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4:16 예수님께서 …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어 성경을 읽으시려고 일어서셨다.

 

눅 4:18-19 “주님의 영께서 나에게 임하시니, 이것은 나에게 기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나를 보내시어 포로된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에게 시력의 회복을 선포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께서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희년의 해를 선포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눅 4: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성경 말씀이 오늘 여러분이 듣는 중에 이루어졌습니다.”라고 하시자,

 

◆아침의 누림

희년’은 걱정이나 근심, 염려나 고심, 부족함이나 결핍, 병이나 재난 등 어떤 문제도 없고, 도리어 유익한 모든 것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만족스럽다. 오늘날 어떻게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만족스러울 수 있는가? … 우리의 인간 생활이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며 환경도 언제나 즐거울 수만은 없다. 오직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누림으로 얻은 후에만 우리는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다. 빌립보서 4장은 바울이 모든 것에 만족하는 정도까지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왜냐하면 나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만족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천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고 풍부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각각의 일과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 4:11하-13)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온갖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를 차분하게 하고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밖에 있는 사람이나 일이나 사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다. (희년, 22-23쪽)

 

◆오늘의 읽을 말씀

구약 시대에 … 곧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인 율법 시대에 사람은 노예의 위치에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야 희년이 왔다는 것이 선포되었다(눅 4:16-21). 우리는 희년이 일 년 동안만 지속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년’은 한 시대를 함축한다. 우리는 ‘희년’이 오십 년째인 한 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오십 년째 되는 해는 한 시대를 예표한다. 경륜적으로 희년의 시대는 두 시기로 나뉜다. 한 시기는 신약 시대, 곧 오늘날 은혜의 시대이다. 또 한 시기는 천년왕국 시대, 곧 희년의 충만이다.

희년에는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만족하게 하며, 우리는 염려가 없고 편안하고 흥분되며 크게 기뻐한다. … 희년은 슬픔이나 애통함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곧 큰 기쁨의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다.

희년은 황홀경의 시대이다. 신약 시대는 황홀경의 시대이고, 그리스도인은 황홀경 안에 있는 사람이다. 오십 년도 더 이전에 니 형제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이 미쳐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니 형제님은 또 계속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미쳐야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정신이 온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미쳐 본 적이 있는가? 성경에는 많은 방면이 있다. 우리는 한 방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는 정신이 온전해야 하지만,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이 항상 조용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집회에서 선포하는 것은 흥분해서 소리치거나 날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외치지만 여전히 정신이 온전하다. 한 면에서 우리는 기뻐하며 기쁨의 소리를 발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정신이 온전하며 절제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미쳐 본’ 체험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황홀경 안에 있어 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누린다면 기뻐 뛸 것이다. 나는 노인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주 미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이것을 모를 것이다. 나는 매일 진지한 것 같지만, … 하나님은 나의 참된 상태를 아신다. 우리에게는 미쳐야만 하는 참된 이유가 있다. 안에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누리기 때문에 미칠 수밖에 없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희년, 23, 3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