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랑박객(新浪博客)

 

기원전 33년, 왕소군은 한원제(漢元帝)의 명으로 새외로 화친을 위해 떠난다. 남흉노의 호한야대선우(呼韓邪大單于)에게 시집을 간 것이다. 그때 왕소군의 나이 19살이었고, 한창 나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인간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녀였다. 그러나 호한야는 이미 말년에 접어들어 늙은이였고, 문학예술작품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풍채는 없었다. 2년후, 즉 기원전31년, 호한야는 처자식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 흉노의 법도에 따라, 왕소군은 다시 호한야의 장남이자 새로 대선우에 즉위한 복주루(復株累)에게 시집을 간다. 두 사람의 감정은 괜찮은 편이었고, 딸을 둘 낳는다. 다만 왕소군의 비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1년후, 두번째 남편도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다시 새로운 선우에게 시집가도록 명령을 받는다. 북주루의 장남이자, 호한야의 손자였다. 왕소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철저히 붕괴되어, 결국 음독자살을 선택한다. 일대가인이 이렇게 목숨을 잃었고, 이국타향에서 죽어간다. 음산(陰山)의 자락, 사막 깊은 곳에 멀리 고향땅을 내려다보는 무덤만 남기고서. 

 

시집을 가는 것은 도박과 같다.

 

유럽인들은 비관적이다. 결혼을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간에 손을 잡고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숨을 헐떡이며 어느 곳으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만나면 만나는대로 사는 것이다. 혼인은 그저 함께 살면서 뭐가뭔지 모르면서 지내는 것이다.

 

혼인은 확실히 도박적인 성격이 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왕소군이 이 길을 선택한다. 황상은 만나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다. 황상을 만나길 기다리는 것은 만성자살에 다름이 없다. 어쨌든 바꾸어 보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결국 그 날이 온다.

 

기원전33년, 남흉노의 호한야대선우가 세번째로 황제를 만나러 온다. 그가 가져온 정치적 조건은 한황제의 딸을 취하여 사위가 되겠다는 것이다. 얘기하자면 웃기는 일이다. 호한야는 이때 마흔가량이다. 한원제와 나이가 비슷하다. 원래 쌍방은 '형제로 약속'을 하였고, 서로 대등하게 마주하는 사이이다. 일단 혼인관계를 맺고 나면 같은 배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흉노는 원래 한나라 최대의 라이벌이다. 기원전201년, 한나라가 개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은 32만대군을 이끌고 흉노를 토벌하러 간다. 결과,40만의 흉노군에게 백등산(지금의 산서성 대동 동남쪽 일대)에 포위되어, 꼬박 칠일 밤낮을 옴짝달싹 못하고 지낸다. 겨우 장안으로 살아돌아온 후, 유방은 흉노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유방은 온갖 방법을 써서 흉노와 화해하고자 한다. 금 은 비단을 보내고, 차와 미녀를 보내준다. 한무제 시대에 이르러, 팔다리도 굵어지고, 군사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후한야시대의 남흉노는 이미 예전에 대막을 횡횡하던 무적의 대흉노가 아니었다. 그들은 한나라에 온화하고 친근했다. 이번에 그는 기분이 좋아서 장안으로 온다. '화친대계'를 실시하여, 한나라황실의 공주를 취하여, 막 죽은 부인을 대신하여 새로 부인으로 맞이하고자 한 것이다.

 

한원제는 시원하게 이 정략결혼에 동의한다. 여자 몇 명을 보내주는게 대수인가? 한나라에는 없는 게 없다. 화친은 타협의 산물이다. 이제 예전처럼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없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로 '상친(賞親)하면 되는 것이다. 성지를 내려 궁중에서 5명의 후보를 물색하여 대선우에게 결정하게 해주었다. '액정(掖庭)'도 당연히 그 범위내에 들어갔다. 왕소군은 그 소식을 듣고, 바로 호응한다. 시집가겠다. 설사 천애해각(天涯海角)이라고 하더라도 개에게 시집가서 개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살아있는 시체로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약한 여자가 인생이라는 도박판에서 도박을 한번 건 것이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때 그녀는 그녀 자신의 것이었고 모든 판돈을 여기에 건 셈이다.

