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적 은사에서 유추된 현대 영적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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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적 은사에서 유추된 현대 영적은사들

(중지주의자의 신학 안에서의 성령의 독특한 역사를 인정함)

-Modern Spiritual Gifts As Analogous To Apostolic Gifts:

Affirming Extraordinary works of the Spirit within Cessationist Theology-

-Vern Sheridan Poythress-

전화령

 

*  논문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해석학 교수인  포이츠레스(Vern Poythress) 글로서 1996 3 ETS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저널에 실린 내용이다. 성령론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위치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오해받는 점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론에 관한 개혁주의적 입장을  표현했다고 보았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더욱이 정암 박윤사도적 은사에서 유추된 현대 영적은사들

http://www.ipeniel.org/zbxe10/1007

2008.06.10 13:25:46 (*.189.188.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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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적 은사에서 유추된 현대 영적은사들

(중지주의자의 신학 안에서의 성령의 독특한 역사를 인정함)

-Modern Spiritual Gifts As Analogous To Apostolic Gifts:

Affirming Extraordinary works of the Spirit within Cessationist Theology-

-Vern Sheridan Poythress-

전화령

 

*  논문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해석학 교수인  포이츠레스(Vern Poythress) 글로서 1996 3 ETS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저널에 실린 내용이다. 성령론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위치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오해받는 점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론에 관한 개혁주의적 입장을  표현했다고 보았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더욱이 정암 박윤선신학의 성령론에 대한 확신을  대변해 주었다고 보았기에 관심을 끄는 논문이다 포이츠레스 교수는 조화 신학(Symphonic Theology)” “모세오경에서의 그리스도의 그림자(The Shadow of Christ in the Law of Moses)” “세대주의자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Dispensationalism)” 같은 책들을 썼으며 획일적인 관점에 치우치기 쉬운 개혁주의자들의 딜레마를  극복하도록 새로운 통찰력으서 전통적인 개혁자의 신앙을 파수해 나가게 한다. - 역자 

 

 

오늘날의 영적 은사가 사도들의 신적 권위적 은사와 동일시  수는 없지만  유사성을 나는 주장한다. 분명한 아무 명시가 없기 때문에 사도적 가르침과 성경의 캐논은 신적 권위를 갖는다. 다른 면에서 서로 유사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영적 은사가 여전히 교회에서 순수하게 사용될 수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카리스마적 은사들을 인정하는 자와 거절하는  사이에 중간 노선이 존재한다.

 

  1. 은사의 기독론적 중심

 

   견해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 중요한 구분을 필요로 한다. 첫째 우리는 성령의은사에 대해 생각하는 성경적 구조를 필요로 한다.

  신약  자체가 영적 은사의 신학적 원천이다. 중요한 열쇠가 에베소서4:7-11절에서 발견된다.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성령의 모든 은사를 주시는 분이다.(11) 그는 승리하셨고(8)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풍성한 소유로부터 나눠주신다(10). 사도행전 233절은 교회에 성령을 부으시는 서론으로서 그리스도가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았다 말씀하심으로서  그림을 보충시킨다. 그리스도의 성령 충만하심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대로 충만히 받는다(4:7).

  자연히 이런 반성은 성령 안에서의 우리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사역과 유사할  아니라 종속되는 결론으로 나가게 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는 마지막 위대한 선지자이시다(3;22-26).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는  분께 종속된 선지자들이 되었다.(2:17-18) 그리스도는  목자이시며(벧전5:4) 교회의 통치자이시다. 성령을 통하여 그는 종속된 목자들을 임명하시며(5:1-3;20:28) 양떼를 다스리고 관리하고 돌보는 은사를 주신다(고전12;28; 4;11)[목자들]).그리스도는 그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다.(20:28) 역시 그는 섬김의 은사를 주셨고(12:7-8) 우리 형제에게 목숨을 다하여 섬기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다(요일3:16).

  전통적으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직무,  선지자, , 제사장으로 분류하는 것이편리할  있다. 1 그리스도는 우리(선지자)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를 섬기시려고(제사장) 자기생명을 주셨다.  기능 모두가 히브리서 1:1-3절에 함께 나타난다. 그리스도와 연합될  우리는 그의 모습으로 옮겨지고 그의 형상을 닮는다(고후3:18; 8:29; 4:24). 우리는 그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선지자가 되었다.(3;16) 우리는 우리가 책임지는 영역에서그의 이름으로 권위를 행사하는 왕이다(2:6;6:4). 우리는 서로 서로 섬기는 제사장이다(요일3:16).

