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트로이 전쟁의 시작 '헬레네'(Helen)

 

 BENJAMIN West, Helen Brought From Paris, 1776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미녀는 헬레네이다. 미녀 하면 헬레네를 떠올릴 만큼 미모는 태양처럼 빛났다. 헬레네가 이처럼 빼어난 용모를 지닌 것은 신들의 제왕인 아버지 제우스와 미녀로 소문난 어머니 레다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헬레네의 화려한 미모는 어릴 적부터 그리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불과 열두 살 때부터 그리스 남자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헬레네를 원하는 남자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녀는 과연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그 많은 구혼자 중에 단 한 사람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헬레네의 유일한 고민이자 비극이었다.   헬레네의 계부인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우스 역시 선택되지 못한 구혼자들의 원성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거의 모든 그리스의 왕족이 헬레네에게 구혼을 했기 때문이다. 틴다레우스는 교묘한 꾀를 내어 헬레네가 직접 남편감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남자들의 영웅심을 교묘히 부추겨 경쟁에서 탈락한 구혼자를로부터
 
앞으로 헬레네의 남편에게 난관이 닥치면 몸을 바쳐 돕겠다는 서약을 받아냈다.
틴다레우스의 계략에 넘어간 구혼잘은 이 충동적인 맹세의 댓가를 훗날 톡톡히 치르게 된다. 무려 10년 동안 계속된 참혹한 트로이 전쟁이 바로 신랑 후보들의 섣부른 서약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돈 많은 왕족 메넬라오스를 남편으로 선택한 헬레네는 딸 헤르미오네를 낳고 몇 년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궁전을 방문하여 손님으로 묵자 결혼 생활에 권태감을 느끼던 헬레네는 잘생긴 파리스에게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호감을 내색조차 하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던 두 사람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메넬라오스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크레타로 떠나자 파리스는 헬레네를 유혹해 몸을 섞은 다음 자신과 함께 트로이로 건너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자고 졸랐다. 헬레네는 파리스보다 한 수 위였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고 남편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도 모자라 값진 보물까지 몽땅 챙겨 파리스를 따라 나섰다.

 Jacques Louis DAVID, Paris and Helen, 1788

18세기 화가 다비드는 헬레네와 파리스가 사랑에 빠진 달콤한 순간을 그렸다.
남편 메넬라오스가 먼길을 떠나자마자 두 사람은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를 탐닉한다.
웅장한 스파르타 궁전의 내실에서 아폴로 신처럼 매력적인 모습으로 분장한 파리스가 헬레네를 유혹하는 장면을 보라, 사랑의 음악을 연주하는 척 하다가 슬쩍 그녀의 팔목을 애무하며 수작을 건넨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내숭을 떨던 헬레네는 흥분을 참을 수 없었던가.
더운 숨을 몰아쉬며 한 다리를 엇비스듬히 꼰다. 발갛게 달아오른 여인의 뺨과 허벅지를 교차한 자세를 그녀가 강한 음욕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스파르타로 돌아온 메넬라오스는 아내의 배신에 치를 떨며 복수를 결심했다.
그가 지난 날 서약을 맹세한 구혼자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리자 결혼 전 그를 돕겠다고 약속한 구혼자들은꼼짝없이 발목이 잡혀 트로이 원정대에 합류했다.
헬레네의 부정 행위로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10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결국 그리스 군의 승리로 끝나고 트로이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남자들은 몰살당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화근이 된 헬레네는 파리스가 전사하자마자 새로운 남편을 맞이하였고 트로이가 함락된 후에는 전 남편인 메넬라오스와 공모하여 지금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전쟁의 승리감에 도취된 메넬라오스는 간통한 아내를 당장 죽이겠다고 협박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 다시 헬레네의 유혹에 넘어가 묵은 죄를 모두 용서하였다.
스파르타로 돌아가는 뱃길은 7년이 걸렸는데 그 사이 헬레네는 요부 기질을 발휘해 메넬라오스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헬레네는 간통을 저지르고 첫 남편의 재산까지 빼돌렸지만 큰 소리 떵떵 치며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
모든 죄악을 용서받을 만큼 완벽한 미모를 지녔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Gabriel ROSSETI, Helen of Troy

이 전설적인 헬레네의 미모를 로제티의 그림에서 만날 수 있다.
로제티가 그린 헬레네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풀어헤친 금발과 매혹적인 붉은 입술, 화려한 액세서리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기 도취에 흠뻑 빠진 헬레네는 감각적인 쾌락에 온몸을 맡기고 있다.
 
화가는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도록 화면 전체를 눈부신 황금색 색조로 통일했다.
이 초상화에서는 베네치아적인 특성이 물씬 풍겨 나오는데, 헬레네의 화려한 의상과 다채로운 색상, 회화적인 느낌의 풍요로운 붓 터치는 16세기를 화려하게 꽃 피운 베네치아 거장들의 양식과 유사하다.
 
 
출처 : 이명옥의 <팜므 파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