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작품세계 Ⅲ- Andy Warhol

(1928-1987)

 

 1962년 순수미술을 지향하던 워홀에게는 기념비적인 한해였다.  50년대 이후 꿈꿔오던 스타로의 진입이 현실화되기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해 6월 워홀은 뉴욕은 아니지만 로스엔젤레스의 페라스겔러리에서 수프 깡통 그림을 처음 전시하고 마릴린몬로를 처음으로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다.


이어서 8월에는 뉴욕의 제니스화랑에서 열린 새로운 리얼리스트라는 팝아트 전시회에 초대된다. 전기의자, 자동차사고,추락한 항공기등의 재난시리즈가 시작된다.  2달러지폐를 그려주면 전시회를 열어준다고 했던 뉴욕의 엘리노아워드가 경영하는 제니스 화랑에서의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워홀은 이전시회를 계기로 맨해턴 일대 미술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의 작업실인 공장에서는 젊고 열광적인 조수들이 실크 스크린 프린트 과정을 맡아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그 생산량 또한 폭발적이었다.


62년에서 64년 사이에 제작된 실크 스크린 프린트만도 무려 2000점이 넘었던 것이다 워홀의 스타로의 진입과정은 순간적이고 폭발적으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만만하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평론가나 미술사들은 워홀작품의 특성과 예술에 대한 태도, 이념을 다음 몇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주제나 소재를 콜라병,수프등의 일상적이고 비개성적인 사물과 대중적인 스타, 매스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사건, 사고, 죽음과 최후의 만찬 같은 옛 대가들의 걸작등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들에 택했다.

 

둘째, 제작방법으로 기계적인 생산방식인 실크스크린을 택했다 실크스크린은 누가 제작했는지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기계적인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무수한 복제가 가능하다.

 

세째, 이미지의 처리방식은 사진의 단편성,비서술적 성격을 이용해 변형했다 그리고 이미지를 반복 나열함으로써 이미지가 가지는 개성, 충격,감동등을 제거해 무감각,냉담한 상태로 이끌었다.

 

네째, 제작과정에서 보조자를 채용하고 작품에 타인의 즉 예술이란 재능있는 특별한 개인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예술과 예술가의 범위를 넓혀주었다.

 

다섯째, 워홀은 예술도 비지니스의 일종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예술의 상업적 성격을 직시했다 즉 예술작품을 상품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자신의 이미지 생산지임을 말과 행동으로 밝혔다.

 

여섯째, 실크스크린에 의한 평면작업 뿐아니라 영화,잡지,심지어 유선 방송에 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예술활동이 한 부분에 국한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예술의 대중화와 대중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타진한 것이다.


워홀은 자신이 콜라병을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라 미국의 위대성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 같은 것을 구입한다는 전통을 세웠다는 것이다.  T.V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리즈 테일러도, 미국 대통령도 그것을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 모퉁이 에서 건달이 빨아대고 있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유통되는 콜라는 모두 똑 같다.

 

 

 

플라워 연작

 

 

 

 

 

 

 

 

1970년작 [플라워]

 

 

 

 

 

 

 

 

 

 

 

 

 

 

 

 

 

 

 

 

 

<flowers - 앤디워홀>

 

 

 

 

 

 

 

 

1960년대 제작된 꽃 연작 작업은 모던 포토그래피 (Modernphotography) 잡지의 양귀비 꽃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크기와 색으로 반복 제작하였다. 정사각형의 모양의 캔버스에 화려하고 밝은 색채로 제작된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의 다음 연작 작품인 죽음과 참사를 암시해주고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정말 색채가 화려하다. 일반적으로 강한 색채는 촌스럽거나, 부조화로 눈의 간섭 현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앤디 워폴의 작품은 화려한 색의 조화가 정말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의 유명 비평가였던 데이비드 보든은 1964년 <빌리지 보이스>에 [플라워]에 대해 게재한 글이 있다.

「마티스의 컷-아웃 기법(형태를 그래로 오려내 붙이는 기법)으로 잘려진 꽃이 모네의 수련 연못에서 표류하는 것처럼.. 마치 워홀의 꽃들이 캔버스 바로 밑에 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워폴은 뛰어난 색채 감각으로, 전통적으로 장식성이 강한 꽃을 더욱 대담하게 표현했다」라고 평을 했다.

 

워홀은 자신의 이력을“나는 상업적 예술 가로 시작했고, 실업적 예술가로마무리짓고 싶다.” 고 요약했다 . 워홀은 자신의 본업인 미술은 물론 록밴드를 지원하기도하고, 잡지"인터뷰" 를 창간하기도 했으며,TV에 카메오 출연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당대의 번쩍이는 네온사인 역할을 했다.

 

자기가 하도록 하라 (1962) 

워홀의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초록색이 들어가야 할 나뭇잎들이나 풀밭을 온통 흰색으로 남겨두고 갖가지 숫자들로 장식을 했다. 지극히 평면적이고 단순한 선으로 된 이 그림은 언뜻 보면 판화 같지만 실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것이란다.