  적절한 성경적 구절이 보여주기를 이런 일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이 모든 방면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4:7) 말하는 은사가강한 곳에서 사람들은 교사들을 인정했다.(4:11) 다스리는 은사가 강한 곳에 장로들이나 감독들을인정하였다(벧전5:1-4) 섬기는 은사가 강한 곳에 긍휼히 여기는 봉사자와 수여자가 인정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섬김은 특별히 집사의 사역과 일치하도록 제안한  있다.(디아코니아라는 섬김 뜻하는 말이  사실을 지지한다)

  선지자적, 왕적, 제사장적 은사의  범주는 서로간에 분리되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나 그의 백성들의 생애 가운데 전형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예를 들면 지혜와 지식의 은사는 선지자적이고 행정과 기적적 능력과 치유의 은사는 왕적이다. 그러나 어떤 은사는 한가지 이상의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 예를 들면, 치유의 은사는 치료받은 사람들에 대한 긍휼의 은사이기 때문에 제사장적이라고   있다. 긍극적으로 선지자적, 왕적 그리고 제사장적 기능은 하나님 백성의 전체의 삶의 관점으로 확장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투명한 복사판으로 나누지 말아야한다.그렇지만 이런 분류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우리의 관계를 상기시키고 신약 속의 은사의 목록들 중어느 하나도 배제시키지 않게 한다.  

                                                       

 2. 은사 받은 자들의 피라밋

 

  은사가 다양한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약은 선지자적, 왕적, 제사장적 은사를 위한여러 기능적 수준을 인정한다. (다이어그램 1 보라) 그들은 무엇인가?

 

    다이어그램 1 2

                            영적은사

 

       1단계 메시야적                             예수그리스도

 

      2단계 사도적                            사도와 사도적사람들

 

                                                      신적권위

                                                      성경적권위



     3단계 특별한 은사                              목사들

                                                    교사들

                                                    장로들

                                                    집사들

 

    4단계 일반은사                                   모든 신자들

 

                   선지자적       왕적      제사장적

 

  첫째로 메시야적 은사가 있다.(Level 1) 그리스도만이 절대적으로 마지막 선지자이요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자신을 준비하셨다.

  둘째로 사도적 은사 혹은 기초적인 은사가 있다.(Level 2) 그리스도는 사도를 증인으로 임명하셨다.(1:21-22) 그들은 직접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하고 자신들을 영감시킨 성령의 역사에 근거하여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것을 항상 권위적으로 증언할  있었다. 그들은 구술적 증거로서 사도적 역할을 불연속적으로 수행했다. 사도들과 마가, 유다와 같은 사도적 사람들 밀접한 관련을 가진섬김은 신약의 정경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은 신약교회의 감독하는 일에 대하여 근본적인 결정을 이루었다.(6:,8:, 10:-11:,15:20) 그들은 불연속적인 왕적 역할을 수행했다. 사도들은 최초의 집사들을 임명했고 섬김과 긍휼의 사역을 수행케 했다.(6:1-7)  모든 분야에서 사도들의 역할은 반복될  없었다.

  셋째로 우리는 탁월한 반복적 은사를 갖는다.(Level 3) 사람들은 가르침의 은사, 다스림의 은사,구제의 은사를 가질  교회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개혁교회의 역사는이런 수준을 특별직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교회내의 교사들, 장로들, 집사들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든 신자들이 참여하는 단계를 본다.(Level 4) 성경이 보여 주는 대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신자들은 넓은 의미에서 선지자요 왕이요 제사장이다.

  충분한 신적 권위와 거기에 종속된(영감되지 않은) 은사들과의 구분은 지금 분명해졌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1:1,20:28) 교회의 주인이시다.(5;24) 그의 사역은 충분한 신적 권세를갖는다. 사도와 사도적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위탁된 자들로 그의 권위를 갖는다. 이러므로그들의 말과 공적활동은 신적 권위를 갖는다.(: 고전14:37, 살전2:13) 특히 그들의 직무수행에 있어서 사도의 말은 구조적의미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감된 말씀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말씀하신것이고 하나님에 의해서  기운을 받은 것이므로(딤후3:16) 절대적 신적 권위를 갖는다.

