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겟머리송사’의 효과에 대하여 자고이래로 정인군자들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영웅도 미인이라는 관문은 넘기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英雄難過美人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애교나 눈물앞에 무너지지 않는 남자는 드물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남자의 통병(通病)일 것이다. 황제도 남자이고, 황제가 총애하는 후궁의 말이라면 그 효과는 황자쟁위 과정에서도 엄청날 것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로는 진(秦)의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 원래 이름은 異人)가 그 첫번째이다. 그의 부친은 안국군(安國君, 나중의 孝文王)이고 모친은 하희(夏姬)인데, 모친이 안국군의 총애를 받지 못하여, 스무명이 넘는 형제들 중에서 그는 부친의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자랐다. 안국군은 소양왕(昭襄王)의 차남인데, 기원전267년 안국군의 형인 태자가 사망하면서, 기원전265년 태자에 오르고, 화양부인(華陽夫人)은 그의 정부인인데 아들이 없었다. 당시 이인은 진나라의 최대 숙적인 조(趙)나라에 인질로 보내어져,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진나라와 조나라간에 전쟁만 벌어지면 언제든지 목이 베일 위험에 처해 있었다.

 

다행히 그는 길인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그를 기화가거(奇貨可居)로 본 상인 여불위(呂不韋)이다. 여불위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 다음 풍부한 자금을 활용하여 태자의 화양부인의 동생 양천군과 큰언니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동생과 큰언니를 통하여 화양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재는 네가 젊고 예쁘니 안국군의 총애를 받고 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다. 나중에 늙으면 총애를 잃을 것이다. 그때는 누구를 의지할 생각이냐. 남은 여생을 생각하면, 효문왕의 아들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아들로 삼고, 그 아들을 태자에 앉혀라. 그러면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 왕태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양부인은 언니의 말을 듣고 과연 그렇겠다고 여기고, 그런 말을 해준 언니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아들로 삼아야 한단 말인가? 여불위는 언니에게 이미 그 대답까지 준비해 주었다: “태자의 아들 중에서 이인이 가장 효성스럽다. 그는 비록 멀리 한단에 인질로 잡혀가 있지만 매일 세끼 식사전에는 반드시 서쪽을 향하여 절을 하여 태자와 화양부인의 건강과 장수를 빌고 있다. 그가 가장 적합하다.” 그리하여 화양부인은 이인을 아들로 삼는데 동의한다.

 

여불위는 황급히 조나라로 돌아가서, 이인을 지키고 있던 조나라병사들을 돈으로 매수한 후 이인을 데리고 진나라로 돌아온다. 너무 급박한 바람에 부인 조희(趙姬)와 아들 영정(嬴政, 나중의 진시황)은 미처 데려가도 못한다. 진나라로 돌아가서 화양부인을 만나기 전에 그녀에게 호감을 주기 위하여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 화양부인이 초나라출신이므로, 이인은 초나라 옷을 입고, 초나라 방언을 사용하여 화양부인에게 절을 한다. 이렇게까지 하니 화양부인이 이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효성스러운 아들이라면 앞으로 남은 여생을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인의 이름을 자초로 바꾸게 하고 아들로 삼은 후, 태자에게 얘기하여 자초를 후계자로 삼게 한다. 이렇게 하여 자초는 궁안에 거주할 수 있게 된다. 이인부부는 그 후에도 매일 아침 화양부인에게 문안인사를 하였다. 이렇게 3년이 지난 후, 소양왕이 병사하고 안국군이 즉위하니 바로 효문왕이다. 그러나, 그는 즉위 3일만에 사망하고, 자초가 즉위한다. 그가 바로 장양왕이다. 장양왕은 화양부인을 태후로 모시고, 여불위를 상국으로 삼는다. 그리고 사람을 조나라로 보내어 조희와 영정을 데려오게 한다. 그의 아들이 육국을 병합여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건안말기, 조비와 조식이 위세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중에, 조비는 자신의 재능이 조식만 못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조식과의 다툼에서 이기기 위하여, 그는 적모와 서모들에게 잘보이려 애썼다. 생모인 변부인(卞夫人)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조가 총애하는 후궁들인 왕씨, 진씨등은 나이가 자신과 비슷함에도 자식의 모친에 대한 예로 극진히 대했다. 그리하여, 궁내에서 후비로부터 궁녀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관중랑장(조비의 관직)은 효성이 지극하고 덕이 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사서에는 “왕씨는 태조(조조)의 총애를 받았는데, 문제(조비)가 후계자가 되는데 힘을 보탰다”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지.진사왕식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조식은 일처리를 마음내키는대로 하고, 언행을 가리지 않았으며, 술을 마시고 절제하지 못하였다. 조비는 권모술수를 잘 써서 속마음을 감추고 자신을 잘 위장하여, 궁인들과 좌우가 모두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어서 후계자로 정해질 수 있었다”.

 

수양제 양광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수문제 양견과 독고황후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형 양용을 태자에서 몰아내고 태자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여 국가에 공을 세웠다는 것 이외에 모략에 뛰어난 양광은 여색을 밝히는 것을 싫어한 독고황후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스스로 여색을 멀리하는 것처럼 잘 위장하였기 때문이다. 독고황후가 602년에 사망한 후, 양견은 선화부인 진씨와 용화부인 채씨를 총애한다. 그중 인수궁변의 주인공인 선화부인은 만만찮은 내력을 지닌 여인이다. 그녀는 원래 진선제(陳宣帝)의 딸인 영원공주(寧遠公主)로, 동부이모의 오빠가 진나라의 마지막황제인 진후주(陳後主)이다. 589년 진나라가 멸망하자, 수나라궁중으로 들어와 3품의 빈(嬪)에 봉해진다. 그녀는 독고황후가 죽은 후 비로소 수문제의 총애를 받는데, 양광은 선화부인 진씨에게 순금으로 금사(金蛇), 금낙타(金駱駝)등을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양광과 선화부인의 관계는 당고종 이치와 무측천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선화부인은 양견에게 양광을 좋게 얘기하고, 양광은 이를 통하여 자신의 태자지위를 공고히 하려 하였다. 그런데, 이후의 전개방향은 엉뚱했다. 양광이 수문제의 병문안을 가는 길에 만난 선화부인을 간음하려 하나 실패하자, 선화부인이 양견에게 이를 고자질하고, 양견은 양광을 태자에서 폐위시키려 준비한다. 다급해진 양광은 먼저 손을 써서 부친을 죽여버리고 스스로 황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날 밤 양광은 작은 금합을 선화부인에게 보낸다. 선화부인은 안에 독약이 들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열지 않으려 한다. 그러자 양광이 보낸 자들이 핍박하여 어쩔 수 없이 열어 본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독약이 아니라 동심결(同心結, 풀리지 않도록 맺은 매듭으로 애정을 표시함)이었다. 주변의 궁녀들은 최소한 죽지는 않는다고 안심하고 있는데 선화부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양광은 선화부인을 증(蒸)한다. ‘증’은 윗사람과 간음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