 

후인들은 왕소군이 대국을 중시 여겼 멀리 화친을 위해 시집을 갔다고 추앙하고, 또 무슨 민족대의, 충군애국의 정신이라고 한다. 기실, 먼 곳으로 시집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하하책(下下策)'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단 말인가? 하나의 길이라도 있었다면 왜 멀리 중원을 떠나 '오랑캐으 땅'으로 가서 야만인의 품 속에 안기려 했을 것인가? 어쨌든 기회는 왔고, 스스로를 처리한 것이다. 그저 그렇게 간단한 것이다.

 

왕안석은 두 수의 <명비곡(明妃曲)>을 썼다. 그중 한 구절은 이렇다: "한은자천호자심(漢恩自淺胡自深), 인생낙재상지심(人生樂在相知心)"(한나라의 은혜는 얕고 오랑캐의 은혜는 깊다. 인생의 즐거움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데 있다). 원인과 결과는 왕소군이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설명해준다. 그리고 대의늠름하고 비분강개한 구호는 한켠에 밀어버리고, 먼저 '자구(自救)'행동이다. 그녀는 사람처럼 살고싶었을 뿐이다.

 

이제 한원제가 고민할 차례이다. 그는 어찌되었건 자신이 곁에 이런 경국경성의 절세미인이 있는줄 몰랐다. <후한서.남흉노열전>에는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왕소군의) 풍성한 용모와 아름다운 장식은 한나라궁중을 밝게 만들었다, 그림자를 돌아보며 배회하니, 좌우가 깜짝 놀란다. 황제가 보고는 대경실색하고, 그녀를 남겨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신의를 어길 수 없어서, 결국 흉노에게 주게 된다."

 

아름답지만 한원제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것이다. 곧 흉노의 여인이 될 사람이었다. 한원제는 벙어리가 연밥을 먹은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호한야는 두 눈이 확 뜨일 정도로 놀란다. 원래 이 흉노의 우두머리는 아름다운 중원여인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기실 그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주 제대로된 물건을 건진 것이다.

 

여러가지 '미지(未知)'가 연이어 나타난다; 왕소군은 앞날이 어찌될지 몰랐고, 선우는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고, 황제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몰랐다...대전에서, 사람들은 흥분하고 감정은 괴이해진다. '화친'이라는 대사는 이렇게 결정되고 말았다.

 

한원제는 아주 아쉬워 하면서 그녀를 흉노에 보낸다. 조정의 하사품은 아주 풍성했다: 화친을 기념하여, 먼저 '건소(建昭)'라는 연호를 '경녕(竟寧)'으로 바꾼다. 평화와 안녕을 희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왕소군을 "영호알지(寧胡閼氏)'에 봉한다.  이 칭호는 명백히 차별적인 뜻을 담고 있다. 번역하자면,' 오랑캐를 다독거리기 위하여, 흉노의 정실부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첩이 아니라, 정실부인이 된 것이다. 호한야는 봉호가 어찌되었건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그는 웃으면서 받아들인다. 그에 있어서, 그저 이 꽃처럼 옥처럼 예쁜 한족여자를 신부로 맞이하면 충분한 것이다.

 

조정은 다시 금백(錦帛, 비단) 28000필, 서(絮,솜) 16000근, 그리고 금은과 미옥을 무수히 하사한다. 한원제는 아주 다정했다. 그는 친히 배웅을 했고, 장안에서 십여리 떨어진 곳까지 나온다. 멀리 왕소군의 가마가 떠나는 것을 보고 낙타무리가 석양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ㅂ라본다. 42살의 황제는 처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누가 알았으랴. 그의 생명의 최후가 멀지 않았ㅇ르 줄은. 4개월후, 한원제는 사망하고, 한성제가 한나라궁중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낙엽이 장안을 뒤덮는다. 왕소군은 석양 속에서 멀리 한번 뒤돌아보고 자신의 낯선 남편을 따라 망망한 대막으로 떠난다. 개략 1년을 걸어 흉노 시집에 도착한다. 초여름이라 곳곳에 물풀이 자라고 말들과 양들이 뛰어다녔다.흉노인들은 열렬히 이 새로운 '알지'를 환영한다. 스무살의 왕소군과 마흔살의 호햔야는 말을 나란히 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신하와 백성들을 내려다 본다. 이 자귀산 언덕의 예쁜 아가씨는 마침내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초원에서 찾은 것같았다.

