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작품세계 Ⅱ- Andy Warhol

(1928-1987)

 

 

생애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상업 예술을 전공한 그는 1949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잡지 삽화와 광고 제작으로 명성을 쌓았다. 1960년대부터 그는 캠벨 수프 깡통이나 코카 콜라병 등 유명한 상품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에 그는 실크스크린으로 바꾸어, 대량생산된 상품의 그림을 그리는 것만 아니라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였다. 그는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뉴욕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The Factory)에서 판화, 신발, 영화, 책 등을 만들어내었다.

 

워홀의 작품에는 의뢰를 받아 제작한 초상화나 광고도 포함되어 있다. 워 홀의 작품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돈, 달러 기호, 식품, 잡화, 여자 구두,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렸다. 그에게 이런 주제들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코카 콜라는 언제나 코카 콜라다. 대통령이 마시는 코카 콜라는 내가 마시는 코카 콜라와 같은 그 콜라다". 그는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를 이용해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저격
1968년 6월 3일 팩토리 스튜디오의 직원 발레리 솔라나스가 스튜디오에 들어와 워홀을 총으로 세 발 쏘았다. 두 발은 빗나갔지만 세 번째 총알이 그의 양쪽 폐, 지라, 위, 식도를 관통했다. 병원에서 의사들은 그가 죽었다고 선언했으나 그는 그 총격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솔라나스는 후에 "그는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1995년에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1984년작 [마이클 잭슨]

 

 

 

이 작품은 <타임즈>지로부터 의뢰 받아 1984년 3월 19일 커버스토리인 ‘왜 그가 스릴러인가’를 위해 마이클 잭슨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은 전설적인 팝음악의 아이콘이다. 워홀은 잭슨이 수많은 스캔들과 비극으로 시달리기 이전인 그의 젊은 시절 전성기를 담아냈다.

 

워홀은 1977년에 잭슨을 처음 만났다. 자신이 창간한 <인터뷰>지에 잭슨의 기사를 싣고자 했기 때문이다. 워홀과 잭슨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수년에 걸쳐 서로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다. 워홀은 잭슨이 1984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앞두고 마련한 파티에 참석했다.

 

워홀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잭슨의 공연용 장갑은 단순한 장갑이 아니었다 그것은 먹이를 잡으려는 포수에게 꼭 필요한 도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무대위의 모든  것들은 일상의 것들보다 커야만 한다.’

 

워홀은 1928년 8월 6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습니다.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경부터 뉴욕에서 상업디자이너로(일러스트)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었다.

 

19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展)’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detail: A Boy for Meg, 1962

 

1963년부터는 "슬립" "엠파이어" 등 실험영화 제작에 힘쓰고, 상업영화에 손대는가 하면 소설도 출판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한국에서는 1994년 9월, 호암갤러리에서 그의 팝아트전이 개최되었다. 주요저서에"1970년대의 조망" 등이 있다.

 

 

 

 

 

 

앤디 워홀 베토벤

 

사실 미국의 팝아트의 대표라면 바로 앤디 워홀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실크스크린이라는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 방법을 이용하여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피카소가20세기미술에있어 프로메테우스였다면,선전가·장난꾸러기·벼락출세자였던 워홀은 그리스 신화의 목신인 판이었다. 팝아트는 엄청난 상업성을 위해 미국미술의 정신성을 포기한 장르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1964년

2개의 연속화 캔버스에 합성 폴리모 물감과 실크 스크린 잉크 및 캔버스에 알루미늄 물감

 

 

 

1960년대 초 워홀은 헐리우드의 요부들과 켐벨 수프깡통 이미지의 야한 실크스크린 작품들로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밝고 조야한 색채, 그리고 전세계는 생 산된 제품일 뿐이라는 그의 차가운 메시지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판매를 위한 생산라인 이미지로 격하 될 수 있다면, 마릴린·엘비스·브릴로는 모두 현금으로전환 가능하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의 ‘레드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얼굴을 소재로 한 앤디 워홀의 작품 ‘붉은 엘비스’(레드 엘비스)를 둘러싼 사기 매매 법정 공방이 결국 구매자의 승리로 끝났다. 코네티컷주 대법원은 25일 이 그림의 본래 소유주였던 스웨덴의 거액 상속녀 케르스틴 린트홀름이 미국 미디어 업계의 거두 피터 브랜트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브랜트를 이 그림의 소유자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브랜트가 그림을 구매할 당시 변호사를 고용해 사전 조사를 했으며 공식계약을 고집한 점을 들어 그가 선의의 구매자로서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원심 판결을 지지했다.

