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최정윤

현재 위기상황 당시와 닮아… 회복도 같은 패턴일까
공통적으로 주택 공급 과잉 뒤 급감, IMF 때에는 집값 정상화 4년 걸려… "당시처럼 급등 힘들 것" 반론도 많아

시계를 13년 전으로 돌려보자. 1997년 11월 21일 오후 10시.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의 공식 발표로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사실상 국가 부도사태를 맞았다. 부동산 시장에도 쓰나미가 몰려왔다. 곳곳에서 집값이 폭락하고, 전세금도 바닥을 모른 채 추락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1998년 한 해 동안 집값은 평균 12.4%, 전세금은 18% 넘게 떨어졌다. 국민은행이 집값과 전세금 조사를 시작한 1986년 이후 최대 낙폭이었다.

이후 주택 시장은 두 갈래 길을 걷게 된다. 폭락했던 전세금은 이듬해(1999년) 폭등세로 돌변한 뒤 2002년까지 4년 동안 연평균 10%가 넘게 줄달음쳤다. 반면, 매매가격은 2000년까지 약세를 보이다가 2001년(9.9%)부터 회복되기 시작했다.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 기준으로 2002년 1월(68.9)에야 IMF구제금융 직전 수준을 겨우 넘어섰다. 집값이 정상화되기까지 4년쯤 걸린 셈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 시장도 갑작스런 외부 충격으로 급격한 침체에 빠졌다가 최근 들어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금도 뛰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주택 시장이 IMF 당시와 비슷한 회복 패턴을 보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급 과잉 뒤 급감" 닮은꼴

IMF 당시와 2008년 이후 주택 시장의 공통점 중 하나는 주택건설과 입주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1기 신도시가 지어지던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전국 주택건설실적은 연평균 63만 가구를 웃돌았다. 그러나 IMF사태 이듬해인 1998년엔 30만 가구로 반 토막 났다. 이후 2000년까지도 연 40만 가구 수준에 머물렀다가 2001년에야 50만 가구를 회복했다. 당시 대우건설에 근무했던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IMF가 터지면서 모든 주택 사업이 한동안 올스톱됐다"면서 "불과 1년 만에 전세금이 폭등세로 돌아선 배경에도 주택 입주 물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상황도 비슷하다. 2007년 55만 가구에 달했던 주택건설 실적은 2008년과 2009년에 38만 가구 안팎에 그쳤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 영향으로 2007년에 일시적으로 공급이 급격히 몰렸다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올해도 9월말까지 주택건설 실적은 16만 가구에 불과해 연말까지 30만 가구를 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올해도 일시적인 입주 과잉에 시달리고 있지만 대부분 고가(高價)이거나 중대형 주택에 해당된다"며 "내년에도 전반적인 입주물량은 올해보다 최소 20~30% 이상 감소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주택시장 외부여건은 달라

물론 당시와 지금이 다른 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부분이 실물경제 여건과 정부 정책을 꼽을 수 있다.

IMF 당시에는 금융경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대출금리는 연 20%가 넘었고, 웬만한 대기업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가 없을 만큼 금융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었다. 집값 폭락의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헐값에 경매 시장에 쏟아져 나온 주택이 집값 하락을 부추겼다. 당시에는 경제성장률이 -7%까지 떨어지며 기업은 대규모 적자에 시달렸고 가계는 실업과 소득 감소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실물경기도 중소기업과 건설업 등 일부를 제외하면 나쁘지 않다. 수출은 사상 최대치를 매월 경신하고,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유례없는 흑자를 내고 있다.