  역시 성령은 목사들, 교사들, 일반신자들에게 가르치고 말하는 은사를 수여하는데 있어서 종속적인 방법으로 수행하신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들이 절대적인 신적 권위와 완전을 수행하는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할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말씀에 대한 넓은 의미에서 영감 받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령이 현존하심을 인정한다. 우리는 역사하는 은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사가 적절히 수행될  성령이 능력으로임하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오류가 있고 성경의 표준에 의해서점검되어야한다. 성령에 의하여 오늘날 사역의 검증이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안에서의 계시의 종결성(1:1-3) 사도의 가르침의 근본인 성경(2:20)  정경이 완성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카리스마와 비카리스마적 대표자들 모두 이것을 인정한다. 3

     

 3. 말씀과 활동의 근거에 관한 이해

 

  역시 우리는 이미 세운 분류법에 따라서 다른 많은 방법으로 성령 은사의 기능을 분류할  있다.예를 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훈련된 은사, 그리스도인을 향한 은사, 세상에 향한 은사(크리스챤 공동체 밖에 있는) 구분할  있다. 4  목적상 그들의 사상과 행동에 근거하여 사람들의 인식에 초점을 맞춘 구분을 소개하는 것이 유익하겠다.

  첫째, 사람들은 성경의 특정 구절에서 그들의 행동 개념을 의식적으로 추론할  있다. 예를 들면강해설교를 행한 어떤 설교자는 성경의 어떤 특정한 귀절에 의도적인 근거를   있다. 술에 유혹 받은 젊은이들을 상담하는 어떤 장로는 의식적으로  취함에 대한 경고 귀절에 근거를  수있다. 개인의 슬픔을 위로하는 어떤 집사는 마음에 12:15절을 의식적으로 생각할  있다. 은사의 이런 타입을 추론적인 과정에서 생각해 보자.  활동은 성경의  구절 혹은  많은 구절에서추론되어진다.

  둘째, 다른 때에 사람들은 예측하고 느끼거나, 혹은 직관으로 행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해야만하고 특별한 일을 행해야한다고 느낀다. 그들은 어떤 상황을   있거나 자연스럽게 다시행하거나 혹은 특별한 환상이나 환청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서 그들은 자신의 경험에 유일한 근거가 되는 성경의 특별한 구절이나 일연의 귀절을 의식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그들의 경험은 그들이  이상 분석하지 않은 (아마   없는) 개인적인 추론으로부터 솟아 나온다. 이런 예가  추론적인 과정에서 흘러나온다.

  셋째, 사람은 행동의 근거를 부분적으로 의식함으로 행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성경에 나오는 어떤 모델의 상황과 비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성경적 상황과 평행이지만 비교의 성격을 판단하기에 적합한 모든 요소를 의도적으로 느끼려고 한다. 이런 과정들이 부분적으로는 추론적이다. 우리는 그들을 혼합된 과정, 혹은 창조적 분별 과정이라고 부를  있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는 추론적이든  추론적이든지 다른  쪽으로  많은 초점을 맞추려   있다.

 위의  Levels 평가 없이 의도적으로 묘사   있다. , 우리는  점을 인정하든 인정하지않든지 여러 사람이 행할  있는 바를 묘사하였다.

 우리는 이런  타입의 예를 신약에서 발견할  있다. 대부분의 사도적 설교는 추론적 과정을 포함한다.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28:23-24) 바울은 추론적 과정을 보여주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을 의존했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사도적 설교는 구약의 특별한 본문에 의해서 해석하고 논증하였다. 사도들은 그들의 청중을 설득시키기 위하여 열심을 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직접적인 신적 권위를 가지는 것을 주장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바울이 말한 바가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기(17:11) 때문에 그들을믿었다.

  계시록과 다른 곳의 이상은  추론적인 과정을 묘사한다. 요한은 이상을 보았고 음성을 들었고그가 보고 들은 바를 기록했다.(22:8)

   혼합된 과정과 창조적 분별 과정의 가능한 예는 사도행전15장에서 발견되어진다. 사도와 장로들은 분명한 성경에 창조적으로 호소함으로서 부분적으로 모순된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15:16-18)

    타입의 과정이 가진 경계선은 분명히 유동적이다.  행동을 위한 근거의 의식은 정도의 문제이다. 사람은 자기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다소 의식할  있다.