 

그럴까?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녀를 기다린 것은 기복이 심한 감정의 재난이었다.

 

첫째, 사향(思鄕). 고향생각.

 

왕소군은 원래 남군 자귀 출신이다. 그곳은 풍요로운 곳이다. 유채꽃이 피면 온 들판이 금빛이고, 그늘은 온 땅에 펼쳐져 있고 물기가 있다. 오렌지와 귤이 있고, 물고기와 게가 있다. 형초(荊楚)의 풍물은 자나깨나 그녀에게 그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흉노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들판은 바람이 세고, 풀은 여기 저기 나 있다. 비록 하늘은 높고 땅은 넓지만, 쌀밥 한번 먹기도 힘이 들 정도이다. 향기가 좋은 명전차는 생각할 수도 없다. 고향은 멀리 있고, 왕소군은 밤낮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아쉽게도 꿈에서나 가능하지 갈 수는 없다. 오로지 가슴이 찢어지게 그리울 뿐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왕소군의 형제들은 그녀 덕분에 '화친의 공'으로 한나라 황실에서 '후작(侯爵)'에 봉해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형제는 신분이 바뀌어 친선대사가 되어 여러번 흉노에게 사신으로 가서, 멀리 시집간 누나와 만난다. 기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왕소군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욱 커져갔다.

 

둘째, 상부(喪夫). 남편이 죽다.

 

왕소군은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 호한야선우는 '그저 활을 쏠 줄 아는' 무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협골유장(俠骨柔腸)'이라 할 수 있다. 늙은 남편에 젊은 부인은 서로 사랑했다. 이것은 좋은 인연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나가 염라대왕이 남편을 데려간다. 금방 그녀는 과부가 된다. 왕소군의 곁에는 막 낳은 아들 하나가 있었다. 이도지아사(伊圖智師). 고아과부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셋째, 재가(再嫁). 다시 시집가다.

 

왕소군이 끔에도 그리던 것은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호한야가 죽었으니, 냉혹한 정치게임도 끝나야 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을 가디렸다. 외롭게 된 어린 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제는 은혜를 베풀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기만 바랄 뿐이다.

 

이치대로라면, 그런 요구가 지나칠 것도 없다. 왕소군의 바람은 그러했지만, 운명은 그녀를 배신한다. 호한야의 장례를 치르고 남흉노는 새로운 권력개편을 맞이한다. 한성제는 왕소군의 요청을 냉담하게 거절한다.

 

이때, 새로운 사건이 생긴다. 호한야의 후계자 즉 호한야와 전처사이에 난 아들인 조도막고(雕陶莫皐)가 즉위하니 바로 '복주루선우'이다. 새로운 선우는 왕소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유목민족의 풍속은 한족의 눈에는 야만적으로 보인다. <한서.흉노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홍노는 부자가 같은 빠오에서 잔다. 부친이 죽으면, 계모를 처로 삼는다. 형제가 죽으면 그의 처를 모조리 처로 삼는다. 관대지절(冠帶之節)도 없고, 궐정지례(闕庭之禮)도 없다." 즉, 전처소생의 아들은 후처를 자신의 처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배분은 차이가 나지만, 젊었던 복주루는 왕소군과 나이가 같았다. 영웅은 미인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 젊은이는 일찌감치 꽃처럼 예쁜 왕소군을 취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런 뜻을 당당하게 내놓았다.

 

왕소군은 처음에는 놀라고 이어서 부끄러움에 분노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후처, 아들이 혼인을 하다니, 미쳤단 말인가. 중원문화에 익숙한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렇게 말도 안되는 '난륜'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물며 책도 잃고 이치도 앓았던 왕소군이 아닌가. 그녀는 깜짝 놀라서 '걸귀(乞歸0'의 주장을 올리지만, 냉담하게 거절당한다.

