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사진으로 보는 설날 이야기 


우리가족이 가는 성묘는 

나로서는 증조할아버지할머니합장묘, 큰할아버지내외분묘, 할아버지할머니합장묘, 

큰아부지묘, 아부지묘, 작은엄마묘를 차례대로 도는 코스이다.

선산이라서 다들 가까이 계셔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성묘가 나중의 세상에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설날음식이 나중에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형제들 세대에서는 당연하게 치르는 것이다. 


명절이란 내게는 아내에게 미안함이기도 하다.

물론 형수님도 음식을 만드는데 수고를 해주시는데 

시댁에 있는 며느리는 네명의 며느리중 아내뿐인지라 

음식을 차리는 수고는 아내가  도맡아 한다. 

그래서 고향에서 명절을 지내고 어지간하면 바로 올라와야 한다.

음식 좀 적게하고 

차례음식좀 적당하게 하고 

전이나 이런건 정말 줄였으면 싶다. 

이렇게 차려놓고 또 따로 갈비를 많이 만들어 먹거나 

삼겹살을 구워먹거나 석화포대로 사서 살짝 쪄서 까먹는데

암튼 과잉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설거지를 남자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성묘에는 숙모님도 오셨다.

여기는 울할아버지의 형, 큰 할아버지내외분이 계신다

여기는 울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계신다

늘 할아버지 할머니는 보고싶다. 



여기는 아부지묘소 

아부지께서 살아생전 일하시던 밭 바로 위에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는 뒤안골 들이 보여서 

양지바른 곳이라 햇볕도 바람도 가득한 곳이라 


아부지는 언제나 잘 계시리라 


예전에는 등암리 등암부락 7반이었는데 지금은

등암3길의 동네가 되었다

옆집때문에 우리집은 사진속에서 아주 일부분만 보인다. 아쉽네


우리집 뒷산이다. 지금은 소나무도 엄청 컸고 올라가는 길도 없지만

내가 어린시절만 하드래도 뒷산은 날마다 올라가 노는 놀이터였다.

소나무들도 작아서 묘소들도 잘 보였는데 지금은 나무가 너무 크다. 

저 나무들은 내 어린시절에도 있었던 나무들일텐데 

먹국재라고 불렀던 그러나 적을때는 먹곡이라고 적었던 

그냥 먹곡은 모르겠고 먹국재(먹곡재)라고만 불렀던 곳이 저 멀리 있다.

죽시를 가려면 녹동을 가려면 저 먹국재를 넘어서야  한다.

바로 앞 논은 우리논이었는데 언제고 팔았다. 그 돈중 일부가 

지금 우리집을 사는데 일부가 되었다. 


집앞냇가는 갈대가 자랐다


석화가 올해는 설이 늦어서 알이 엄청 굵고 탱탱하다고한다
이때만 해도 아내는 안마의자에 앉아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내려와서 석화를 먹고 있었는지...형수님을 위해서 열심히 굴을 까고 바치는 동생



굴을 먹고 싶지 않는 나는 차를 몰아 탑샘저수지로 향했다. 그런데 

저수지로 가는 길이 끊겨있다. 심지어는 걸어서도 갈수가 없다. 

근데 지도를 보니 탑샘가는 길이 따로 있네 ....지도를 보고갈 걸 

집들은 없어지고 창고같은 건물만 다음지도에서 보이네 ..


저수지를 못가서 아쉬움에 인증샷하나 남긴다 


호산, 아니 고소리에는 유자나무가 많다

고소리에는 유동,사동,중촌,신촌이라는 부락이 있고 이 동네는

유자나무 밭에 둘러쌓여 있다. 

유자를 밭에서 대량재배를 처음 한곳이 보천리 엄포인데 

유동을 지나서 죽시로 향하자면 나오는 첫번째 마을이고 

엄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유자나무가 밭에서 대량으로 재배되고 

유자를 따기 시작한 이래 지금은 많은 곳에서 재배되어 

유자차를 많은 국민들이 마실수 있게 되었다

엄포는 엄마네 집, 외갓집이고 해서 이래저래 관심이 있다. 



유자밭




여기는 호산에서 고흥으로 갈때 오른쪽에 저수지가 있는데 그아래 집이다. 
다음지도에서 로드뷰를 봐도 딱 이모습이다. 

이곳을 그린 그림을 곧 지누의 작품게시판에 올릴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