 

이 그림은 동일한 엘비스 얼굴 그림 36개를 담고 있는 1962년도 실크 스크린 작품으로 1.8미터 높이의 크기에 시가 1,200만달러 정도로 평가된다. 워홀의 작품을 수집해온 브랜트는 7년전 이 작품이 유럽에서 전시될 때 린트홀름의 미술품 거래상인 안데르스 말름베리에게 290만달러에 사들였다.

 

말름베리는 그러나 2003년 이 작품의 매매와 관련해 스웨덴에서 절도혐의로 기소돼 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린트홀름은 브랜트와 말름베리가 공모해 이 그림을 소유주인 자신의 허락도 없이 매매했다고 주장하며 브랜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5년 코네티컷주 항소심에서 패소한 후 상고했다. 


 

 

 세개의 엘비스 프레슬리 (1962)  

다소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3개의 이미지를 겹쳐서 나타내었다. 스타의 화려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인물을 좋아했으며 자신도 그러한 스타가 되길 꿈꾸었다고 한다.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를 작품 속에 부각시켜 눈길을 끌고 다시 그 이미지들을 냉담하고 무미 건조하게 하여 거리감을 만드는 것이다. 그 거리감 속에서의 자유로운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다.

 

 

여덟명의 엘비스

엘비스프레슬리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 사진을 변형 재구성한 것으로 유명인사의 개인적인 면모가 현대의 영웅으로 미화되거나 과장되지 않고 그저 하나의 상징이나 기호로 자유분방하게 그림의 소재로 차용된점 또한 앤디의 초상화 그림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사후에도 그 네온사인은 쉽게 빛을 잃지 않았고 , 그의 명성은 미술계를 떠돌았다. 워홀처럼 언론에 의해 명성을 얻는 미술가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미국의 제프쿤스와 영국의 다미엔 허스트 는 그 대표적 예이

 

 

 

마릴린 몬로 1986년 캔버스에 실크 스크린 잉크와 아크릴 물감

 

 

 

 

 

 

 

 

 

 

 

 

 

 

 

 

앤디 워홀의‘마릴린 먼로’(1967년작).

 

 

 

 

 

 

 

 

 

 

 

대표작의 하나인 1967년작 [마릴린]

 

 

황금빛 마릴린 (1963)  

금빛 뒷 배경은 중세의 성인을 그린 비잔틴시대의 종교화 모자이크에서 따온 것이라한다. 이는 워홀이 현대의 스타들을 중세의 성인과 비견하고 있다는 의미라고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섹스 여신이라는 마릴린 먼로에게 종교적 신성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대중의 스타들이 현대의 숭배 대상이다

 

 

광고미술에서 출발한 앤디 워홀은 작품에 상업미술을 도입했다. 그는 미국 가정에서 매일 먹는 깡통 수프와 섹스의 상징 같은 유명한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사진 이미지를 이용해 대중성을 강조했다. 먼로의 영화 포스터에 익숙한 대중이 미술관에서 만나는 먼로의 다양한 모습은 결코 싫지 않을 것이다. 워홀은 미술의 주제를 대중문화에서 취하며 소비품처럼 값싸고 신속하게 복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워홀은 광고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신속하게 15분 동안은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팝 아트를 통해서 강조했다. 「마릴린 먼로를 주제로 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1967년의 <마릴린> 역시 머리카락, 눈꺼풀, 입술 등이 강조되어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전작들에 비해, 이 작품은 좀 더 단순하고 평면화되어 있는데, 이는 사물을 추상화시키고자 했던 워홀의 성향을 보여준다. 1967년 <마릴린>은 총 열 점으로 이루어진 연작으로, 각각의 프린트에 나타난 다양한 색의 조합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녹색, 분홍색,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프린트에서는 마릴린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의 어려움은 워홀이 죽기 직전에 탐구했던 ‘위장’시리즈를 예고한다.