 

<후한서. 남흉노열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한성제는 오랑캐의 풍속에 따르라고 칙령을 내렸다." '오랑캐의 풍속에 따르라(從胡俗)'는 짧은 세 글자는 왕소군을 절망시킨다. 원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성지가 있고, 오랑캐 풍속이 있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의 육신은 한나라황실의 것이다. 황제의 손바닥 위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무조건복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받아들이고 싶어도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기 싫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왕소군은 실혼낙백(失魂落魄)하여 복주루가 만든 신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넷째, 살자(殺子). 아들을 죽임

 

이도지아사는 왕소군과 호한야 사이의 친골육이다. 이 어린아이는 복주루에게 눈엣가시가 된다. 이도지아사의 혈통은 잠재적인 위협이었다. 그는 복주루와 동부이모의 '형제'일 뿐아니라, 새로운 부인이 데려온 '아들'이기도 하다. 형제에서 부자간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고 나면 선우의 지위를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복주루 자신이 마음에 둔 후계자를 위하여 그는 후환을 영원히 없애고자 한다. 그리하여 먼저 손을 써서 뿌리를 제거해 버린다.

 

<남흉노열전>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처음에, 선우의 동생 우곡려왕 이도지아사이 순서대로 좌현왕이 되어야 했다. 좌현왕은 바로 선우의 후계자이다. 선우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시퍼서 마침내 이도지를 살해한다." 한 명을 죽임으로써 모든 게 끝났다. 친골육이 무슨 관계이냐. 정치라는 것은 그 자신의 게임규칙이 있다  세속의 도덕으로 논할 바가 아니다.

 

권모술수를 쓰는 것은 왕소군이 잘 하는 분야가 아니다. 그녀는 그저 고통스러운 구경꾼이다. 눈을 멀거니 뜨고 흉노왕정의 골육상잔을 지켜보아야 했다. 한편은 나이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이고, 다른 한편은 함께 잠을 자는 남편이다. 결국 이도지아사는 북주루의 손에 죽는다. 

 

인류사회는 자연계의 생존법칙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매번 왕위교체가 있을 때마다 사자무리들은 한바탕 피비린내나는 살육을 벌인다. 새로운 사자왕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모든 암사자와의 교배권을 독점한다. 날뛰던 어린 사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것은 모두 전임자의 '씨앗'이다. 모조리 없애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핏줄로 모조리 교체한다.

 

왕소군은 고통스럽게 비파를 타며, 두려움에 떨면서 골육상잔의 동물성을 되돌아본다..

 

다섯째, 과거(寡居). 과부로 지내다.

 

어쨌든 이미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복주루는 바로 왕소군의 '두번째 남편'이다. 그후 11년간 왕소군의 인생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그녀는 다시 두 딸을 낳는다. 차가운 방안에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괜찮았다. 전쟁도 없고, 살육과도 떨어져 있었다. 서한과 남흉노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서로 건드리지 않았다. 왕소군이 '알지'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어, 쌍방의 태평한 겉모습은 근 반세기동안 지속된다. 왕망이 황위를 찬탈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 사람들이 왕소군과 서한명장 곽거병을 나란히 언급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변방은 조용했고 닫혀 있었다. 소와 말은 들판에 가득했다. 세 세대가 지나도록 개가 짖어 변방에서 오랑캐가 쳐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백성들은 전쟁을 잊었다." 이런 국면은 왕소군이 일생동안 해낸 업적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녀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하다.

 

유감스럽게도, 후세의 추앙도 그녀의 불행한 혼인을 도와주지 못한다. 기원전20년, 복주루선우가 다시 죽는다. 이번에는 아무도 왕소군에게 개가하라고 강제하지 않는다. 조정은 마치 그녀를 잊어버린 것같았다. 장안에서 더 이상 새로운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왕소군은 다시 1년간 과부로 지낸다. 그리고는 죽는다. 그 해에 그녀는 나이 겨우 33살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로 여러 재난을 몰고 온 기녀자이다. 일찌기 대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했고, 그녀는 망망한 초원에 자신의 뿌리를 내린다. 마치 가뭄을 견디고 자라는 들풀처럼 그녀는 완강하게 살아남았다. 그녀는 계속하여 개가를 했고, 자녀를 낳아 기른다. 12년간, 변방의 세월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비참했고, 처량했다.

 

소군묘는 조용히 황하의 가, 청산의 아래에 놓여 있다. 차가운 바람, 차가운 달 들꽃과 시든 풀. 모든 것은 과거가 되었다. 아무도 그녀를 다시는 괴롭히지 않는다. 자귀의 유채꽃은 다시 피고, 온 들판이 황금색이다. 안타깝께도 명모호치, 양류세요의 미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