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두 얼굴 - 멈춰선 사막의 꿈
지지않는 사막의 꽃
팀 클라크 에미레이트항공 사장
채무유예 선언 이후 초고층빌딩 불 꺼지고 건설사업 줄줄이 중단
쇼핑몰엔 외국인 관광객......... 두바이 공항도 북적....... 시들지 않은 중동 허브
지난 3일 세계 최대 쇼핑센터인 두바이 몰(Dubai mall)은
섭씨 44도의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쇼핑객들로 붐볐다.
온갖 인종의 전시장이었다.
특히 유럽에서 온 쇼핑객들이 절반은 되어 보였다.
평일인데도 휴일 서울 명동의 대형 백화점보다 더 붐벼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부르즈칼리파(Burj Khalifaㆍ162층) 빌딩의 전망대는
한 달 가까이 예약이 거의 다 차 있었고, 인공 섬 팜 주메이라에 세워진 아틀란티스 호텔
역시 로비와 레스토랑이 유럽에서 휴가 온 투숙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 도시의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도시 곳곳에는 멈춰선 타워크레인들이 덩그러니 서 있고,
밤에는 수많은 초고층 빌딩들의 불이 꺼져 삭막하기까지 했다.
작년 11월 두바이의 국영 개발업체인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채무 유예)을 선언하면서
그동안 진행돼 왔던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줄줄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사막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두바이의 월가식(式) 경제 모델은 파탄을 맞았다.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자본)에 의존한 경제 모델 말이다.
그리고 따라온 것이 반 토막 난 주택 가격과 불 꺼진 초고층 빌딩,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들의 엑소더스(exodus)였다.
최근 두바이월드가 채권단과 235억달러 규모의 채무 조정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
두바이 경제가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지만, 당분간은 감속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두바이 사태 이후 멈춰 선 인공섬‘팜 제벨알리’의 공사 현장.
블룸버그
그러나 기자는 두바이에서 여전히 희망을 보았다.
중동의 허브(hub)로서 두바이의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양성과 창의, 시장을 중시하는 두바이의 문화도 살아 있었다.
기자는 그 잠재력을 에미레이트(Emirates) 항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두바이 정부의 국영 항공사인 이 회사는
두바이 사태가 벌어진 작년에도 24% 성장했고, 이익은 무려 416% 급증했다.
이 회사의 팀 클라크(Clark) 사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3만8000여 직원들의 출신 국가가 156개국이라는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대형 세계지도 앞에서 마치 브리핑하듯 인터뷰를 한 그는
"두바이는 100년 후 지구 상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도 했다.
다양한 인종의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들.
이 회사 직원 3만8000명의 국적은 156개이다.
에미레이트항공 제공
"지구 상에 다른 국적과 언어,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없다고 할 때 에미레이트항공은 '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우리 자체가 증거이니까요."
물론 다양성은 허브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25년 전 이 회사 창립 당시 다른 항공사에서 스카우트돼 회사의 장기 비즈니스모델을 짜는 일을 했다.
그는 허브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바이에서 허브의 가능성을 봤다.
그는 등 뒤 대형 지도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자, 지도를 보세요.
두바이에서 8~10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을 그려보면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이 다 들어갑니다."
기자는 이 대목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고속 성장에는 두바이 정부의 지원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것 아니냐고.
180㎝쯤 돼 보이는 키에 깡마른 체구의 클라크 사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책을 한 권 들었다.
2009 회계연도 연차 보고서였다.
"이 책에 정부 지원과 관련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 사장직을 그만두겠습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을 창립했을 때 왕족인 셰이크 아흐메드 회장은 경영진에게 딱 한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하고 싶은 대로 일하라.
단 정부 지원은 절대 요구하지 말라.
수익을 내지 못하면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요."
두바이 정부는 일찌감치 '오픈 스카이(Open Sky)' 정책을 시행했다.
두바이로 운항하려는 모든 항공사들에 하늘을 아무 조건 없이 완전히 열어준 것이다.
"오픈 스카이 정책과 함께 경쟁이 시작됐죠.
남보다 나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게 됐고요.
하지만 그 경쟁이 결국 우리의 오늘을 가져왔습니다."
팀 클라크 에미레이트항공 사장
"사람들, 경제위기에 파묻혀 패러다임 변화를 놓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항공업계는 총 94억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에미레이트항공은 인천과 방콕, 토론토, 파리, 제다의 5개 노선에
'하늘 위의 궁전'이라 불리는 A380을 신규 투입했다.
대당 가격이 4500억원에 이르는 초호화 여객기이다.
또 카불과 더반, 루안다,
도쿄의 4개 노선에 신규 취항해 취항지가 102개 도시로 늘어났다.
"어려운 시기에 너무 공격적이지 않느냐"고 묻자 클라크 사장은 대답 대신 기자에게 되레 질문을 했다.
