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뜰 조명옥의 두런두런


언젠가 부터 혼밥이란 단어가 익숙하게 들린다.


혼밥을 허용하지 않던 엄마.



혼밥을 허용하지 않던 엄마였다.

매 끼니마다 몇번의 밥상을 챙기셨다.

예전 재래식 부엌의 불편함에도

끼니마다 몇번의 밥상을 챙기시면서도 구찮다 소리한 적이 없으셨다.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가는 오빠의 밥상앞에 쪼글리고 앉아서 말동무를 해 주셨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순서대로 밥상을 차리셨다.

네명의 자식들중에  혼자 앉아 밥을 먹게 되는 사람앞에는 항상 엄마가 앉아 계셨다.

누군가 밥을 먹으면 그 앞에 앉아서 이야기 동무를 해 주는 것이 당연하게 자랐다.


초저녁잠이 많았던 엄마는 늦은밤 퇴근하는 아버지의 밥상앞에는

늦게 자는 큰딸인 내가 밥상을 차리고 그 앞에 앉게 했다.

아버지의 밥상은 대부분 내 몫이었다.

살기에 빡빡하던 시절.

휴일이어야만 한가족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재래식 불편한 부엌 구조에도

하루에 몇번씩 밥상을 차리면서 구찮다 소리 한번도 없었던 엄마의 긍정적 생각이 대단하시다.

혼밥 소리가 비일비재한 요즘.

혼자서 밥을 먹을때면 밥상앞에 앉아서 이야기 동무를 해 주시던 엄마의 넉넉함이 그립다.


혼자 앉아서 밥을 먹을때 밥상앞의 엄마 이야기로 가족들 상황을 모두 알게 되었다.

온 가족이 같이 앉아서 밥을 먹지 않아도

누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알았었다.

서로가 궁금해 하던 가족의 모양새.

엄마의 밥상앞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형제들의 소식이 궁금해지는 것이

엄마의 밥상앞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것이다.



-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셔도

우리 형제들의 밥상앞 이야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