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3000년전, 두 명의 사내가 강남으로 온다. 그들은 누구인가?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하여 왔는가? <사기.오태백세가>에는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오태백(吳太伯)과 둘째동생 중옹(仲雍), 셋째동생 계력(季歷)은 모두 주태왕(周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아들이다. 계력은 현명하고 능력있으며, 게다가 뛰어난 아들 창(昌)을 두었다. 창은 나중의 주문왕(周文王)이다. 주태왕은 계력과 창을 왕으로 세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태백, 중옹 두 사람은 형만(荊蠻)으로 도망치고, 몸에 문신을 하고, 머리카락을 잘라서, 자신들은 기용될 수 없다고 나타내며, 계력을 피한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태백분오(太伯奔吳), 즉 태백이 오로 도망쳤다고 하는데, '오'는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가? 어떤 사람은 감파(赣鄱, 강서성의 감강 및 파양호 일대)유역이라고 한다. 곽말약이 그렇게 말했다. 기실 형제2명은 '동광(銅鑛)'을 찾아서 간 것이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청동기를 제작하는 비법을 전수했고, '전상(剪商, 주나라는 상나라를 몰아내고 중원의 정통왕조가 된다)' 포위권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감파'유역에서 계속 영진(寧鎭, 남경과 진강)의 산지로 향하고, 호숙(湖熟, 태호 및 상숙)문화로 들어가고, 구용(句容)의 땅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동남으로 가니 태호유역이고 무석(無錫)에 도착한다.

 

'영'은 강녕 즉 남경을 가리키고, '진'은 진강을 가리킨다. 영진지역에는 구리(銅)가 난다. 청동에는 구리외에 주석(錫)이 필요하다. 구리와 주석은 두 형제와 같다.

 

오나라의 운하입국(運河立國)

 

강남운하는 오태백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백독하(伯瀆河)'라고 부르는 것이 무석에 있다.

 

태백의 남하노선은 서북에서 동남으로 가는 것이다. 그가 판 백독하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동남쪽으로 간다. 운하를 북쪽으로 파기 시작한 것은 초나라를 토벌하는 때부터이다.

 

전설에 따르면, 오태백은 구경일독(九涇一瀆)을 팠다고 한다. 그리하여 강남 최초의 운하체계가 형성된다.

 

일독은 바로 백독이다. 이것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매촌을 지나사 상숙쪽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아호(鵝湖)와 조호(漕湖)로 흘러든다. 지금은 비록 오염이 심각하지만, 그것은 무석동쪽지역의 간류(幹流)로 지금도 작용을 발휘한다. 그러나 오태백이 쌓은 성은 지금 전해내려오지 않는다. 유적지조차 찾을 수가 없다.

 

<사기.하거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오나라는 삼강(三江), 오호(五湖)를 통거(通渠)했다." 여기서 '거'는 바로 '운하'를 가리킨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오왕 합려는 오자서로 하여금 '거'를 파게 한다. 고순에서 장강지류인 수양강(水陽江)과 태호(太湖) 분수령 동파(東壩)를 뚫어서, 수양강의 물과 형계수(荊溪水)의 물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서쪽으로 남의(南漪), 고성(固城), 석구(石臼), 단양(丹陽)의 여러 호수를 거쳐 장강으로 들어간다. 동으로는 삼탑탕(三塔蕩), 장탕(長蕩)의 여러 호수를 거쳐 태호로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서계(胥溪)이다.

 

또 하나의 옛 오나라 물길이 있다. 백독하를 허브로 하여, 남으로 고소(姑蘇)까지 내려가고, 북으로 강음(江陰)까지 닿는다.

 

이 두 개의 운하가 있어서 오나라는 배를 타고 고소에서 태호로 가고 다시 운하로 무호까지 가며, 강을 넘어 북으로 유수구(濡須口)로 회하(淮河)로 들어간다. 다시 서북으로 가면 초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 군대를 이끌고 북상할 수 있다. 병력을 강음에서 보내면 강을 건너 양주에 이를 수 있다.

 

이 두 개의 운하가 있기 때문에, 오나라의 병사는 진퇴가 자유롭고, 동으로 서로, 차례차례 출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운하경제에 의지하여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물자를 조달해줄 수 있었다. 마침내 6년동안 초나라는 피로해지고, 5번을 싸워서 모두 이기고, 일거에 영도(郢都)를 함락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춘추시대에 접어들면서 오나라는 쇠퇴기에 빠진다. 초나라의 압박을 받는다. 감강의 갈래와 비수의 갈래는 모두 초나라에 밀려서 영진산지 및 태호유역까지 줄어든다. 그리고 산서의 우(虞)는 진(晋)의 계략에 당한다. "가도멸우(假道滅虞)"

 

오나라의 부흥은 계찰(季札)부터 시작한다. 그는 중원으로 북상하여, 겉으로는 제후들과 시를 이야기하고 천하의 세력을 얘기하는 것같지만, 실은 옛날 오태백의 방식을 그대로 본 떠서 북방 각국의 지지를 받아,공동으로 초나라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려 한 것이다.