"중국 청두(成都)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상당히 많을 것 같긴 한데요..........."(기자)
"1100만명입니다.
그런데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운항되는 비행기는 일주일에 한 편에 불과했어요.
영국 인구의 5분의 1 정도가 한 도시에 모여 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청두 시민이 주로 어떤 산업에 종사하는지,
그들이 만든 제품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지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청두 - 라고스 노선에 타보면 비행기 안에서 늘 아프리카 상인을 최소 50명은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와서 1달러를 주고 산 제품을 다시 가져가서 150달러에 파는 사람들이죠.
전에는 본 적 없던 새로운 고객들입니다.
하하!
저는 이런 사실들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세계 경제가 침체를 겪을 때도 비행기를 더 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A380기를 58대밖에 못 산 것은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워둘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는 에미레이트항공 본사 9층 사장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유리창 너머로 에미레이트항공 비행기로 가득 찬 두바이 공항이 훤히 내려다보였고,
한쪽 벽면에는 대형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공항 쪽을 가리키며
"나는 항상 직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늘 101가지는 있다"
그래도 다들 위기라고들 하는데..........
"사람들은 경제위기에 파묻혀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세계인들의 생활 스타일과 패러다임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가령 중국 청두나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에 가도
이제는 유럽의 어느 도시와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 신발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고 CNN이나 BBC월드를 보고 있지요.
브라질에선 2006~2010년 사이에 중산층이 4000만명 늘어났어요.
그리고 그들은 서양 사람들보다 더욱 자주 여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의 한 항공사가 상파울루 노선을 며칠 간격으로 운항한 줄 아세요?
3주에 한 번입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세요?
그래서 우리는 상파울루 노선에 매일 취항하는 최초의 항공사가 됐습니다."
그는 "세상은 계속 열리고 있고, 우리는 더욱 많은 지구상의 점들을 연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생 때 버스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그는 "항공사는 버스회사와 같다"고 말했다.
결국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으로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교통수단이라는 것이다.
리서치가 중요하다는 점도 똑 같다.
버스가 텅 빈 채 운행한다면 버스 노선에 대해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사의 경우 실패의 대가는 더욱 쓰라리다.
A380이 두바이에서 뉴욕까지 한 번 가는 데 드는 비용이 약 5억원에 이른다.
"그래서 저희는 매우 우수한 인재 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 여기저기 시장을 늘 평가합니다.
그 시장에 직접 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리서치 결과를 본사에 가져와서 논의할 때 모든 수치를 소수점 4자리까지 따져 보며 정리합니다.
제 역할은 위험 요소들을 일일이 따져 보며 '이렇게 되면 어쩌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담함을 보이지 않으면
단 한 번도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왜냐고요?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늘 101가지는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수십 년 전의 위치에 그대로 안주하고 있는 다른 항공사들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강점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대담한 결정을 내리는데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항공업계는 테러·고유가 등 외부 변수에 늘 노출됩니다.
경영자로선 어느 업종보다도 힘든 일 같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1년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돌발사태가 벌어질 것이니까 항상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9·11 테러가 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화산재에 지진에.......
끝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돈을 받고 일하는 이유입니다.
다행히 모든 문제엔 해결책이 있습니다.
밑으로 가든, 돌아서 가든, 위로 넘어서 가든 어떻게든 넘길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긍정적으로 행동하라.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지언정 무언가를 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라.
이것이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추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 같은 경우 A380 3대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 운항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어떡하지.......'라고 말하며 앉아서 고민만 할 순 없습니다.
매일 147대의 비행기가 평균 15시간을 운항하며 수천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잖아요.
몇 주 시간을 내서 생각해 보자는 옵션이 우리에겐 없어요.
우리는 2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다양성의 힘
150개 국적을 가진 직원들이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코스모폴리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에서 최고의 가치만을 뽑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에미레이트 항공입니다.
다행히 서로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하나로 합쳐져 창출해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매년 발표하는 실적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 다음으로 코스모폴리탄 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변화와 성장에 열려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일본인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저부터 일본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말하는 정도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문화와 음식, 전통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가 두바이에 있어서 좋은 점은?
"두바이는 코스모폴리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며, 이는 우리 회사의 가치와도 일치합니다.
두바이는 세계의 비즈니스 중심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우리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먼 미래를 내다보는 베두인(아랍계 사막 유목민)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9·11 테러가 났다거나, 사스(SARS)가 창궐한다고 해서 성장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늘 먹고 싶고, 여행하고 싶고, 잘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계획해야 할 때는 다릅니다.
비즈니스의 미래를 봐야 하기 때문에 평생 살 것이라는 전제하에 계획해야 합니다."
두바이 경제를 전망한다면?
