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가 몸이 좀 아파요.”

 

크게 걱정 안해도 되는 일인줄 알았다. 태어나서 아직까지 단 하루도 입원한 적이 없고 응급실 근처에가 본 적이 없던 아이다.

과로인가?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그럼?

"통증클리닉에서 치료를 받다가 문제가 생겼어요."
작은 아이는 질병으로 입원한 게 아니었다. 의료사고였는데 엄마 아빠가 허둥댈까봐 큰아이는 별일이 아닌 것처럼 말을 전했던

것이다. 이미 을 세 군데나 거쳤고 그 중 맨 처음에 갔던 곳을 먼저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사고를 낸 의사를 만나 정확한

사고 경위를 듣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피아노를 치는 작은 아이는 늘 어깨가 문제였다. 적어도 하루 몇 시간씩 건반을 눌러대니 항상 근육이 뭉쳐 있어 수시로 침도 맞

고 물리치료를 받아왔다. 그런데 그 날은 통증클리닉을 받았모양이다. 등쪽과 가슴 위쪽 몇 군데에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는데 갑자기 숨이 가쁘고 가슴아파왔다고 한다. 통증클리닉을 처음 받는 게 아니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직감하여 즉시 의사

에게 알렸다. 

 

의사는 엑스레이 촬영을 할 수 있는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했고 아이는 병원을 찾아 7분이걸었던 모양이다. 가는 동

안 호흡은 점점 더 가빠졌고 걷는 것조차 힘겨웠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20분 가까이 순서를 기다렸다.

 

사진을 본 의사가 깜짝이나 놀랐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세요. 폐에 공기가 찼어요."

엄마 아빠는 멀리 있으니 일단 언니를 불러 큰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거기까지 가고 사진 찍는 동안 또 20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까 최초 병원에서 세 번째 병원까지 가는 동안 40분 넘는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그 동안 아이의 폐에는 공기가

50%로 늘었다. 폐가 반으로 쪼그라들어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겨드랑이 아랫쪽에 구멍을 뚫는 수술이 진행다. 그곳으로 관을 삽입해 공기를 빼야 했던 것이다.

 

 

 

 

들어오는 의사들을 붙잡고 물으면 모른다고 했다. 모두가 바보는 아닐 텐데, 분쟁의 소지가 두려워 몸을 사리는 것 같았다.

"사고 낸 의사가 주사바늘이 깊이 들어간 것 같다고 했는데 그걸 입증할 수는 없나요?"

"불가능합니다. 그냥 외상인가 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지 외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멀쩡한 아이가 어깨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폐막에 구멍이 뚫려 폐가 반으로 쪼그라졌는데 외상이 아니고 무엇

는가. 그런데 외상이라며 단정지어 말해줄 수는 없단다.

"후유증이 있습니까?"

"완벽하게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로 말한다면?"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더니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왔다.

"어제 그렇게 말한 의사인데 다시 정정하겠습니다. 후유증은 0%입니다."
그럼 어젠 왜 그렇게 확실하게 말을 못했을까?

 

술이 끝난 아이를 만난 다음, 사고를 낸 병원을 찾아갔다.

"방금 진료를 끝낸 환자가 숨이 차고 가슴이 아프다는데 X-레이를 찍어보라며 어떻게 혼자 보낼 수가 있죠? 곧바로 큰병원

으로 옮겨 처치를 받게 했다면 저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환자가 으며 을 해서 그 정도로 아픈 줄 몰랐어요. 주사 바늘이 깊게 들어간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와 가슴 부위에 주사했던 바늘을 꺼내 보여줬다.

"방금 했던 말들을 글로 써 주세요."

본인 입으로 인정했던 것들을 글로 써 달라는데 그가 거절했다. 일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옴짝달싹 못할 증빙서류가 될 것

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든 그가 자신이 했복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우리 딸이 오늘 세 군데 병원을 거치며 진료를 받고 최종적으로 입원 수술한 비용 전부를 입금시켜 주세요. 또 이곳에서 우

리 딸에처치했던 자료를 주세요."

(치료비 일부를 입금시키라고 했던 건 본인이 과실을 인정했증거가 될 것 아서였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그가 자신의 과실을 인정한 것녹취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 큰소리가 나지 않았을 때라 그런지 그는 순순히 내가 요구하는 두 가지를 해결해 주었다. 이게 의료사를 당한 환자의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잘하면 이 삼일 만에도 퇴원할 수도 있다 하여 제발 그러길 바랐다. 왜냐하면 사고를 당한 딸아이도 하는 일들이 많아 그렇게

묶여 있을 형편이 아니었고 아픈 아이를 위해 편안한 마음으로 수발을 들만한 가족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6일 만에 퇴원했다. 사고를 낸 의사는 아이가 퇴원하는 걸 반기면서도 책을 져야 할 분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해가려고 했다.

"후유증이 있을 경우는 책임을 지세요."
 "그
건 못합니다. 기흉은
유증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다른 원인으로 기흉이 생겼는데도 우리에게 책임지라고 하면 곤란하

않겠습니까?"

"관을 삽입했던 곳에 흉터가 남을 텐데 성형은 해주셔야죠."