 

 

 

 

 

 

 

1973년작 [마오]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과 정상회담을 갖자 워홀도 중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모택동의 초상화를 실크스크린하기 시작했는데 중국정부가 선전용으로 사용하는 모택동의 사진을 드로잉하여 과거에 제작한 초상화들과 달리 좀더 회화적으로 제작했다. 워홀은 아크릴이 젖었을 떄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 터치가 나타나게 함으로써 직접 손으로 그린듯한 느낌을 주어 자신이 진지한 태도로 제작했다는 것을 구매자들이 알아주길 바랬다.

 

 

 

 

 

앤디 워홀 체 게바라 1962년 포스터  61 x 86 cm

 

 

 

 

 

LIZ(F. & S. II.7), 1965 561 by 555m, Offset lithograph printed in colours

 

'리즈'라는 이름의 이 초상화는 앤디 워홀이 1960년대에 리즈 테일러와 마릴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등을 모델로 그린 12개의 뮤즈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그린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초상화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2천 37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216억 원에 팔렸다고 한다 

 

리즈 (1965) 

 

 
마릴린 먼로와 마찬가지로 리즈 또한 워홀이 사랑한 스타이다. 그녀의 눈두덩과 입술에 더해진 워홀의 거친 색 처리 방식이 주목된다. 평평하고 야한 색채로 이루어진 이 표현에 대해 그는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는 아름다우며, 이 색채도 아름다울 뿐이다.” 라고 말하였다.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이기에 작품화 했다는 것이다
.

 

 


 

마가렛 여왕QUEEN MARGARETHE II OF DENMARK,FROM REIGNING QUEENS(F. & S. 345), 1985 997 by 798mm, screenprint in colours

 


신사와 숙녀들 (1975) ]
아홉 명의 신사와 숙녀의 이미지를 단순화 시키고 변형시켜서 나열한 작품입니다. 이는 워홀이 잘 사용하는 표현법으로 이미지들을 단편적이고 무감각하게 반복 나열함으로써 이미지 나름대로의 개성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식되는 새로운 의미들을 감상자에게 보여주는 듯하면서 감추어 버리는 것이 워홀의 전략인 것입니다

 

 

 

 

 

 

 

 

 

 

 

 

 

 

 

 

앤디 워홀의 자화상 시리즈 중 1986년 제작된 마지막 자화상 시리즈 중 하나이다. 그는 유명인들의 초상화들을 찍어내는 실크스크린 작업에 몰두 하였는데, 스타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자신도 스타가 되고 싶어했던 워홀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워홀은 세부묘사가 생략되고 강한 음영의 대비로 이루어진 자화상을 통해 마치 스타처럼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철저히 은폐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타가 되기 위해 전략을 세웠으며 스스로 예술적 오브제가 되었다.

 

 

 

 

 

 

 

 

 

이디 세즈윅과 앤디 워홀

 

  

 

앤디 워홀 이디 세즈윅 1966년

 

 

 

 

 

 

 

 

1980년작 [아인슈타인]

 

앤디 워홀은 실제로 많은 유명인들을 소재로도 활용했는데 유태인 천재들이라는 프로젝트로 작품을 내기도 했다.아인슈타인은 그중의 한 작품이다.