 

  

1967년작 [바나나]

 

 

 

 

 

 

 

 

 

 

 

 

 

나비들

 

 

 

 

 

 

 

 

 

 [ 신화 : 미키 마우스 (1981) ]

 

 


2차 대전 전부터 미국인에게 매우 친숙하였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생쥐라 칭해지는 미키 마우스 이미지입니다. 당시 워홀은 신화라는 제목으로 파손 위기에 처한 고전 작품들을 시리즈로 제작하였습니다. 비너스의 탄생이나 최후의 만찬 시리즈와 같이 제작한 것으로 보아 워홀은 미국인에게 미키 마우스는 다빈치의 작품 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앵무새 (1984) 

크레파스와 물감의 번지기 효과가 있는 실크 스크린 작품입니다. 워홀 후기의 작품으로 가로 20센티 미터 세로 25센티 미터의 작은 작품입니다. 앵무새의 머리 부분과 주둥이 부분을 강조하였습니다. 단순하게 그려진 것이 삽화와 같은 느낌을 주네요

 

 

 

도날드 덕 기념식 (1985)]


미키 마우스와 함께 유명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죠. 빗자루를 들고 행진을 하는 도날드 덕의 모습이 4면 거울에 비취고 있는 것 처럼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거울 속 도날드들은 가운데 도날드가 반사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도날드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일몰 (1972)

 

조금 거리를 두고 그림을 보세요.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된 이 그림은 다른 색을 이용해서 시리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그림이 가장 사실적으로 느껴져서 여러분께 소개드립니다. 가만히 그림 속 태양을 바라보면 여러분은 금방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 서있을 수 있게 됩니다.

 

  

 

 

 

 

 

 

 

 

 

 

 

 

 

 

 

 

 

 

 

 

 

 

 

 


소 (1971)

 

 

 

 

 

 

 

1986년작 최후의 만찬 종이에 실크스크린과 종이콜라쥬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 1984년  합성 폴리모 물감과 실크 스크린 잉크

 

이는 광고의 속성을 차용한 것으로 현대의 대중 문화에 걸맞는 예술 형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워홀은 대중적 이미지 뿐아니라 공포의 이미지도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영화 배우와 같은 유명인들, 꽃, 코카콜라병, 또는 전기의자, 자동차 충돌 장면, 폭풍의 현장 등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묘사하여 거의 임의적인 색채를 첨가함으로써 미묘한 효과를 보여준다.

 

워홀의 작품은 대량 생산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지 끔직한 장면이나 유명인들에 대한 반응을 마비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대중적 속물주의를 정착시켰다. 특히 동어반복적 표현을 통한 작품의 유일무이성 부정, 오리지낼리티의 부정 등은 후에 추상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이작품이 그의 출세작이다, 그는 같은 이미지의 같은 회사의 같은 모양의 같은 크기의 캠벨수프 캔을 나열함으로서 복제에의한 각인을 ( 카리스마) 상기시켰다.

 

그는 또 "나는 원래 상업미술가로 시작했는데 이제 사업미술가로 마무리 하고 싶다. 사업과 연관된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미술은 심오한 정신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오락적, 일상적 '상품'으로 취급하여 미술의 새장을 열었다.

 

 

 

1984년작 [장 미셸 바스키아]

 

 

Marilynmonroe I love your kiss forever forever, 1964, screenprint

 

1981년작 [십자가]

 

앤디 워홀이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

 

 

1971년작 [전기의자]

 

이 작품은 쥴리우스 로젠버그, 에설 로젠버그가 처형당한 뉴욕의 악명 높은  싱싱 교도소의 사형 집행실이 배경이다. 인간의 존재를 배제한 사형 집행실의 공간 속에 공허한 전기의자만을 중심에 배치한 이 작품은 앤디 워홀의 가장 기념비적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브룩클린 다리 (1983)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뉴욕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부룩클린 다리이다. 다리의 특징을 좌우의 양방향에서 잡아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한 연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강렬한 단색을 사용해서 저녁놀로 인해 생긴 그림자 실루엣처럼 보이고 있다. 워홀은 인기를 위해 지극히 미국적인 소재로 미국민들의 호응을 꾀하였고, 대중은 그의 의도에 충분히 답해주었다.

 

 

 

 

 

두개골 (1976) ]


이 시기에 워홀은 해골이나 망치, 낫과 같이 다소 충격적이고 위협적인 이미지의 작품 시리즈를 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소재의 파격성에 비해, 여느 작품과 같이 무관심하고 냉담한 표현을 보임으로써 워홀은 계속적으로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개골’, 1976,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82.9 x 203.5㎝

 

 

 

 

  

 

  

 

 

 

 

 

 

 

 

 

 

 

 

 

 

 

 

 

<앤디워홀 - 캠벨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