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봉선사 3층석탑과 설법전(청풍루)

청풍루는 팔작지붕 2층 건물로 설법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1층에 종무소가 있고, 2층은 설법전으로 쓰이고 있는데, 6.25 이
전에는 천왕문과 해탈문, 소설루가 있었다. 그들이 전쟁으로 모두 사라지자 신도들이 '조약돌 모으기 운동'을 벌여 1985년
지금의 청루를 지었다.


2. 지장전

지장전은 지장보살과 명부(저승)의 10왕 등 명부 식구들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위패를 봉안했던 어

실각이 있었으나 6.25 때 파괴되어 쓰러졌으며,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 현재의 지장전을 세웠다.


3. 지장전의 주인인 지장보살상과 무독귀왕, 도명존자상


4. 지장전에 봉안된 명부(저승)의 10왕과 시왕탱, 사자상



5. 조사전

조사전은 1977년 7월 대시주인 정보현행의 지원을 받아 지어졌다. 처음에는 개건당의 역할을 했으나 근래에 아래쪽에 새로

건물을 지어 개건당으로 삼고 기존 건물은 조사전으로 이름을 갈아 계민선사, 월초 등 봉선사를 거쳐간 조선 후기~20세기
조사들의 진영을 봉안했다.



6. 개건당

꽤나 생소한 이름의 개건당은 현재의 봉선사를 창건한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 공덕주인 계민선사, 정문수행을 봉안한 건물로
개산과 중건의 머릿글을 따서 개건당이라 했다. 현재는 절의 주요 수입원인 납골당의 역할까지 맡게 되어 절의 곳간을 넉넉
히 채워주고 있다.


7. 개건당 현판의 위엄


8. 큰법당에 봉안된 금동석가3존불과 후불탱



9. 삼성각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건물로 1926년에 월초화상이 세웠다. 6.25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이라 경내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이기도 한데, 산신과 칠성, 독성 등 3성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들은 1칸씩 차지하여 별도의 현판을 내걸고 있다. 하여
산신의 공간은 산령각, 가운데 칠성의 공간은 북두각, 독성의 공간은 독성각을 칭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칠성도와 독성도는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지니고 있으니 꼭 살펴보기 바란다. 봉선사는 조선시대 때 교종 본산이

자 5규정소의 하나이며, 31본산의 하나로 명성이 대단했으나 6.25때 절의 깃든 장대한 흔적들이 상당수 날라가면서 문화유
산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


10. 경내 서쪽 구석 샘터
서별당 주변 그늘진 곳에 오래된 샘터가 있다. 푸른 이끼가 자욱한 이곳은 오랫동안 봉선사의 식수를 책임지던 샘터이나 지
금은 거의 무늬만 남아있다.


11. 봉선사 독성도

삼성각의 독성각 부분에 봉안된 독성도는 독성(나반존자) 할배와 그 식구를 머금은 탱화이다. 금호약효가 수화승으로 활동

한 1883년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1903년에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으며 20세기 초반 화풍으여겨진다.

독성은 동그란 신광을 지니고, 왼손에 석장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영지를 들고 있다. 독성의 좌측에는 걸망을 지고 있

진각거사가 서 있으며, 우측에는 동자 2명이 있다. 학과 거북이, 소나무, 영지, 구름, 바위, 물 등의 수복장수를 상징하는

장생의 요소들을 배치시켜 독성신앙의 영험함을 은유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민화(속화)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독성도 앞에는 아주 조그만 독성상이 귀엽게 자리해 있다.



12. 봉선사 칠성도

삼성각 중앙인 북두각에 봉안된 칠성도(칠성탱)는 치성광여래, 일광보살, 월광보살 등 칠성 식구들을 머금은 탱화이다. 19

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치성광여래를 중앙에 두고 일광/월광보살을 좌우에 두었으며, 칠성을 상징하는 7여래와 칠원성군을

중단과 하단에 배치했다. 존상들 사이사이에 구름을 배치해 3단으로 구획했으며, 좌우 천상세계의 채운 속에 삼대육성을 표
현했다. 비단에 적색, 녹색, 갈색을 주로 사용하여 다소 무거운 감이 있으나 구름의 테두리를 호분으로 처리하여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었으며, 치성광3존과 7여래와 성군, 그리고 천상에 삼대육성만을 표현한 간단한 구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