"뉴욕, 런던, 베이징 등 세계 주요 도시들 중에
어느 도시가 가장 먼저 회복할 것 같으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두바이에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두바이의 일부 오피스와 주거지가 비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바이는 어쩌면 이번 세계 경기 침체에서
오히려 영국 같은 나라보다 더 좋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클라크 사장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사람이다.
이 인터뷰 시간 역시 그의 해외 출장 일정 때문에 45분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시간은 1시간 20분으로 늘어났다.
비서들이 몇 차례 재촉하자 "질문이 더 없느냐"고
기자에게 물은 뒤 그제야 기자에게 인사의 악수를 건넸다.
집값 등 반등 기미......... 최악 상황은 벗어난듯
향후 8년간 100억달러 빚 갚아야해
외부 투자자금 유입 줄어드는 등
단기간에 高성장세 회복은 힘들 듯
두바이의 중심 도로인 '셰이크 자이드 로드(Sheikh Zayed Road)'를 따라 자동차로 달리면
멀리 지평선 위로 50~60층쯤은 돼 보이는 초현대식 빌딩 숲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위용도 잠깐. 자동차가 건물 가까이 다가서면
건물은 외벽만 다 지어졌거나 텅 빈 사무실로 채워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년 전만 해도 전 세계의 4분의 1이 옮겨져 왔다는 타워크레인도 멈춰선 채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이다.
도로를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두바이가 중심 업무지구로 개발해온 비즈니스 베이(Business Bay)나
복합주거단지인 컬처 빌리지(Culture Village) 모두 짓다만 건축물들이 황량하게 방치돼 있다.
완공된 주택에는 '판매 중(Now Open)'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한 건설업체 영업 담당 간부는
"작년 11월 두바이사태 이후 대부분의 건설 현장이 사실상 중단됐다"며
"여기서 일하던 엔지니어, 금융 전문가들이 떠나면서 두바이는 텅 빈 도시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두바이를 찾은 한 외국인 관광객이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인
‘두바이 몰’에 있는 수족관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블룸버그
한고비 넘긴 두바이사태
두바이는 2005년부터 중동지역의 물류·레저·금융 허브도시를 목표로
총 300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들을 추진해 왔다.
허허벌판에 초현대식 도시를 건설하려다 보니 대부분이 건물을 짓고 인프라를 놓는 대형 건설 사업이었다.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세계 지도를 본뜬 초대형 인공 섬들이 지어졌다.
두바이는 하루 20만배럴가량 생산되는 원유가 유일한 자체 수입원인데 그나마 GDP의 5%내외에 불과하다.
막대한 경제 개발자금은 결국 해외에서 끌어 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세계 경제가 저금리에 기반한 호황을 누리면서 RBS, HSBC, 스탠다드차타드 같은
세계적 금융기관들이 두바이의 대형 개발사업을 이끄는 국영기업들에 돈을 퍼줬다.
하지만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호시절도 끝을 맞았다.
금융회사들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자금 경색이 확산되면서
신규 대출이 중단되자 빚 잔치를 벌여온 두바이 정부와 국영기업들은 자금난에 시달렸다.
2009년 11월 당시 두바이 정부와 국영기업들의 총 대외부채는 약 800억달러에 육박했고,
이중 두바이월드와 나킬의 채무가 70%를 차지했다.
나킬의 경우 20일 내로 갚아야 할 채무가 41억달러에 이르렀다.
사실상의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한 두바이를 살린 것은 형제국인 아부다비였다.
2009년 12월 아부다비가 두바이에 100억달러를 지원하고,
뒤이어 두바이 정부도 두바이월드에 95억달러의 추가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두바이사태는 진정 국면으로 들어갔다.
지난달 21일 두바이월드와 나킬의 채권단은 두 회사의 채무를 감면해주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두바이월드는 총 142억달러의 부채 중 44억달러를 5년 안에 1%의 낮은 이자로 갚고,
나머지 100억달러는 8년 안에 2.5~3.5%의 이자로 상환하면 된다.
나킬도 이와 별도로 93억달러의 부채에 대한 조정을 받게 됐다.
그러나 채권단 소속 97개 은행 중 60% 정도만이 포함된 채권단 조정위원회의 합의이고,
1%의 이자율은 지나치게 낮다는 채권단 내 반발도 있어
이 채무조정안이 구속력을 가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두바이, 관광·서비스 기능은 여전
두바이통계센터에 따르면
두바이는 지난 10년간 투자 드라이브에 힘입어 연평균 11%의 고성장을 누려 왔다.