  사도적인 경우, 적절한 추론적,  추론적 과정은 모두 영감되었고 신적 권위를 갖는다. 반면에다른 경우, 그런 과정들은 영감되지 못했다. 사실상 그들은 마귀적일지도 모른다. 마귀들은 4:6딤후2:25-26에서 추론적인 과정을 사용하였고 누가복음4:34, 13:7, 12:24절에서는  추론적인 과정을 이용하였다.  추론적인 과정은 다윗이 슬픔에 빠졌을 (삼하19:4) 요압이 그의 임무를 환기시키기는 과정에서 나타난다.(19:5-8) 일반적으로 추론적,  추론적 과정 어느 것이 내적으로더 탁월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 양자는 사도의 모범에 의하면 영감을 받을 수도 있고,   비영감적일 수도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이런 그림과 연결시키는 것은 얼마나 적합한 일인가? 다이어그램 1 우리가 사도에 의해서 실행된 은사의 유추에 의해 성령의 현대적 은사에 대하여 생각해야한다고 말한다. 5  원리상, 추론적 과정과  추론적 과정, 그리고 혼합적인 과정의 은사 기능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현대적 예는 이런 관계를 분명히 해준다. 어떤 사람은 성경으로부터 나온 분명한논증을 매우 좋아한다. 그들의 은사는 추론적인 과정을 이용한다. 다른 이들은 성경의 오랜 연구와 소화를 통해서, 자신들이 마음에 진리지식으로 역사하는 성령을 통해서 옳은 것을 알고 자신들의 결론을 정당화하는 특정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은사는  추론적인 과정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은 전형적으로 어떤 것을 의식하지만 그들의 행동의 모든 성격을 알지 못한다.

  이런 다양한 과정은 구술적 은사 혹은 지식과 언어의 은사와 특별한 관련을 갖는다.  왕적, 제사장적 은사에 반대하는 점에 있어서 선지자적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 분명한 구절로부터 나온분명한 이론에 근거하여 우선적으로 알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복음과 일치하는 것의 직관적 의식에 근거를 가지고 말한다.(다이어그램 2)

 

 

                          다이어그램 2

 

                    추론적 은사와  추론적 은사

 

 

       Level 1 메시야적                     예수그리스도

 

    Level 2 사도적                           사도들과 사도적 사람들

 

                                            신적권위

                                            성경적권위 아래

 

   Level 3 특별은사                                    목사들

                                                      교사들

                                                      장로들

                                                      집사들

 

   Level 4 일반은사                                    모든 신자

 



                 추론적  비추론적

 

                    선지자적     왕적    제사장적

 

 

 

다이어그램 1, 2에서 현대은사는 항상 특별은사와 일반은사로 불리우는 Level 3, 4  속하는 것을주목하라. 현대 은사는 모두  유오하다. 그들 모두는 성경에 의존하고 정경을   수는 없다.그들은 유추적이고 사도적 은사(2 단계) 메시야적 은사(1단계) 일치되지 못한다.

  어떤 예를 생각해보자. Level 2에서 사도적 설교는 특별히 추론적 과정을 포함시킨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추론적 과정을 사용함으로 기록했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추론적 과정을 예로 제시한다. 6

  Level 3, 4 현대에 어떻게 진행되는가? 추론적 과정은 현대 설교와 정상적인 성경공부와 가르침을 포함한다.  추론적인 과정은 성경적 개념이나 귀절들이 마음에 자발적으로 생기지만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아는 수납자를 알지 못한다. 가끔 어떤 놀라운 예가 생긴다. 꿈과환상가운데 어떤 사람이 세마포를 입은  여인을 본다. 그녀는 진흙탕을 걷고 있었다. 진흙이 그옷에 튀어 올랐다. 그녀는 궁정문에 들어갔다. 밖에 서서 그녀는 더러움때문에 슬피울었다. 어떤사람이 그녀에게 아름다운 밝은 옷을 입혔다. 그녀는 옷을 입고 기쁨으로 궁정에 들어갔다. 혹은어떤 남자가  천사가 책을 기록하는 장소에 관한 꿈을 꾸었다.   위에  사람 이름이 기록되었다.  아래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과 자신이 받아드렸던 악한 사상이 기록되어있었다. 어떤사람이 피로 얼룩진 양손바닥을 보이면서 밝은 얼굴로 나타났다.   페이지 위에다 손을 올려놓았다. 그것을 읽어라는  음성이 들려 왔을 , “피때문에 그것을 읽을 수가 없나이다  천사는 대답했다.      

