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뒤쪽에는 옛 종친부 건물이 있다. 종친부는 역대 제왕의 어보와 영정을 보관하고 제왕 내외의 의복

을 관리하며, 왕족들의 봉작승습, 관혼상제 등 왕실 관련 일을 보던 곳이다. 조선 초에는 '제내제군소'라 하였으며, 1430년
터 종친부라 불렸다. 1907년 종친부 기능이 폐지되면서 규장각이 그 일을 대신 살피기도 했다.
현 서울관 일대가 종친부 자리로 이곳에 기무사와 국군서울지구병원이 들어서면서 경근당과 옥첩당은 정독도서관 뜨락으
로 옮겨졌으며, 기무사와 국군서울지구병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제자리
로 돌아왔다. 비록 건물은 예전 자리는 아니지만 옛 종친부 로 왔으니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겠다.

1. 종친부 경근당
경근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옥첩당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들을 정독도서관에서 본 것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이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2. 경근당과 회랑으로 이어진 옥첩당

옥첩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경근당 보조용이다.


3. 경근당(왼쪽)과 옥첩당(오른쪽) 전경


4. 경근당과 옥첩당 뒷모습


5. 종친부터 우물

이 우물은 화강암 돌덩이 2개를 원형으로 이어 붙인 형태로 상부에 네 귀가 조출되어 있다. 이들은 1984년 기무사에서 뜨

락 공사를 하다가 지하 3m에서 발견된 것으로 원래 위치에 두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보니 무늬만 우물이 된 것이

다. 보통 우물은 지하로 뻥뚫려있는데 반해 여기는 완전히 막혀있으며, 물받이 돌로 사용되었을 석물 1점을 우물 안에
여져 있다. 네 귀가 조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곳 우물과 같이 화강암 두 덩이를 원형으로 이어 붙인 우물은 창덕궁과 운
현궁 이로당 후원에도 있다.

이 우물은 제자리에서 강제로 옮겨져 원형을 잃었으나 개화기 이전에 조성된 상당히 연조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위치한 곳이 경복궁 동쪽 종친부터 조선시대 관청 우물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6. 잡석만 가득 머금은 종친부터 우물


7. 종친부터 소나무 (서울시 보호수)
약 110년 정도 숙성된 소나무로 높이 4.5m, 나무둘레 190cm이다. (2007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약 100년)

위치를 보아 종친부 관리들이 심은 것으로 여겨진다.



8. 종친부 이승당터

종친부는 앞서 언급한 경근당, 옥첩당 외에 이승당도 지니고 있었다. 경근당, 옥첩당은 살아있으나 이승당은 사라졌으며,

속세에 해방된 이후, 표석을 세워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를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