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간천하

 

한시간내에 소림사 무승단 총교두(總敎頭)인 석연로(釋延魯)는 '종선생', '이총(李總, 이사장)'등 4개의 전화를 받는다, 하루동안 석연로는 5,6팀의 손님을 맞이한다. 저녁 10시, 기자를 잠시 만난 후에 다시 다른 장소로 사람을 만나러 갔다...

 

1985년 소림사에 들어갈 때, 석연로는 석영신(釋永信)을 스승으로 모신다. 그때, 매일 저녁북, 아침종과 함께 하며, 참선과 무술수련을 했던 그는 자신이 이렇게 전용기사를 두고, 벤츠를 타고, 올림픽성화봉송주자가 되고, 담순(譚盾, 유명음악가) 키신저와 사진을 같이 찍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석연로의 가장 중요한 신분은 소림사 무승단배훈기지 교장이다. 평소, 그의 아랫사람들은 그를 '노통(老總)"이라고 부른다. 그는 절의 선방으로 돌아가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의 고색창연한 사무실 내에 머문다.

 

그는 이미 급속도로 발전하는 소림상업제국의 일원이 되었고, 많은 경우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다. 어떤 때는 석연로도 처음 소림사에 들어가서 참선하고 무술수련하던 단순한 생활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금방, 그는 자신을 다독거린다: "행주좌와(行走坐臥)는 모두 참선이다. 세상을 떠나려는 마음으로 세상에 들어가서 행동하는 것도 일종의 수련이다."

 

배훈기지는 1997년에 설립되었고 지금까지 발전했다. 이미 무승단 배훈기지교육집단이 되고, 1만여명의 재학생이 있다.

 

입학가이드를 보면, 가장 값이 싼 '보통반'의 1년학비가 8900위안이다. 가장 비싼 '소림사'는 매년 비용이 56,800위안이다. 외국인 학생중에 1-3년을 배우려면 매년 미화8800달러를 납부해야 한다.

 

"우리와 소림사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입니다." 석연로는 말한다. "주로 소림의 후계인재를 배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각 부분마다 아직도 완비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수취하는 학비도 학교건설에 대부분 쓰입니다." 이 총교두는 말을 잘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더듬기까지 했다.

 

석연로가 자랑스러워하는 작품은 <선종.소림>음악대전이다. 이것은 소림사가 개최한 대형야외실경연출이다. 그 연기자의 대부분은 무승단배훈기지 출신이다. 가장 존귀한 총통표가격은 장당 980위안이나 한다.

 

2006년 연출한 이래로, 업무가 바쁜 석연로도 자조 저녁에 시간을 내서 각분야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72분짜리 공연을 감상한곤 한다.

 

"요즘 들어, 절의 변화가 너무 큽니다." 석연로는 탄식한다.

 

1986년이래, 소림사는 소림사권법연구회, 소림무승단, 소림사홍십자회, 소림사서화연구원, 중화선시연구회, 소림사자선복리기금회를 설립했다.

 

1988년 1월, 소림사는 '쿵푸경제'의 길로 들어선다. 다음 해, 소림사 무승단은 국내외 공연을 개시한다. 1997년 8월, 소림사는 하남소림실업발전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소림소병과 소림선차를 경영하며, 국내 29대류에 근 100개상표를 등록한다. 일부 사회기업에 '소림'상표를 라이센스주었다. 그후, 소림문화전파공사, 식품공사, 상표공사를 차례로 연다. 수십개 소림무술문화센터와 무술학교가 국외에 설립된다.

 

이것은 천백년이래 중국불교계의 첫번째 회사이고, 등록경영범위가 부동산, 실업, 건축운수, 교육 및 인쇄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1999년부터, 주지인 석영신이 제30대방장에 오른 후, 소림사는 급속한 발전기에 접어든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 속의 전통 불가제자의 고유한 이미지를 뒤집어 버린다.

 

2002년,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은 석영신을 위하여 TV다큐멘터리 <신소림방장>을 찍는다. 이 것은 소림방장의 하루 생활을 찍은 것이다. 여기서 옛날 전통이 현대사회에 어떻게 융합되는지를 목도한다. 방장이 어떻게 벤츠를 타고 번화한 시내를 돌아가니는지, 어떻게 핸드폰으로 소림사내의 일상생활을 지시하는지, 이 다큐멘터리는 영문판으로 번역될 때, '방장(方丈)'을 CEO로 번역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즈는 석영신에 대한 보도에서, 그는 '자주 전용기사가 딸린 지프차를 타고 사방을 여행한다. 그리고 여객기를 타고 세계를 주유한다. 헐리우드 명사들과도 밀접하게 교류한다." 그는 가사를 걸친 CEO인 것이다.

 

여러해동안 석영신을 취재한 매체사람에 따르면, 석영신의 핸드폰이 울리면 곁에 있던 소사미가 공손하게 전화를 건네준다. 방장이 전화를 다 받은 후 다시 고개를 숙이고 전화기를 받아서 간다.

 

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소림사의 사업은 아주 크다. 매년 소림사의 해외자산수입만 1000만파운드에 달한다. 그중 1/3은 사원으로 들어간다.

 

3월 24일, 소림사의 크고 작은 상점들의 관리가 아주 엄격한 것을 목격한다. 모든 점포에는 통일적인 등급표시가 걸려 있다. 그 위에는 책임자의 성명과 연락방법이 적혀 있다. 한 음식점주인은 토로한다. 이 가게만 7,8십만위안을 내야 하고 돈은 모두 사원에 낸다. 그외에 절안에는 병기점, 약방이 있다. 약방에서 파는 거의 모든 약품에는 '소림'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가 있다. 제조상은 '등봉소림약국유한공사'이다. 약을 판매하는 것은 회색 승포를 걸친 소사미이다.

 

기실 국내시장을 샅샅이 훑은 석영신은 이미 눈길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2004년까지, 석영신이 친히 소림무술공연단을 이끌고 방문한 나라가 60여개에 이른다. 공연은 1000회가 넘는다. 관련 데이타에 따르면, 미국에서 공연할 때 회당 1만달러가량의 수입이 있었다.

 

2011년, 북경대학 문화산업연구원에서 거행한 '제8회 문화산업신년포럼'에서 강연할 때, 석영신은 소림사는 현재 해외에서의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에는 할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중점은 해외에 있다. 우리의 무승과 법사는 모두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사용하여 현지에서 전파한다. 해외에서 발전을 해야 국내에서 발언권이 생긴다."

 

그에 따르면, 현재 소림사는 베를린, 런던 등지에서직접 40여개의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비키니를 입은 묘령의 여자가 천년고찰에서 각종 포즈를 취할 때, 마침내 사람들은 탄식한다. "소림사는 타락했다."

 

"좋은 것은 시험을 견뎌낼 수 있다. 나쁜 것은 도태된다." 석연로는 소림사의 현재 발전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시간이 검증해줄 것이다. 발전에서 일부 편차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발전해야 한다." 그는 가끔 글을 읽을 시간이 생기면 경영류의 책을 읽는다. 이것도 세상에 들어가는 수행으로 여긴다.

 

소림사에서 서쪽으로 약 250미터 지점에 있는 탑림에는 역대고승의 묘탑이 있다. 소림사의 탑중에서 최신의 것은 소희장로(素喜長老)의 묘탑이다. 탑신에는 노트북컴퓨터, 카메라, 자동차, 비행기 등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제자들이 돈을 모아서 세운 것이다. 가이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여시구진(與時俱進, 시대와 함께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