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 좋고 똑똑하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강퍅한 아이가 있었다. 또래들과는 수준이 맞지 않아 자
꾸 삐딱하게 굴고 사람들 눈에 못된 아이로 비쳐졌다는 걸 그 아이를 가르치며 알았다.
이 아이는 1학년 때, 5학년이던 언니를 따라왔다가 우리 집에 눌러 앉았다. 언니는 동생을 데리고 온 것이 미안
했는지 '오지 말라는데도 꾸역꾸역 따라왔다'며 애써 변명했다. 아이는 오자마자 "저도 언니가 읽은 책 읽었어요"
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어려운 책도 곧잘 읽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반갑게 맞아들이긴 했지만 혹여 이 사람 저 사람 들쑤시고 다니며 수업을 방해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그런 이유 때문에 문제아로 낙인찍혔다는 걸 풍문으로 들었던 터다.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아
이에게 물었다.
"오늘 이렇게 왔으니까 언니가 하는 공부를 한 번 해 볼래?"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덥석 자료를 받아든다. 그러더니 한 시간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수험생만큼이나 열
심히 공부에 몰두한다.
"자살하고 싶은 때가 있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를 묻는 문제에는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혼내기만 했을 때 죽고 싶었다"고 써 있었다. 놀라웠다. 똑똑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로 생각이 많은
아이인 줄은 몰랐다. 공부한 내용도 언니 오빠들보다 더 충실했다. 발표도 얼마나 논리정연하게 잘 하는지 함
께 공부하는 언니 오빠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돌아간 아이는 1주일 뒤부터 정식 학생이 되었다. 물론, 비록 1학년이지만 아이 수준을 고려해 5학년들
과 같은 그룹에 넣어줬다. 날마다 신바람이 났다. 수업시간에도 가장 먼저 나타났다. 5층까지 걸어 올라오는 길
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모처럼 제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게 되어 신명이 났던가 보다.
4월 어느 날이었다. 이상하게 아이가 지각을 했다. 눈은 부어있고 컨디션은 다운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엄마
한테 심하게 혼쭐이 난 것 같다. 아이는 엄마가 얼마나 무섭게 혼내는지 알면서도 고분고분하지도 않거니와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다보니 수시로 부딪쳤다. 말없이 꼭 안아주었더니 한참을 들썩이며 운다.
분위기를 바꿔줘야겠다 싶어 신소리를 했다.
"수미야, 오늘 너 봤다?"
수미가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날 올려다 보며 묻는다.
"어디서요?"
"운동장에 있는 걸 봤지."
"선생님, 오늘 우리 학교에 오셨어요?"
"아~니. 여기서도 다~ 보여."
"어디요? 어디요?"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 든다.
"안 보이는데요?" "어어~" "모르겠는데~"
아무리 내다 봐도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하다. 4월이면 아이들 모두가 파랑 노랑 분홍
인데 그 많은 아이들 중 어떻게 아는 아이를 골라 낼 수 있겠는가? 그것도 몇 백 미터도 넘게 떨어진 곳에 있
는 아이를 말이다.
"사랑하면 다 보이는 거야. 내가 수미를 사랑하니까 그 많은 아이들 속에서도 금세 알아 볼 수 있는
거지."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아무도 반박하지는 않는다. 특히 수미는 굳이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선생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랑은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득되는 게 아니던가.
수미는 드물게 똑똑한 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미를 못된 아이, 까탈스럽고 삐딱한 아이로만 기억했다. 사실 수
미가 예쁜 짓을 하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친구를 괴롭히고 수업시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참견 다했다. 선
생님이나 어른이 지시하고 명령한다고 무조건 수용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타당하지 않거나 명령하는
자세면 강경하게 거부했다. 조그만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주장하기 때문에 다들 거북했을 것이다.
엄마가 오냐오냐 키우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방을 운영하던 수미엄마는 가르치는 아이들은 물론 자신의 아이들에
게도 매우 엄격했다. 잘못하면 가차 없었다. 특별히 수미에게는 더 심했는데 그건 수미가 워낙 고집이 세고 억세기
때문이었다. 수미는 스스로 매를 버는 일이 많았다. 참 독특한 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
기도 하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것만이 옳거나 착한 건 아니지 않는가.
아무데서도 환영받질 못하다 보니 아이는 더욱 삐딱해져갔다. 그 시기에 우리 집에 왔다. 그런데 공부를 시켜보니
이건 보통내기가 아니다. 자신보다 4학년이나 높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공부를 시켜도 전혀 뒤지질 않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는 게 월등히 많았다. 엄마가 공부를 많이 시킨 건 아니었다. 유아기 때부터 손에서 책을 놓
지 않았기 때문에 또래들보다 지능이나 지식수준이 더 높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아이를 같은 또래와 한틀에 두고 똑같은 수준의 내용으로 공부시키니 흥미가 없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도
배울 게 없으니 교실을 돌아다니며 이 친구 저 친구 건드리고 갖은 참견 다 했을 것이다. 악순환이었다. 사람들이
야단치고 미워할수록 수미의 악행도 늘었다.
수미는 우리 집에서 하는 공부를 참 맘에 들어했다. 자신보다 몇 개 학년이 높은 언니 오빠들과 같은 책을 읽고 같
은 내용으로 공부하는 걸 아주 만족스러워했던 것이다. 날마다 두꺼운 책을 몇 권씩 내리 읽었으며 집중력 또한
남보다 뛰어나니 야단칠 일이 없었다. 수미는 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선생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더 모범적으로 행동하고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수시로 쓰다듬어 주고 안아줬다. 잘하는 일에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때때로 사랑한다 말해줬다. 수미는 사랑의 효
용이 얼마나 큰 것인지, 교육의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 아이였다.
수미의 언니는 외고를 거쳐 외대에 진학했으며 현재 중학교 3학년인 수미는 전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자사고
에 진학하려고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