하지만 두바이월드가 채무 상환을 해야 하는 향후 8년간은 외부로부터의 투자자금 유입이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여 예전의 고성장세를 누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IIF(국제금융연합회)는 두바이 경제가 지난해 마이너스 3% 성장했고,
올해는 마이너스 0.5%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빚의 무게에 짓눌린 두바이 정부는 경제 성장 목표와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두바이의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UAE 총리는
지난 2월 '경제 성장 속도를 끌어내리고 의료와 교육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1년까지의 국가 경영 비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바이 부동산시장이 미미하게나마 바닥 탈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다.
호텔·쇼핑몰을 중심으로 한 관광·서비스산업은 다소 생기가 느껴졌다.
지난 5일 새벽 1시 두바이 국제공항.
다른 나라의 여느 공항이었으면 아예 문을 닫았거나 인적이 거의 없을 법한 시간인데도
이곳은 야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면세점에서 물건을 하나 사려면 한동안 줄을 서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비행기 탑승 전까지 앉아 있을 의자를 찾으려고 눈치 싸움을 벌여야 할 정도였다.
실제로 두바이사태가 발생한 지난해에
두바이 공항을 이용한 여행객 수는 4090만명으로 2008년(3744만명)보다 9.2% 증가했다.
두바이 사태가 발생한 지 두 달 만인 지난 1월 두바이 내 5성급호텔들은 때아닌 예약 만원사례가 벌어졌다.
두바이 국제의료기기전시회(ARAB Health 2010)가 열리면서
인근 국가의 의료산업 바이어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반 토막' 났던 주택가격도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주택 평균 가격은 1㎡당 35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
전 분기와 비교하면 4% 올랐다고 국제 부동산 전문 컨설팅업체 콜리어스는 전했다.
KOTRA 오응천 중동·아프리카지역본부장(두바이 센터장)은
"두바이의 장점은 여전히 중동지역에서 물류·관광 기반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바이와는 차별화하는 중동 국가들
주변 중동 국가들의 경제 전망도 밝은 편이다.
앞으로 5년간 중동 경제는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다른 신흥시장보다 앞선 5% 내외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는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자원 보유국이면서 금융·관광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아부다비와 카타르는 국부 펀드의 운용
규모가 각각 6270억달러와 650억달러에 달해 산업 다각화를 진행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갖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두바이식 개발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두바이처럼 투자 자금을 외부로부터 유치해 개발하는 방식은
글로벌 금융 환경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장기적으로 전 세계적인 저(低)탄소 녹색경제 어젠다 확산도
화석 연료에 목을 매는 예전식 경제 모델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이미 몇몇 국가들은 나름의 해답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경제 비전 2030'에 따라 해변 도시 프로젝트
'바레인 베이(Bahrain Bay)'에 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바레인이 대표적이다.
탈(脫)석유화,
서비스산업 및 친(親)환경산업 육성 등 요즘 중동 국가들의 관심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프로젝트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부다비, 카타르는 고(高)부가가치의 석유화학산업 육성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교육·문화 등 두바이와 차별화된 콘텐츠를 통해 산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카타르는 세계 유수 대학의 분교를 유치하는 한편
영화산업에도 적극 투자함으로써 중동의 교육·미디어 허브를,
아부다비는 루브르박물관과 구겐하임미술관 분관 등을 유치하는 등 중동의 문화 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퍼스트클래스 샤워실'도 처음엔 퇴짜 모형 만들어 에어버스社 설득해 관철
에미레이트항공은 세계적 불황에도 초호화 여객기 A380을 추가로 주문했다.
A380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얼까.
팀 클라크 사장은
"고객들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고
'나이키'나 '아디다스'처럼 세계적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라며
"A380은 그 길로 가기 위한 훌륭한 수단"이라고 했다.
A380 퍼스트 비즈니스 클래스 객실에 설치된 바 라운지.
"BMW를 생각해 보세요.
이전 모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항상 새 모델을 출시합니다.
소비자들은 열광하고요.
항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탑승객들이 장거리 비행에서도 흥미를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형 항공기를 구입합니다.
새 비행기는 빈 공간에 어떤 좌석을 넣고 어떤 TV스크린을 설치할지 우리가 직접 주문할 수 있으니까요.
A380의 퍼스트 클래스 객실은 전용기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샤워실과 바(bar)를 설치했습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경험한 적도 없는 것들이지요."
그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A380 객실을 디자인하면서 제작사인 에어버스사와 수많은 협의를 했다.
그러던 중 "퍼스트 클래스에 화장실과 샤워 부스를 1개씩 만들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에어버스 측은 "절대 안 돼"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래서 그는 에어버스 디자인팀에 있는 친구들에게 몰래 전화해
화장실과 샤워 부스가 설치된 A380 실물 모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누가 모형을 만들었는지 본사에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며 도움을 줬다.
그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모형을 에어버스 본사에 보여줬다.
이후 에어버스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반영해 줬다.
고객에게 최고의 품질만을 고집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조선일보 두바이 홍원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