  정말 사도적 설교는 오늘날 설교에 대하여 유추적인가? 확실히 사도적 설교는 영감되었고 절대적이다. 오늘날 설교는 사도적 설교에 첨가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그것으로부터 추론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둘을 유추적이라고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점에 있어서  둘은 정말 유추적이다. 설교자들과 전달자들은 항상 사도의 모본과 심지어 절대적인 예수의 모본에서 교훈을 끌어 나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계시록이 오늘날의 환상, 꿈의 유추인지 아닌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대답은 우리가 설교의 경우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계시록은 영감되었고 절대적이다. 오늘날 영감,환상은 성경에 더해   없고 단지 그것에서 추론된 것일 뿐이다. 이런 추론적 성격은 위에 언급한  가지 예들, 진흙이 묻는 옷과 피가 뿌려진 책의 이야기 속에서  나타난다.  둘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용서와 칭의의 가르침을 포함시키고 있으며  둘은 성경에서 나온 주제와 사상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가  특정한 사람에게 칭의의 진리를 적용한다면 첫째는 더욱 일반적인 것이된다. 둘째 것은 오직 그것의 특별한 적용에 의해서 성경과  떨어졌고 모든 사람이  메시지의합법성을 인정할  있다. “ 사람이 환상이라고 부른 것은 현실적으로 성경진리를 그의 생활에적용하시는 성령에 의한 적용일  있다”. 7

  사실상 설교문맥에서 우리는 본문을 유추해서 사용함으로서 위로를 받을  있다. 이사야 6장에있은 이사야 이상은 절대적이면서 말씀 사역자들의 교훈의 근거가   있다. 사도행전 2, 베드로의 설교는 오늘날 설교의 모델이다. 고린도전서 12:-14: 오늘날 영적 생활의 훈련을 위한 기본적 원리가 된다. (고린도전서에 언급된 은사의 대부분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사람들은 가끔 다른 특이한 것과 관련을 가질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사도적 설교와 계시록이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계시를 포함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할 지도 모른다. 반면에 현대설교와 성경적 환상과 직관은  지식의 되새김을 포함시킨다. 그러나 실제라 할지라도 여기 있는  차이는 과장하기에 예민하고 용이하다. 사도적 가르침은 구약과 그리스도생활의 사건들, 예수님의 지상 생애(24:25-27, 44-49) 근거한 것으로 많은 범위를 차지한다. 비록  메시지가 처음 듣는 많은 사람에게 새롭게 들릴지라도 절대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계시록은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 그리고 다른 성경원천에서 나온 주제적인 재료로 많이 엮어간다. 초기의 사건을 기록함으로서 누가와 사도행전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사건에 덧붙인 새로운 것을 더하지 않고 소개한다. 더욱이 신적 권위는 옛것이든 새것이든 아무 데도 없다. 신명기가 어떤 것을 새롭게 소개할 때와 같이 초기의 계시를 반복함으로서 권위적인 것과 같다. 8

  현대적 상황에서 어떤 의미에서 옛것이라 하여도 설교, 이상, 꿈은 다른 것의 새것이라고  수있다. 그것들은 받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할  있다. 더욱이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적용이 있다.(피가 발린 책의 사람 이름처럼)

  그러면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모든 현대과정은 완전한 권위와 관련된 것으로 추론적이다.현대설교는 성경의 메시지를 반복하는 한에 있어서 권위를 갖는다. 동시에 현대의 직관, , 이상,다른 모든  추론적 과정을 갖는다.

   그림 속에서 우리는 성경의 충족성과 오늘날 과정에 관한 유효성을 중요하게 취급해야만 한다.  원리는 추론적 과정과  추론적 과정과 관련된다. 추론적 과정의 경우에 있어서 설교자는건전한 교훈 아니면, 이교의 교훈을 설교할 수도 있다. 직관적인 예감이나  (해석될 ) 사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현대의 문맥 속에서 추론적인 과정과  추론적인 과정은 성경과는 다른  많은 가르침을 덧붙일  있다.

