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봉된 영화 '연평해전'을 통해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결승전 하루를 앞두고 북측의 의도된 NLL 불법 침범과 기습도발에 맞서 조국의 영해를 수호하기 위해 산화한 참수리 357정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들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 1차 연평해전에서 대패한 북한군은 함선의 포신을 T-34의 85mm 전차포로 강화하는 등의 치밀한 준비 끝에 선제공격이 불가능한 당시 교전수칙을 이용하여 차단 기동 중이던 참수리 357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함포로 명중시키고 집중 공격하였습니다.
북측의 기습도발로 인해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이 교전 초기에 사망 하였고, 병기사 조천형 중사, 조타장 한상국 상사,병기사 황도현 중사, 내연사 서후원 중사, 의무병 박혁 병장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6용사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전 후 현충원에 최초 안장시에 묘비명에 "연평도 근해에서 사망"으로 되어 있다 2008년 이후, "연평도 근해에서 전사"로 수정되었지만 여전히 전사자가 아니라 "공무상 순직자"로 되어있습니다. 명백히 북과의 전투중에 "전사"한 용사들을 "공무상 순직" 처리한 것은 역사적 진실과 전사자들의 명예 회복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1. 정장 윤영하
1973.11.24~2002.06.29
2. 한상국 중사
1975.01.31~2002.0629
한상국 중사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전사가 아닌 공무상 순직으로 격하하고
'니 남편 시체 찾다가 nlll 에서 전쟁이라도 나면 니가 책임 질꺼냐' 라는 폭언을 듣고 이민을 생각했다고 한다.
3. 조천형 중사
1976.0416~2002.0629
4. 황도현 중사
1980.0227~2002.0629
전사 당시 그의 나이 21세
전투중 얼굴에 탄을 맞아 형체를 알아볼수 없어 신발을 보고서야 황도현 중사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5. 서후원 중사
1980.1128~2002.0629
내연사 였던 서후원 중사는 배 아랫쪽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를 피신시키고 적과 교전도중 총탄에 맞아 숨졌다.
총탄이 빗발치는데도 서 있는 서후원 중사를, 곁에 있던 병사가 피하라고 끌어당기자
이미 사망했음에도 꿋꿋히 적함을 지켜보던 서후원 중사가 참수리 갑판으로 몸을 뉘었다.
6. 박동혁 병장
1981.0825~2002.0920
당시 상병으로 약통이란 별명을 갖고 있던 박동혁 병장은 전투시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좁은 갑판을 누비다
온몸에 파편상과 총상을 입고 83일간 투병하다 생을 마감했다.
박동혁 병장의 몸에서는 3kg이 넘는 파편조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