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 탓을 하지. 남편은 아내가 나쁘다 하고 아내는 남편이 잘못됐다 하고."
그렇게 남의 부부를 걱정하던 참이었다.
"**엄마가 남편을 참 피곤하게 하긴 해. 잔소리가 많잖아?"
"그 집 남편도 만만치 않아. 잔소리도 많이 하지만 걸핏하면 훈계하고 소리 지르고......"
"여자가 그렇게 성질나게 하니까 그렇지. 그냥 그렇겠어? 오늘 아침에도 당신 어땠어?"
남편이 '그 집' 남편을 편들었고 발끈한 아내가 '그 집' 아내를 편들면서 더 발끈해진 남편 언성이 높아졌다. 아
내가 남의 남편 흉보던 중에 그만 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던 것이다. 남의 남편 흉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
기 남편 흉이었기 때문이다. 싸움은 '그 집'이 아니라 '이 집'으로 비화되었고 서로 상대방을 탓하다가 씩씩대던
남편이 문을 쾅 닫고 나가면서 임시 종료되었다.
듣다보니 두 커플 모두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고 싸우는 양상도 비슷하다. 그들은 100년을 싸워도 해갈이 안
날 것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문제를 끝까지 인정 못하고 일생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기만 하다가 자신의 남편이
남편인 줄도 모르거나 자신의 아내가 아내인 줄도 모르는 날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아는 이가 김장을 했다며 식사에 초대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쌩하다. 아내는 말끝마다 입꼬리가 씰룩였고 남편
은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자신의 아내와 말 한 마디 섞고 싶어하지 않는다. 손님을 오라고 해놓고 어찌 그럴 수
있냐, 할 수도 있지만 워낙 자주 보는 광경이라 우리 역시 그러겠거니 한다. 이들은 조금 있으면 각기 하소연을
가장한 서로의 비리를 고발할 것이다. 우리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우리 **엄마가 어쩌고 저째서.
듣다 보면 정말로 사소한 일이다. 그게 그들 부부 인생에 그렇게나 중차대한 문제인지 묻고 싶어질 정도다. 이
집 역시 앞의 두 커플처럼 죽는 날까지 해갈이 안 날 싸움을 하고 있다.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늘 상대의
티에 돋보기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또 잠시 잠깐도 서로를 위해 참아주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로 시작된 싸움이
서로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고 종국에는 뿌리도 뽑지 못한 채 슬그머니 묻혔다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
다.
이렇게 툭하면 싸우는 부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결혼 전 꿈꿔왔던 이상형을 몇 십년이 지난 다음에도 고수하려고 한다.
누구든 이상형이 있었을 것이다. 더러는 그 이상형에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을 테고 더러는 이상형인줄 알았
지만 막상 살아보니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인 것에 실망할 것이다. 그런데 결혼은 현실이다. 이상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우자를 버릴 순 없는 일이고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결점은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삶이 우리를 속이기도 한다. 정말 멋진 사람이었지만 삶의 올가미에 묶여 옹졸하고 빡빡한 사람으로 변
질되거나 아름답고 교양있던 여자가 분명했었지만 억척스럽고 몰염치한 아줌마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
꾸만 결혼 전의 이상형을 들이대면 함께 사는 일이 진부해지고 행복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상형은 완고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짜 놓은 틀에 상대를 꿰맞추려다 보니 늘 균열이 생
기는 것이다. 내가 꿈꾸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의 배우자이기 때문에 보듬어 안아야 하고 남의 아내, 남의 남편
에 비해 못나 보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히 품어야 한다. 결혼생활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비난하고 훈계하는 버릇이다.
자신은 완벽한 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작은 잘못도 관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쿵 저러쿵 하며 배우
자의 결점에 돋보기를 들이대니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결점없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부족하니까 결혼한다. 완
벽하다면 혼자 살지 골치 아프게 같이 부대끼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훈계는 어른 아이 불문하고 싫다. 그런데 부부사이를 상하관계로 착각하여 일일이 훈계하려 들면 거북하다. 상
대를 일깨워줘야 할 일이 있다면 자식처럼 야단치고 호통치는 방식이 아니라 조근조근 자신의 뜻을 전해야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보다 자신의 뜻만 굳세게 내세우고 관철시키려고 한다.
상대의 불만이나 아픔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불만과 아픔에만 집중한다. 이들은 양보가 없다. 그
저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에 늘 억울하다. 상대가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해도 강제적으로 입을 다물게 하고
들을 필요조차 없는 하찮은 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 줄기차게 자신의 뜻만 옳다고 주장한다.
부부싸움의 원칙이 없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다.
이들은 '너'가 내게 한 만큼, 아니 두 배 세 배로 앙갚음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로인해 온 가족이 상처투성이가 되
더라도 끝장을 보고 싶어한다. 그게 이기는 길인줄 안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더 좋은
관계로 개선해 가기 위해 싸운다는 사실을 잊으면 이기더라도 상처만 남는다. 서로 힘을 보태도 살기 힘든 세상이
다. 쓸데없이 왜 힘을 빼는가.
과거를 되새김질 한다.
이들에게는 과거가 잊혀진 날들이 아니다.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있다. 과거는 시간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감정이
거나 사실이다. 덮어야 할 사실도 낱낱이 기억하고 유쾌하지 못했던 감정들도 죄 쌓아둔다. 부부 사이를 돈독히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면 미련없이 도려내야 한다. 상대에게 더 관대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도 그랬
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예단 때문일 때가 많다.
과거에서 벗어나시라. 먼 훗날에도 그럴 것이라고 예단하지 마시라. 현재를 살기에도 벅차지 아니한가. 일생 싸우
기만 하다가 불현듯 죽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지금, 죽음의 문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떤
이웃처럼 말이다. 그들 부부도 일생 해갈 안나는 싸움을 했다. 그러다 몇 달 전, 죽음을 통고받았고 어제 임종방으
로 옮겨 와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일이 나나 내 배우자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딨는가. 지금 당
장 우리 부부를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고, 내 배우자를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그런 것들만 생각하시라.
<아내와 나 사이>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이생진 -
오랫동안 블로그를 방치했네요. 몹시 바빴습니다. 인사 못드린 이웃님들께 죄송하고 그럼에도 들러 안부
물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옷깃 단단히 여며야겠습니다.
공감하신다면 하트 ♡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