분과 구분짓고 있으며, 종 가운데는 굵고
가는 3중의 가로줄을 그어 몸통 부분을 상/하로 나누고 있다.

줄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연곽과 보살입상을 교대로 배치했고 가로 줄 아랫 부분에는 강희맹이 글을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장문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종을 만든 이유와 관련자들의 이름이 쓰여 있으며, 종 입구 위쪽으로 넓은 띠가 있는데, 그
안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파도치는 모양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고려시대에 비해 종 입구가 넓어진 형태로 몸통에 있는 가로 띠와 보살입상 그리고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이라는 조
선시대 종의 새로운 요소가 등장한 점에서 조선시대 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어 국가 보물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종의 나이가 550년을 헤아리나 아직 정정하며 새벽과 저녁에 매일 종을 치고 있다. 범종루 내부는 접근이 통제되어 있으니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2. 봉선사 동종의 위엄
동종 밑에는 속인들이 무심하게 던진 동전들이 잠을 자고 있다. 저 동전을 저리 방치할 것이 아니라 싹 수거하여 제발 좋

데에 쓰기를 바란다.




3. 대의왕전

범종루 옆에는 근래 지어진 대의왕전이란 팔작지붕 건물이 있다. 금동 광배와 피부를 지닌 약사여래불이 약합을 들고 앉아
는데, 얼굴은 도금을 입히지 않고 돌의 원초적인 색깔을 유지하고 있어 서로 어색한 모습을 보인다.


4. 대의왕전 약사여래불

피부와 광배가 온통 금동색이나 얼굴만 하얀 색이다. 게다가 몸통에 비해 얼굴도 너무 커 달랑 얼굴만 있는 모습 같다.


5. 봉선사 회랑
봉선사 경내로 들어서러면 청풍루를 지나거나 회랑을 지나거나, 범종루 옆을 지나야 된다. 회랑은 옛날부터 있던 것을 6.25

이후에 재건한 것으로 마치 양반가의 행랑채와 비슷한 모습이다. 이런 식의 건물을 지닌 절이 거의 없어 15세기부터 왕실의

원찰로 잘나갔던 봉선사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6. 네모난 연지 위에 닦여진 관세음보살상
회랑 앞에는 조그만 네모난 연못이 닦여져 있다. 그 위에는 돌로 다리와 공간을 만들고 날씬한 모습의 관세음보살상을 두었

는데, 그 모습이 성북동 길상사에 있는 관세음보살상과 비슷하다.



7. 성북동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과 많이도 닮은 봉선사 관세음보살상


8. 큰법당으로 인도하는 돌계단과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3층석탑과 큰법당




9. 봉선사 큰법당

큰법당은 봉선사의 법당(절의 중심 건물)으로 그 흔한 대웅전 대신 큰법당을 칭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게다가 현판도 한

문이 아닌 한글로 쓰여있어 꽤 개성이 넘친다.
봉선사 법당은 1469년에 지어졌으며, 1637년에 중수했다. 허나 6.25때 몽땅 파괴되고 1970년에 운하가 건립했다. 그의 뜻에 

따라 건물 이름을 큰법당이라 했으며,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다포양식의 팔작지붕 집으로 세웠다. 근대 건축 재료와 구조

로 전통성을 표현했던 1960~1970년대 기술을 대표하는 건물로 손꼽혀 국가 등록문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10. 여름 햇살을 즐기고 있는 큰법당과 3층석탑


11. 봉선사 운하당

큰법당 뜨락 서쪽에 자리한 큰 건물로 선방과, 요사 대중방으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