 

옛날 오태백은 상을 공격하여 무너뜨렸고, 지금은 계자(季子)가 나타나니 오나라를 모두 주목하게 된다. 천하의 지사들이 속속 오나라로 왔다. 신공무신(申公巫臣)은 진(晋)나라에서 왔고, 손무(孫武)는 제(齊)나라에서 왔으며 오자서(伍子胥)는 초(楚)나라에서 왔다....

 

그러므로 오나라 금수강산에 다시 한번 일대웅주가 굴기한 것ㅅ이다. 합려가 초나라를 무너뜨리는데 두 가지 보물이 있었다. 이전에는 계자의 외교가 있었고, 이번에는 손자의 용병이 있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시(詩)로서 세상을 대한 것이다. 계자는 왕자지시(王者之詩)로 세상을 대했고, 손자는 병가지시(兵家之詩)로 세상을 대했다. 강남은 몸에 문신을 하는 곳이다. 입국은 원래 '예(禮)"로서 한 것이 아니라, '시'로서 한 것이다.

 

예상을 벗어나는 것은 병법이고, 시법(詩法)이다. 다만 절대로 예법(禮法)은 아니다. 무릇 병력의 형세는 물과 같다. 운하를 써서 병력을 움직이는 이것은 산하의 시이다. 천지의 미이다. 강남에서 시작하여 장강과 회하에 깊이 들어가서 중원으로 향하겠다는 뜻이다.

 

합려는 운하로 초나라를 공격한다. 그 사상의 원천은 <손자병법>이다. 오자서는 위대한 엔지니어이다. 그는 시를 이해했을 뿐아니라, 낭만적인 시의를 하나하나의 프로세스로 실천했다.

 

당연히 동파령을 뚫어서 서계를 개통시키는 것은 오나라의 군대가 돌연 강을 넘어 회하에 나타나게 할 수 있었고, 초나라땅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초나라사람들의 놀라움을 상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원각국도 눈과 입을 벌릴 뿐이었다. 그때 초나라는 강했다. 각 나라에서 감히 그들과 맞설려는 곳이 없었다. 진나라만이 강해서 초나라의 날카로운 창끝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진나라도 초나라의 땅에서 병력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감히 이를 해낸 자는 오나라이다. 오나라에는 손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손무의 일생은 이 한번의 전투이다. 그리고 한번의 전투로 초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는 손무밖에 없다. 한번의 전투로 그의 병법을 점검할 수 있다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시의(詩意)로 용병을 한 자는 세 사람밖에 없다. 첫째가 손무이고, 둘째가 조조(曹操)이며, 셋째가 모택동(毛澤東)이다. 조조는 대시인으로 <손자>에 주석을 달아놓는다. 그의 주석은 11명의 주석중에서 가장 깊이있고, 요령있는 것이다. 모택동의 횡공출세(橫空出世)의 시의는 혁명병법으로 화한다.

 

시의용병의 묘한 점은 예상을 벗어나는데 있다(出其不意). 그러나 그 기세는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손무는 일전으로 초나라를 무너뜨린 후 사라진다. 조조도 적벽지전에서 시의의 실족을 겪는다. 그러나 실족의 시작용자(始作俑者)는 손무가 아니라 합려이다.

 

합려는 초나라를 무너뜨린 후, 이어서 월을 공격한다. 이때 손자는 이미 없었다. 그러나 월나라에 거꾸로 잡아먹힌다.

 

월나라군대는 전당강을 넘어, 전당강북안의 하장산 지금의 해녕 염관에 도착한다. 그리고 백척독(百尺瀆)을 따라 북상하여, 오나라군대와 취리(槜李)에서 만난다. 죄수들을 오나라군대의 진영앞으로 내보내 자살하게 만든다. 오나라군대가 경악하고 있을 때, 재빨리 출격한다.

 

오나라군대는 궤멸하고, 합려도 죽는다. 부차가 이를 이어받아 서포(胥浦)를 판다. 태호의 물길을 준설하여 관통시키고, 서로는 태호에서 나오고, 동으로는 바다에 이르게 한다. 북의 고소성에서 항주만으로 남하할 수 있게 되니, 오나라의 수군은 바다를 건너 월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백척독과 서포의 두 운하가 있어 차례로 월을 공격할 수 있게 되니, 오나라의 병법은 자유자재롭게 되고, 월나라는 행동이 제악된다. 오래 싸우면 피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초나라같은 강국도 그러했으니, 월나라같은 작은 나라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나라는 월나라군대를 태호로 유인한다.그리하여 양군은 부초(夫椒)에서 결전을 벌인다. 지금의 태호 서쪽에 있는 동정산이다.