"거의 흉터가 없으니 그냥 둬도 될 습니다." (흉터가 제법 크게 남았다.)

후유증도 묻지 마라, 흉터 치료를 해 줄 의향도 전혀 없다. 피해보상은 못해주더라도 사람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으환자

에게 위로금이라도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치료비를 댔으면 됐지 뭘 바라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50만원을 제시

다.

 

그동안 불안했던 것의 실체가 보였다. 이쯤되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의료분쟁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를 도와주는 몇몇

단체에 전화를 걸어 물었지만 딱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진이 빠지만한 힘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

렇게 의료분쟁은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끝냈다. 싸워봤자 돌아올 게 없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의료분쟁의 핵심은 이것이다. 교통사고는 피해자 중심이지만 의료사고는 가해자 중심이다. 증거가 되는 료들은 의료인에

편중되어 있고 과실에 대최종 판정도 의사협회에서 한다. 때문에 본인 입으로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의료행위 중

에 사람이 죽어도 과실로 판받기 어렵고, 제대로 된 피해보상을 받기가렵다. 로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게임이다.

 

 

 

의료 사고 발생 시 행동 요령

 

1. 해당의무기록 사본요청

 

의료법이 개정되어 의료기관은 환자 측의 요청이 있는 경우 진료기록의 사본을 교부할 의무가 있다. 의무기록이란 환자치료

에 관한 의료인 및 의료기관 종사자가 치료의 경과 및 과정에 대하여 기술한 모든 치료관련 기록으로 사고 발생 시 사고의 원

인을 입증해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2. 증거 확보

물증과 증인 확보를 위해 우선 담당의사에게 의료사고 발생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해 메모하고, 가능하면 녹취한다. 이

다른 의료인과 동행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의료 분쟁 초기에 입수한 증거가 위조나 변조 가능성이 낮아 신빙성이

높기 때문에 신속히 행동한다. 또 사건 중간 녹화와 사진촬영 등을 통해 사실적 증거 확보를 해야 한다. 환자 사망 시

는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해 이를 증거로 확보할 수도 있다.

 

 

3. 사고경위서 작성

의료사고 초기부터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사실관계를 육하원칙에 맞춰 정리한다.

 

4. 그 밖의 유의 사항

 

사고 발생 시 병원에 가서 소리를 지르거나 의료진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동은 상하게 만

든다. 침착한 대응이 필요하다. 의료사고 소멸시효는 의료사고를 안 후 3년, 사고발생 후 10년이다.

 

 

 

분쟁 발생 시 해야 할 일

 

 

첫째 단계 : 합의

 

의료분쟁이 일어나면 처음에는 양당사자 즉 의료인과 환자 간에 합의 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합의 후는 소송 제기가 안 되

므로 신중하게 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 : 구제 신청, 상담

 

세 번째 단계 : 조정

 

현재 조정은 의료분쟁이 발생한 때로부터 1년 안에 중앙의료심사조정위원회나 각 시·도 소속의 지방의료심사조정위원회에

분쟁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의료분쟁 조정 신청 시 조정수수료는 부과되지 않는다. 조정 신청은 한국소비자원과 법원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최후의 수단 : 소송

 

의료 사고를 통해 민사 및 형사 소송이 가능하다. 의료인의 채무 불이행이나 불법 행위에 대한 것은 민사소송에 해당되고 의

료인의 위법 행위로 환자가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렀을 경우에는 형사 소송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의료인의 과실로 상해나

망에 이르렀을 때는 업무상과실치사에 해당된다. 또 의료인의 허위 진단서 작성이나 문서 위조, 낙태 시술, 비밀 누설 등도

 

형사 소송에 해당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고소 및 소송제기는 환자와 의료인 모두 상당한 시간과 돈을 지불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언젠가 한 번 포스팅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해 올렸다. 마왕 신해철 부인이 말한 '환자에게 너무도 불리한 의료소송 제도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들이 개선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다.

 

신해철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 가족은 전문가의 식견과 양식을 존중하고 신뢰합니다. 우리는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보낸 유족으로서 일반인

의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의문을 던졌을 뿐이고 수술과 천공의 인과관계나 수술 후 환자 상태에 대해 조치가 적절했는

지 여부 등, 전문적인 부분은 국과수나 의사협회, 수사기관에서 객관적으로 적절히 판단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장협착 수술 당시 추가로 이뤄진 수술이 어떤 수술이었고 그에 대해 동의를 구하였는지 수술 후 환자 상태에 대한 원장님의

판단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진실은 원장님이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는

용서할 수 있지만 이런 사실관계에 대해 혹시라도 거짓이 있다면 그 것은 고인을 또 한번 죽이는 행위이며 유족들에게 큰 상

처를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의료분쟁에 '상식선'은 없다. 진실은 원장이나 수술을 집도한 의사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

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일쯤은 거뜬히 해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

거가 되는 료들은 의료인에게 편중되어 있고 과실에 대최종 판정도 의사협회에서 한다'는 사실이다.

 

마왕이 워낙 이름난 사람이고 그의 죽음과 이후 과정을 관심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이들이 많아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다.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저자
굄돌 이경숙 지음
출판사
청출판 | 2012-07-1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책은 두 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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