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퍼프를 이렇게 쓰면 피부에 안 좋아요. 화장품 낭비도 심하구요."
딸아이 손에 깨끗하게 세척한 파운데이션 퍼프 두 장이 들려있다. 처음 듣는 지청구가 아니다. 여러 번 얘기를 했었다.
딸아이는 화장도구들이 더럽혀진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무엇보다 피부에 해롭기 때문에 수시로
빨아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자 딸아이는 지저분해진 엄마의 퍼프를 들고 나가 손수 빨
아온 것이다. (그래도 살림은 깨끗이 잘한다. 진짜다.ㅎ)
깨끗하지 못한 건 화장품 용기도 마찬가지다. 쓰다보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여기저
기 덕지덕지 묻히는 것 같다. 그러면 어느 틈엔가 딸아이가 와서 눈에 띄는 대로 닦아준다.
휴대용 파우치 안에 거울 하나 없이 다닌다는 걸 알고 나서는 당장 손거울을 사왔다.
"엄마, 이거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간간이 거울도 보세요."
간간이라도 거울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만 사실 난 화장할 때 말고는 거의 거울을 안 보며 산다. 밖에 나가 화장실을 사
용한 다음 거울이 있는 세면대 앞에 섰을 때는 아주 특별한 경우다. 저절로 봐지니 말이다. 그러니 가방에 손거울 하나
들고 다니지 않아도 하등 불편할 게 없다. 여성스럽고 섬세한 딸아이는 그런 엄마가 놀랍기만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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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이젠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엄마를 큰물에 모시고(?) 나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옷을 입고 다니는지 보여주기로 아빠와 합의했다고 한다. 바쁘
다는 건 핑계다. 겉치레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고, 무엇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 마음이 울적해 보일 땐 작은 화분이나 꽃다발을 사오기도 하고 예쁜 술잔을 사오기도 한다.
이런 문자가 오기도 한다.
"엄마 날이 추워요. 옷 따뜻이 입고 나가세요."
"점심은 드셨어요? 밥 꼭 챙겨 드세요."
완전히 거꾸로다. 누가 엄만지 모르겠다. 가스 벨브를 잠그지 않아 잔소리를 듣는 건 다반사다. 운동하지 않는 엄마가
걱정되어 잔소리할 때도 많다. 이 때는 일장연설을 한다.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죄
읊으며 엄마를 겁박한다. 원체 분명하고 정확한 아이라 이치에 어긋나거나 허튼소리는 안한다는 걸 알기에 딸아이가
하는 말은 100% 다 믿는다. 다만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아 탈이다.
밖에 나간 엄마가 늦도록 귀가하지 않으면 이런 문자가 온다.
"엄마,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이젠 들어오셔야 하지 않겠어요?"
난 우리 딸들이 외출했을 때 왜 안 오느냐며 채근해본 적이 없다. 누굴 만나고 가겠다 하면 누구냐, 어디서 만나냐,
일찍 들어와라, 따위의 말도 하지 않는다. 딸들을 믿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말은 모두 생략한다. 딸들이 늦겠다고
통보해 오면 "알았어" "그래" 둘 중 하나로 응답한다.
그래도 이모티콘 하나씩은 붙이려고 노력한다.
^^; ♡♡♡
잔소리하고 캐묻는다고 잘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여 행동을 함부로 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래도 대체로 딸들은 열
시 남짓이면 귀가한다. 더러 늦어질 때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때 되면 오겠거니 하며 믿고 기다린다. 그런데 딸들은
엄마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나가면 함흥차사일 때가 많고 늘 고단하게 사는데 수면시간이 부족하여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낳아 내손으로 키웠지만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 위치가 바뀌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엄마가 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딸이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걸. 무거운 것들을 들어야 할 때, 컴퓨터나 기계가 망가졌을 때, 아들
이 없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딸이 있어 참 좋다. 친구처럼 나란히 걸으며 엄마를 걱정하고 일일이 챙겨주는 딸이 둘
이나 있으니 두 배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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