 

월나라는 패배한 후 웅크리고 있게 된다. 나라는 이미 무너졌고, 임금은 노비가 되었다. 오나라는 다시 북상하여 제, 진을 토벌하여 중국의 패자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수군이 장강을 엄어 양주로 들어가 한성(邗城)을 쌓는다. 그리고 한구(邗溝)를 파서, 장강,회하와 통하게 한다. 그리고 운하를 이용하여 제나라를 공격한다.

 

오나라군대는 한성이 아래에 깊은 도랑을 파서 장강의 물을 끌어들인다. 한성, 무광호, 육양호, 번량호, 박지호, 사양호를 지나 회안성북쪽의 말구(末口)로 향하는데, '신구(神溝)''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곳에사 회하로 물이 들어간다.

 

군사적으로 보면, 장성은 방어적이고, 운하는 공격적이다.

 

오나라른 운하로 천하를 공격했고, 전투물자를 계속 조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계속 승리를 거둔다. 양전(養戰)이라는 것은 단순히 약탈적인 "인량어적(因糧於敵, 적을 공격하여 적이 가진 양식을 취한다)"이 아니고, 그것은 생산과 무역이 공급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오나라는 운하를 개통함으로서 제하권(制河權)을 확대했다. 제하권은 오나라가 패자가 되는데 핵심이었다.

 

부차는 운하를 회하 일선까지 연장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왕조의 생명선이다. 그는 회하를 넘어, 장강/회하에서 황하/회하에 이르고, 애릉(艾陵), 지금의 산동성 내무에 이르게 되어, 제나라와 결전을 벌이게 된다.그것은 세력이 비슷한 상대간의 결전이다. 삼군 대 삼군, 십만 대 십만, 보병방진과 차기(車騎)의 대항이다. 결과는? 그가 이겼다. 역시 예상못한 방법으로 싸워서 이긴다. 양군이 대결할 때, 그는 한 수를 남겨둔다. 중국전투사상 예비대는 그가 발명한 것이다.

 

승리는 그의 최후일격에서 온다. 그는 정확히 보았다. 친히 예비대를 이끌고 출격한다. 그 화려한 일격으로 하늘을 가리고 해를 막았다. 오왕의 금과(金戈)는 밀물처럼 몰려든다. 그가 손을 쓴 것이다. 이 한 방은 너무 강했다. 십만의 차기는 그에 의하여 섬멸된다. 그는 섬멸전으로 전국시대의 도래를 알린다.

 

고운하의 문명체계

 

성은 이빨과 같다. 강은 혓바닥과 같다. 부드러운 것은 남아 있어도, 강한 것은 일찌감치 없어진다.

 

북방의 강함은 장성을 표지로 한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자랑이다.

 

남방의 강함은 운하를 대표로 한다. 그것은 경제적 필요에 의한 것이다.

 

장성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가? 그것은 한 왕조의 피를 모두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요절하게 된다. 운하는 어디로 흐르던 그 곳은 번영한다. 그것에는 부가 증가한다.

 

같은 통일이지만, 장성으로 둘러싼 통일과 운하로 연결시킨 통일은 서로 다르다. 전자는 경제를 넘어서는 강제적인 통일이고, 후자는 발전할 수 있는 경제공통체의 통일이다.

 

지금 장성은 일찌감치 쓰지 않는다. 단지 역사문화유산으로서 문화재와 관상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운하는 지금도 쓰고 있다.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번영을 가져다 준다.

 

경항고운하의 전체길이는 1700여킬로미터이고, 항주에서 제녕까지는 800여킬로미터인데, 지금까지 계속 배가 다닌다. 주류는 비록 장강-회사구간이지만, 오월쟁패때, 자주 제로(齊魯)일선에도 출몰했다. 전국시대 중후반에 이르러 이곳은 초나라의 영역이 되고, 자발적인 경제관련으로 경제권이 형성된다.

 

운하는 북으로 가면 경제관련도가 떨어진다. 재정수입을 둘러싸고 중앙집권이 두드러진다. 일단 조운에 새로운 길이 생기면, 예를 들어, 해운과 철로운송이 생기면 운하는 폐기되는 것이다.

 

화북대평원은 원래 운하체계가 형성될 자연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운하의 유입은 완전히 중앙집권을 위한 것이지, 경제관련이 아니다. 교통이 펼리한 점은 차마(車馬)에 있지, 운하에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운하도 화북지구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고. 예를 들어, 천진은 운하의 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그리고 운하가 지나가는 길에 여러 도시가 있다. 역시 중앙재정제도의 한 조각씩을 나눠받아서 길러진 도시들이다. 천진은 근수루대(近水樓臺)이고, 천자의 얼굴이다. 나누는 과정에서 특별히 많이 나눠먹은 곳이다.

 

이러한 번영은 중앙집권의 산물이다. 내재적인 경제관련도가 없다. 경성효과가 타나탄 것이지 자발적인 발전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일단 경성효과가 옮겨가거나 소멸하면 없어지는 것이다.

 

운하는 강남에서 현대교통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대지에서 기원하고 역사에서 왔으며, 일종의 생태체계이고, 문명체계로서 민생국계(民生國計)에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