정부 정책 기조도 IMF당시와 지금은 상당히 달라져 있다. IMF 극복을 위해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부분 풀어 경기 부양에 올인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주택경기 침체를 부인하지 않지만 집값 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주택시장 어디로 갈까

향후 주택시장이 IMF 당시와 비슷한 패턴을 보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찬성론자들은 일시적인 공급 과잉은 끝났고, 내년부터 공급 부족이 본격화하면 집값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공급의 대표지표인 입주물량은 내년부터 2~3년 동안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IMF 당시보다 실물경제 여건이 좋고, 저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각국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으로 자산 인플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IMF 당시와 지금은 주택시장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져 집값이 크게 오르기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고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소유보다 임대시장의 저변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가계부채와 주택 금융 규제로 구매력이 떨어지고, 가격상승 기대심리가 이미 꺾였다는 분석도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의 주택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정부의 정책이 급변하거나 외부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전국적인 수준의 집값 급락이나 급등은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부산_웃돈 붙은 분양권… 과열 조짐

부동산 시장의 중심이 지방으로 옮겨 갔다. 서울과 경기도 주택시장은 여전히 긴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방 대도시 중에는 '과열' 경고음이 울리는 곳도 있다. 부산·광주·대전·대구 등 전국 4대 대도시 주택시장의 실태와 전망을 긴급 점검했다.

"사실 우리도 좀 얼떨떨합니다. 1순위에서 마감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청약률이 높을 줄은 몰랐어요."

지난 5일 GS건설이 짓는 부산 해운대 우동에서 분양한 '해운대 자이' 아파트는 부산에선 거의 10여년 만에 최고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1순위에서 청약이 끝났다. 평균 23대1, 최고 58대1의 경쟁률이었다. 모델하우스 주변에는 부동산 시장 과열기에 나타나는 '떴다방(무허가 이동 중개업소)'이 50여개나 몰려들었다.

앞서 분양한 대우건설의 '당리 푸르지오' 역시 평균 7.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1순위에서 청약을 마감했다. 현지 중개업소에선 두 아파트 분양권에는 벌써 1000만~2000만원씩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고 전했다.

'해운대자이' 박희석 분양사무소장은 "이번 청약 열기는 특수한 현상"이라며 "부산 부동산 시장 전체가 과열 상태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 부동산 시장은 이미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부산 집값은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평균 12.3%나 뛰었다. 부산 사상구는 18.5%나 올랐다. 인근 도시인 김해(15.6%)와 창원(15.3%)의 집값 상승률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

미분양 주택이 줄어드는 속도도 빨라 지난해 말(9200가구)에 비해 43.2%(3977가구)나 줄었다. 수치상으로 볼 때 부산은 과열 초기 단계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지난 4~5년간 혹독한 부동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주택 공급이 거의 중단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토해양부는 부산 주택시장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부산에서 주택공급을 미뤄왔던 건설사들이 한꺼번에 분양에 나설 경우 다시 미분양 물량이 늘고 집값 상승세가 꺾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산에는 미분양 주택이 아직도 5200여 가구나 있고, 일부 아파트에 청약자가 몰렸다고 해서 과열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부동산 긴급점검] 광주_수완지구 활기… 미분양 지난해 3월보다 83% 줄어

하누리 조선경제i 기자 nur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광주광역시 최대 규모의 택지개발지구인 광산구 수완지구. 지구 면적만 460만㎡에 달하고 2만6000여 가구의 아파트가 공급된 미니신도시지만 작년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빈 집이 수두룩했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빈집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상반기부터 점차 온기(溫氣)가 돌면서 미분양 주택이 하나 둘씩 주인을 찾고 있다. 지난 6월 호반건설이 수완지구에서 분양했던 아파트는 최근 보기 드물게 전 주택형이 모두 마감되기도 했다. 수완지구가 활기를 띠면서 광주 전체의 미분양 아파트도 빠르게 줄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광주의 미분양 주택은 2150가구로 미분양이 가장 많았던 지난해 3월(1만2821가구)보다 83.2%나 줄었다. 부동산114 정길환 광주·전남 지사장은 "건설사들이 미분양 해소 차원에서 가격 할인 등 파격적인 분양 조건을 대거 제시하면서 수요자 관심이 높아진 데다 경기 회복 분위기를 타고 내집마련에 나서려는 수요자도 확실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는 미분양 주택 감소 속도와 비교하면 기존 집값 상승세나 신규 분양 시장의 활기는 덜 느껴지고 있다. 실제로 광주의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해 말 대비 평균 1.49%, 전세금은 2.19% 상승하는 데 그쳤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건설사들도 섣불리 새 아파트 분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올해 3분기 광주 지역에선 신규 분양이 한 건도 없었다. 스피드뱅크 김은진 팀장은 "광주는 부동산 호황기였던 2000년대 중반 인구에 비해 택지지구가 지나치게 대규모로 개발된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미분양 주택이 줄어들더라도 건설사들이 공급량을 보수적으로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방 부동산 긴급점검] 대전_집값 상승률 전국 3위… 눈에 띄게 회복

