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가목비원(佳木非元)


신의(神醫) 화타(華佗)는 조조의 손에 죽었다. <삼국연의>에는 화타가 수술용도끼로 조조의 두개골을 여는 수술을 해야 두풍병(頭風病)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는데, 조조는 화타가 그 기회를 틈타 자신을 죽일 것을 의심하여 화타를 하옥시키고 결국 죽였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이 그렇지는 않다. <삼국지.화타전>에는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조조의 한 친척이 병이 들었는데, 오랫동안 치료했지만 나아지지가 않았다.그래서 화타를 불러서 치료를 받는다. 화타는 말하기를 이 병은 거의 치유시키기가 어렵다 다만 장기적으로 치료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그가 집을 나선지 시간이 너무 오래 되었고, 또한 처로부터 서신을 받다보니,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간 후에는 처가 병들었다는 것을 핑계로 여러번 기한을 연기하며 허도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조는 여러번 서신을 보내어 그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했고, 군현의 장관들에게도 명령을 내려 그를 재촉해 길을 떠나게 하라고 했다. 그러나 화타는 남이 시키는대로 오가야한다는게 싫어서 계속 미루며 길을 떠나지 않았다. 조조는 대노해서 사람을 시켜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라고 한다. 만일 화타의 처가 정말 병들었으면, 그에게 수두 40곡(斛)을 하사하며, 휴가기간을 늘여주고, 만일 거짓말로 속인 것이라면 체포하여 경사로 압송하라고 지시한다. 그 결과 화타는 체포되어 하옥된다. 심문을 하자 화타는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순욱은 그를 위하여 조조에게 청한다: "화타의 의술은 시로 고명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에 관련되는 일이니, 그를 용서해서 사면해 주십시오." 그러나 조조는 말을 듣지 않고, 화타를 고문하여 결국 죽게 만든다. 화타는 죽기 전에 책원고 하나를 옥리(獄吏)에게 건넨다. 옥리는 그의 사건에 연좌될까 두려워 감히 받지 못한다. 화타는 그러자 책원고를 불살라 버린다.


나중에 조조는 솔직한 심정을 얘기한다. 화타를 죽인 것은, "화타가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면서 이 소인은 나에게 병의 뿌리를 남겨두었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더라도 그는 나의 병을 뿌리까지 치료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후 조조가 사랑하는 아들 창서(倉舒)가 병이 든다. 그러자 그는 탄식하며 말한다: "화타를 죽이지 말 것을 후회된다. 내 아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구나!"


기실, 조조는 화타를 오해했다. 두풍은 치료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뿌리를 뽑을 수는 없다.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인 결과는 자신이 아끼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뿐아니라, 많은 환자들도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삼국연의>에서는 두개골을 여는 수술이라는 허구의 에피소드를 적었지만, 조조에게 화타를 죽일 충분한 구실을 준 것일 뿐이다. 일대신의는 이렇게 불가일세의 간웅 조조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원통하고, 안타깝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런 것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화타의 의술은 후대에 전해지지 못했는가? 이 점에 대하여 <화타전>은 명확한 대답을 해주고 있다. 그의 의술은 후계자를 두었을 뿐아니라, 두 명이 유명한 애제자까지 남겼다. 한 명은 양주(揚州, 廣陵) 사람인 오보(吳普)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서주(徐州, 彭城) 사람인 번아(樊阿)이다. 오보는 기본적으로 화타의 의술을 전면적으로 계승했고, 많은 사람을 살린다. 그리고 오보는 세심하게 사부가 창안한 오금희(五禽戱)를 전승하여, 운동신체단련으로 외과수술과 약물치료를 보조하게 했다. 동시에 그는 오금희를 민간에 널리 보급하여 건강장수의 운동법이 되니 그의 공로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필자의 생각에 오보 선생은 삼국시대 온국민이 운동을 하게 만드는 최고의 보급자였다. 필자는 TV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데, 대군사 사마의도 오금희의 애호자였다. 일이 있든 없든 정원에서 오금희를 연마하곤 했다. 선풍도골의 분위기가 있다. 오보는 건강하게 살아서 90여세때까지도 귀와 눈이 어둡지 않고, 이빨이 견고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오보는 신의의 전인이면서 장수의 스타이다. 민간에서 많이 받들어질 만하다.


번아는 오보와 비교하면, 약간은 외길로 빠진 느낌이다. 그는 화타의 의술을 전승하는 동시에, 특별히 침구술에 뛰어났다. 일반적인 의원은 모두 뒷등과 앞가슴에는 함부로 침을 놓지 않았고 침을 놓더라도 사푼의 깊이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번아는 등뒤에서 침을 놓을 때 1,2촌까지 찔렀고, 앞가슴의 거궐혈에 침을 놓을 때는 깊이가 5,6촌에 이르렀다. 그리고 치료받은 사람들은 기적저으로 완치되었다. 번아는 차음양생(茶飮養生)의 도를 중시했다. 그는 스승 화타에게 평소에 복용하면 양생되는 처방을 부탁했고, 화타는 그에게 칠엽청점산(漆葉靑黏散)을 건네준다. 이 처방은 칠엽설 1승, 청점설 14냥의 비율로 오랫동안 복용하면 체내의 삼충(三蟲)을 제거하고, 오장에 좋으며 신체가 강건해지며, 머리카락이 검은 색을 유지한다. 번아는 자신부터 시작하여 계속 복용했고, 백여살까지 산다. 이렇게 차음양생의 기적을 이룬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신의 화타를 알고 있지만, 그의 두 제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오보와 번아는 삼국시대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의 저명한 승계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