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장이 된 그가 시의원이었을 때 그와 함께 지역신문을 만들던 동지들이 있다. 우린 네 살부터 아홉 살까
지의 올망이 쫄망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열성으로 신문을 만들었다. 나름,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었다.
세월 가고, 그가 다른 직무를 맡아 청기와집으로 가게 되면서 우리가 하던 일도 중단되었다. 그래도 다들 한 동
네에 살아 수시로 만날 수 있었는데 시나브로 이 도시 저 도시로 흩어져 가 나중엔 1년에 몇 번 만나는 것도 어려
워졌다.
한 날, 조조영화를 보고 점심도 먹고, 시간 되면 색다른 무엇인가를 체험해 보기로 하고, 왕년의 용사들이 아침
일찍 뭉쳤다. 당시 <왕의 남자>가 한참 흥행하고 있을 때여서 난 다들 그 영화를 보자고 할까봐 은근히 걱정스
러워졌다.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예측은 적중했다. 만장일치로 왕의 남자가 채택된 것이다. 그럼 난 뭘 하
지? 이렇게 이른 아침에 혼자서 뭘 하냐고? 같은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다른 영화를 볼까 하고 팜플릿을 뒤적여
도 구미가 당기는 영화가 없다. 그 때 누군가가 대단한 보물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이렇게 외쳤다. 이거 이거!
<싸움의 기술>이었다. 재미 여부를 논할 게재가 아니었다. 워낙 볼 만한 영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왕의 남자>를 보러 입장했고 나 역시 <싸움의 기술>을 보기 위해 다른 상영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
다. 그런데 관객이 나를 포함해 딱 세 명. 영화가 시작되면 더 들어올까 하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
다. (싸움의 기술은 흥행에 실패한 영화다. 아무리 조조라고는 하지만 관객이 세 명인 영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질펀한 욕지거리, 퍽, 퍽, 주먹질하는 소리, 몽둥이 휘두르는 소리가 난무하고 침뱉기, 병목깨기, 삥뜯기 등 싸움
의 기술은 끝없이 펼쳐지는데...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난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을 익히느라 그 이른 시간에 곤욕을
치뤘다. 어처구니 없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아침이었다.
청양으로 귀촌한 친구네 언니는 만날 때마다 놀러오라고 했다. 이번 여름에 꼭 와. 그쪽에 좋은 데 많아. 같이 물
고기도 잡고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 먹자. 한 번은 가야 할 것 같아 그 친구 부부와 또 다른 친구 부부, 우리 부
부 등 세 팀이 여름 휴가차 그곳으로 갔다. 과연 친구 언니네는 좋은 곳에 살고 있었다. 집도 깨끗하게 지어 어디
한 곳 나무랄 데가 없었다. 친구네 언니 부부는 그곳으로 귀촌한 다음 산으로 들로 남새를 캐러 다니고 칠갑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서 고기도 잡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다.
형부는 자신들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모두 체험시켜주고 싶어했다. 고기를 잡아 저녁엔 어죽을
끓여먹자. 우리가 자주 가는 하천이 있는데 거기 가면 다슬기도 있고 물고기도 잡을 수 있어. 형부의 호들갑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린 물속에서 엎어지고 뒤집어져도 괜찮을 복장으로 차려입은 다음, 친구네 봉고차를
타고 형부가 말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한낮의 뜨거운 햇빛은 머리 껍질을 벗길 것처럼 내리쬐고 물고기는
죄 어디로 숨었는지 도대체 보이질 않았다. 세 시간 동안 장정 네 명이서 잡은 물고기 숫자는 피라미를 포함하여
쉰 마리쯤? 초라한 어획량이지만 더 이상 용을 쓴들 별 수 없을 것 같아 철수했다.
그래도 어죽 끓여먹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 형부는 실망한 우릴 달래느라 그 적은 수의 물고기로도 충분하다며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자들 중 일부는 목욕하러 들어가고 일부는 물고기를 손질했다. 여자들은
주방으로 모였다. 이런 저런 일들을 서로 분담했지만 요리는 내가 맡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죽 끓이는 솥에 물고기의 흔적이 없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물었다.
"물고기는 어디 갔어?"
"넣었겠지."
아무리 봐도 안 들어간 것 같다고 했더니 또 다른 친구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 대답한다.
"갈아 넣었을 거야."
그래? 갈아 넣었다면 찌꺼기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주인은 모른다 하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갈아 넣었을 거
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물러섰다.
열심히 어죽을 끓여 상을 차렸는데 세상에나~ 완전 대박이 났다. 야, 맛있다. 어쩌면 이렇게 솜씨가 좋아? 다들
두 그릇 세 그릇씩 퍼다 먹느라 함께 먹으려고 구웠던 귀한 흑돼지는 아무도 거들떠 보질 않는다. 그 큰 솥 하나
가 금세 바닥이 났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 준비도 내가 먼저 팔을 걷어 부쳤다. 일단 쌀부터 씻어
불려야 할 것 같아 압력솥을 여는데 거기에 잘 다듬어진 물고기들이 차곡차곡 몸을 포갠 채 얌전히 누워있다.
그런데 악취가 진동을 한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다들 모른단다. 썩은 물고기를 들고 바깥일을 하고 있는 형
부에게 가서 물었다.
"형부, 이게 뭐예요?"
눈이 두 배로 커진 형부가 그게 왜 거기 있냐며 반문한다. 어제 어죽에 들어갔을 텐데 왜 또 있냐는 것이다.
참 황당하다. 그러면 전 날 밤에 먹었던 어죽에는 물고기가 전혀 들어가질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형부는 물고
기를 손질하여 누군가에게 넘겼고 그 누군가는 주방에서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솥뚜껑을 덮어 둔 채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물고기를 넣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을 때도 다들 무심했었다. 사람이 여럿이다 보
니 뭐가 어떻게 됐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고 서로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미룬 결과였다.
어쨋거나 우린 물고기가 한 마리도 들어가지 않은 어죽을 정말 맛있게 먹었고 몇 시간 동안 애써 잡았던 물고
기는 고스란히 썩어 남의 집 돼지밥이 되고 말았다. 우린 지금도 종종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 때 어죽 정말 맛있었어!"
추천은 글쓴 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