강도원 조선경제i 기자 theon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대전은 2008년 이후 전국적인 주택경기 침체기에도 비교적 집값 하락 폭이 작았다. 지방자치단체가 택지지구 물량을 조절해 주택 공급 과잉이 일어나지 않게 균형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전은 집값도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했고 대규모 미분양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다. 지난 2년간 미분양 주택은 3000가구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대전 주택 시장은 올 들어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종시 첫 마을 아파트 분양과 충북 오송바이오단지 입주 등 호재(好材)가 잇따라 나오면서 개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세금이 급등세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대전의 아파트 전세금은 지난해 말 대비 13.5% 올라 전국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다.

중소형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80%를 넘는 곳도 있다. 유성구 송강동 한솔·계룡(76㎡형) 전세금은 지난해 말 6500만원에서 현재 9550만원으로 47%나 올랐다. 집값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올해 대전 집값 상승률(5%)은 부산·경남에 이어 전국에서 세번째로 높다.

부동산114 김종호 충청지사장은 "지난 6~8년 동안 아파트 분양이 거의 없다 보니 주택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전세금과 매매 가격이 동시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식약청 등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 이전하기 시작한 충북 오송·오창도 전세금이 뛰고 있다.

대전과 충청권은 집값과 전세금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세종시와 오송 등 대전권은 부동산 시장이 눈에 띄게 회복세에 접어든 모습이지만 다른 지역까지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며 "행정기관이 중심이 되는 세종시가 지역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 부동산 긴급점검] 대구_8월후 소폭 상승… 극심한 침체 벗어

박성호 조선경제i 기자 jun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뭔가 변할 듯하면서도 자꾸 주저앉는 모습입니다. 많은 수요자가 아직 지갑을 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2008년 이후 건설업체들이 잇달아 아파트 분양에 실패하면서 '건설업체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대구지역 부동산 시장에도 살짝 온기가 느껴지고 있다. 집값은 상반기를 기점으로 상승세로 돌아섰고 전세 주택은 물량이 부족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대구지역 집값은 작년 말보다 0.07% 떨어졌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말 이후 대구지역 아파트 가격은 매달 소폭 상승해 2개월여 동안 0.19% 올랐다. 달서구 진천동 귀빈타운 2차(89㎡형)는 2개월 전보다 1000만원쯤 시세가 뛰었다. 수성구 지산동 시영 2단지(72㎡형)도 같은 기간 500만~1000만원 정도 가격이 상승했다. 달서구 진천동 현대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중소형은 매매가와 전세금 차이가 2000만원에 불과한 곳도 있다"며 "중소형은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진천동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큰 폭은 아니지만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게 어디냐"고 말했다. 한때 2만 가구를 넘던 미분양 아파트도 지난 9월까지 5000여 가구 이상 줄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구 부동산 시장이 극심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회복세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고 본다. 현재 남아 있는 미분양 아파트의 3분의 2가 소비자 선호도가 낮은 중·대형이라서 본격적인 수요 회복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2001~2007년까지 대구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이 2.9%로 전국 광역지자체 중 가장 낮다는 점도 주택 경기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김영욱 대구부동산경제연구원장은 "부산 집값이 오르면서 대구에도 기대감이 퍼지고 있지만 실물 경기가 뒷받침 되지 않아 회복기로 접어들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