  많은 사람에게 현대의 환상이나 환청은 설교의 추론적인 과정보다 더욱 놀랍고 더욱 분명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기를 그것은 직접 성경으로부터 나왔기에 무오하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13;1-4, 살후2:9-11절은 이런 말과 모순된다. 현대의 놀라운 어떤 경험도 아무리 특이하고 놀랍다해도 근본적으로 성경에 덧붙여질 수는 없다. 사실상 그것은 반대되는 기적일지도 모른다. (살후2:9-11 의미에서) 또는 그것이 성경적 진리의 반복일 수도 있으나 여전히죄악된 인간의 수납으로 경멸을 당할 수도 있다. 아니면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다음을 보라). 아니면 그것이 진리와 비진리를 섞은 혼합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성경을 무오한표준으로 믿고 이런 모든 경험을 시험하는 것이다.

 

4. 내용을 위한 추론적 초점들

 

  우리는 하나의 최종적인 명료성,  과정보다 오히려 내용과 관련된 구분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말하려는 과정에 관하여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내용에 주의를 기우려야한다. 이런 내용은 성경의 내용을 다시 표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를둘러싼 상황에 관하여 어떤 것을 말하려  수도 있고 아니면  둘의 결합일 수도 있다.

  (1) 사람들은 교훈적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치는 바를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명하는 바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언어의 내용을 교훈적 내용(teaching content)이라고 불러보자.

  (2) 사람들은 상황에 대한 초점을 맞추어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 주변에 일어나는바를 우리에게 말한다. 또는 그들은 과거에 일어난 바를 우리에게 말하고 또는 (그들이 어떤 것을예언했다면) 일어날 것을 말한다. 이런 언어를 상황적 내용(circumstantial content)이라고 불러보자.

  (3) 사람들은 성경적 가르침과 상황적 가르침,  다를 결합시키는 내용을 목표로 말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성경이 현재의 상황에 적용되는 바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이런 언어를 적용적 내용(applicatory content)이라고 불러보자. (다이어그램 3 보라)

  신약 안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르친 바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든지 역사에 대하여 말하든지 그들의 상황에 대하여 말하든지 적용에 대하여 말하든지 그것은 교훈적 내용이다. 그러면 상황적 내용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우리의 현재적 상황에 적용하려고   들어온다. 신약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삶에 하나의 분별 방법으로  말씀을 적용하도록 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접한다.(5:16-17, 12:1-2) 이런 적용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필연적으로 상황적 내용과 적용적 내용을 다루어야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종류의 일들이 많이 나타난 것을 보며, 그런 경우에 역사적 이야기는 분명한 신적 보증이 없이  영감된 사람들과 행동을 포함한다.

   예로서 역대하 25:3-4절의 내용을 생각해보자.  나라가 굳게 서매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죽였으나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 율법 책에 기록한대로 함이라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것이라 오직  사람은 자기의 죄를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여기 묘사된 행동가운데 우리는  종류의 내용을 발견한다. 4절의   원리를 생각해 보라 아비를 죽이지  것이요 오직 각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그러나  원리는 신명기24:16절에서 인용한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교훈적 내용의 실예이다. 아마시아는 그가 분별하기 전에 이런 교훈적 내용을  환기했을  있다.

  둘째로 32절은 아마시아가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암살에 대한 사실들을 발견해야만 되었다고 말한다. 그와 그의 신하들은 율법의 정한 과정을 따른다면 요아스의 죽음의 사실을 충분히 확신해야만 했다. (참고 19:15-21)  사실의 확인은 상황적 내용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아마시야는 그문제에 관한 진리를 확신했으나 그의 진리지식과 진리의 진술은 신적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다.그것은 단순히 보편적 지식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현실적 살해 행동은 적용적 내용을 표함한다. 그런 수행 에서 아마시야는 24:16절로부터 교훈적 내용을 포함시킨다. 더욱이 살인에 관한 교훈적 내용(9:6)  특별한 내용의 유죄에 관한 상황적 내용인 24:26절의 교훈적 내용과를 연결시킨다.

  역대하 25:3-4절의 전체의 내용은 영감되었기에 교훈적 내용의 실예이다. 그러나 아마시아의 직무 가운데 사실적인 정보의 초기 사건과 변동은 영감되지 못했다.

 

                        다이어그램 3

 

                    교훈적 내용과 상황적 내용

 

       Level 1 메시야적                     예수그리스도

 

  Level 2 사도적                           사도와 사도적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