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저고리와 엄마
엄마는 손수 고치를 잣고 베틀로 꽁꽁 짜서 무명저고리를 지어 입었어요.
엄마는 저고리를 해님처럼 소중히 여겼어요.
엄마의 일곱 아가들이 엄마 젖 냄새가 나는 저고리에 볼을 연거푸 부비며 자랐거든요.
일곱 아가들의 추억이 아련히 담긴 꿈같은 냄새가 나는 저고리예요.
엄마의 일곱 아가는, 첫째 복돌이, 둘째 차돌이, 셋째 삼돌이, 넷째 큰분이, 다섯째 또분이, 여섯째 막돌이,
일곱째 무돌이에요.
아가들이 다 자라자, 엄마 저고리는 닳고 닳았고, 엄마는 저고리를 장롱 바닥에 넣었어요.
일곱 아가들의 코 흘린 냄새, 웃음소리, 울음소리를 소복소복 담아서요.
하늘하늘 흐느끼듯 눈 내리는 밤, 엄마는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장롱 속 저고리를 끄집어 내어
일곱 아가들을 떠올려 봅니다.
일본 순사들이 땅도 곡식도 빼앗아 갈 때, 아빠는 먼 길을 떠났고 만세 소리가 산골에까지 메아리 질 때
일본 헌병 총칼에 찔려 죽었을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복돌이도 아빠 뒤를 따라 북간도로 가서 독립군 무리 속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요.
차돌이는 일본기 머리띠를 두르고 징용으로 끌려가 전사했고, 동경으로 유학 떠난 삼돌이는 의젓한 신사가
되었다는데, 끝내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낡은 저고리에 여미어져 있는 엄마의 허전한 가슴을 안고 큰분이는 꽃가마를 타고 시집을 갔습니다.
어느 덧 또분이가 머리댕기가 허리 밑으로 늘어뜨려지도록 컸을 때 전쟁이 일어났어요.
만삭이 되었다는 큰분이가 걱정되었지만 또분이와 막돌이, 무돌이를 앞세우고 엄마는 피난길에 나섰어요.
엄마 얼굴의 주름살은 마구 뒤얽힌 거미줄 같았고, 퍼런 힘줄이 돋은 팔뚝이 막대기처럼 여위어 갔어요.
피난길 대포소리에 도망치던중 막돌이가 잃어버린 밀가루 자루를 찾으러 갔다가 포알의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지요.
막돌이를 살리기 위해 또분이는 양공주가 되었고, 새까만 검둥 아가를 낳은 뒤 엄마 곁을 떠났습니다.
배꽃가지에 하얀 둥근 달이 걸릴 때 엄마는 막돌이, 무돌이와 함께 소쩍새가 우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재 넘어 사는 큰분이가 딸을 낳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제 엄마의 머리칼은 강바람에 나부끼는 명주실처럼 희어졌지요.
무돌이가 나룻배를 타고 입대를 했습니다. 기러기 울며 날아오는 가을인데도, 불볕이 타고 있다는 월남에서
보내오던 무돌이 편지가 뚝 끊기더니 누렇고 길쭉한 전사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엄마는 남아 있는 막돌이의 한쪽 다리가 되기 위해 퍼렇게 핏줄이 돋은
가늣한 팔로 호미를 붙잡고 목화를 심었어요.
뭉특하게 닳은 호미 끝엔 월남에서 싸우는 무돌이의 모습이 가끔씩 비쳐 보이고, 잇달아 또분이, 큰분이,
삼돌이, 차돌이와 복돌이도 아른거렸어요.
엄마는 넘어가지 않는 미음을 억지로 삼키며 버텼지만 이미 숨결이 높아져 있었지요.
배꽃 잎처럼 하얀 수의를 입은 아기 새들이 엄마에겐 뽀얀 등불로 보였어요.
그 속에서 인자한 아빠의 모습과 복돌이, 차돌이, 삼돌이가 손을 잡고 서낭당 모퉁이를 걸어오고,
큰분이와 또분이가 색동저고리를 차려 입고 빨간 댕기를 나풀거리며 따라오고 있었어요.
막돌이와 무돌이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모습도 보이더니, 일곱 아가들이 한꺼번에 엄마 저고리에 안겨 왔어요.
엄마는 그렇게 일곱 아가들을 저고리 품에 안고 하늘나라 고향으로 갔답니다.
막돌이는 때 묻은 엄마 저고리를 산마루 청솔가지 위에 펼쳐 놓고, 목화밭을 매기 시작했지요.
갑자기 엄마 저고리가 펄펄 나부끼다 바람에 날려 공중에 떠올랐고, 회오리바람에 빙글빙글 소리개처럼 돌았어요.
해님이 구름 사이로 눈부신 빛을 쏟아 내렸습니다.
엄마 저고리를 가운데 두고 엄마의 사랑스런 일곱 아가들이 무지개를 타고 조롱조롱 나타났어요.
막돌이가 무지개의 한 끝을 잡고 목화밭 위에 사뿐히 펼쳐 놓았습니다.
엄마 얼굴이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반조각이 된 우리나라를 일곱아가와 엄마가 조용히 내려다 보고 있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