 

이 유태인 천재들이라는 작품들이 공개되자마자 뉴욕의 유태인 박물관에 전시되었고, 평가는 엇갈렸다고 한다. 뉴욕 타임즈에 비평가 힐튼 크래머는 ‘이 전시는 천박하다. 상업성이 진하게 풍기고, 예술에 대한 공헌은 전무하다’라고 평가했지만, 수집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워홀에게 큰 수익을 안겨다 주었다고 한

 

 

1967년작 [넬슨 록펠러]

 

넬슨 록펠러는 너무도 유명한 미국의 석유 재벌.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손자이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부통령이었다. 이 작품 주인공의 할아버지이고. 스탠더드 오일의 창업자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자산 가치가 빌게이츠의 3배정도 되는 하늘이 내려준 거부였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 오일 시장의 95%를 장악한 독점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는데, 그래서 더러운 돈이라는 비판도 많고 자선사업으로 기부를 엄청나게 하기도 했다.  

 

 

 

 

 

 

 

앤디 워홀 괴테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워홀은 돈을 무지 좋아했다고한다일생동안 강하게 집착해서 그 욕구를 작품으로까지 연결됐었다.일부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노동자 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대공황 시기를 격으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의 성장배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1982년작 [제인 폰다] JANE FONDA(SEE F. & S. IIB 268), 1982 1003 by 800mm,

Screenprint in a unique combination of colours

제인 폰다는 세기의 명배우 헨리 폰다의 딸로, 1960년대부터 활동하여 많은 인기를 누렸던 여자배우이다.제인 폰다는 영화 배우로 오랬동안 성공의 길을 달렸다고 한다. 아카데미상을 2회나 수상하기도 했다. 워홀에 의하면 제인 폰다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무료로 포스터를 그려주길 원했다고 한다.

 

제인 폰다의 남편인 톰 페이든의 선거 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 이라고 하는데 결국 무료로 그려주고 제인 폰다는 이를 이용해 선거자금을 마련하였으며, 그녀의 남편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캘리포니아 의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레이스 켈리 (1987)

 


 

존 레논

 

 

요셉 보이스  1980  스크린 프린트

 

 

 

 

 

 

플라워 연작

 

 

 

믹 제거

믹 제거

 

 

Rebel Without A Cause (james Dean)

바스키아는 지하철의 지저분한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천재적인 자유구상 화가라고 한다.

 

딜러의 전설 리오 카스텔리

 

리오 카스텔리는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깡통 그림을 제일 먼저 팔았던 딜러로 유명하다. 1950년대와1960년대에 그가 제일 먼저 발굴하고 다뤘던 작가들이 재스퍼 존스앤디 워홀제임스 로젠퀴스트로이 리히텐슈타인프랭크 스텔라도널드 저드로버트 모리스댄 플레이븐 등이다지금은 서양미술사에 남은 대가들이니딜러로서 리오 카스텔리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그가 발굴해 첫 개인전을 열었던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196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작가로는 처음 메이저 상을 받았다그는 종종 부르주아 미술시장을 만들었다는 평도 듣는다.

리오 카스텔리는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었기 때문에 뉴욕에 첫 갤러리를 낸 것은 나이가 50세이던 1957년이 되어서였다이미 한참 기성세대였지만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나는 작가를 고를 때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는지 보고 고른다고 말했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그토록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했지만, 1960년대가 되자 그는 추상표현주의와 전혀 다른 길을 가는 팝아트를 발견하고 팝아트를 적극 후원하기 시작했다.

영리한 딜러가 되는 것은 어렵다안목과 배짱과 사업수완을 다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사실 미술시장에는 이런 본연의 딜러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늬만 딜러들이 더 많다그냥 여기 있는 작품을 가져다가 저기에다 팔고 수수료를 챙기는유통에만 관여를 하는 사람들이다하지만 이런 장사꾼의 단계를 넘어선 진짜 딜러들은 미술계를 뒤흔든다자신이 기획한 전시로 새로운 트렌드와 유행을 만들고궁극적으로 미술사를 새로 쓰게 할 수도 있다.

 

 

 

 

 

 


아메리카 인디안 - 추장

프리드리히2세(Friedrich der Grosse) - 왕족 Frederick II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소설가

레닌(Lenin) - 구)소련의 혁명가

마그레테2세(MargretheII) - 덴마크 왕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