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비객방(痞客邦)





명나라의 국호에 대하여 비교적 일찍 주목한 것은 종교관련자이다. 오함(吳晗)이 1941년에 발표한 <명교와 대명제국>일 것이다. 오함은 '대명'의 국호는 한씨부자의 '명왕(明王)' 즉 <대소명왕출세경(大小明王出世經)>에서 유래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명교는 당나라때 수입되어, 남송때 흥성했다고 지적했다. 비밀종교의 전파이므로 수시로 통치계급의 박해를 받았고, 쉽게 다른 종교와 결합했다고 한다. 그래서 명교에는 불교도 섞여 들어갔고, 미륵전설을 숭상하는 백련사(白蓮社)와도 결합되었다. 백련사가 금지당한 후, 다시 '미륵강생(彌勒降生), 명왕출세(明王出世)'의 전설이 있었다. 그리고 한산동, 한림아 부자는 '명왕 ''소명왕'으로 자처했다. 주원장은 소명왕의 기업을 승계하여 군웅을 평정했다. 그래서 각부를 통합하기 위하여 '대명'을 국호로 삼은 것이다. 또한, '명'에는 광명의 의미도 잇고, 글자를 해체하면 해와 달이 되니, 유가의 제사와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오행설을 다르더라도, 북방은 수(水)에 속하고, 남방은 화(火)에 속한다. 이명제암(以明制暗), 밝음으로 어둠을 제압하고, 이화극수(以火剋水), 불로써 물을 제압한다. 그리고 유가경전과도 배치되지 않으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오함은 명교의 전파와 발전과 결부시켜, 명교와 백련사가 합류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저 두 종교의 남아 있는 비슷한 교의를 가지고 추론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간략히 설명한다; "미륵화상은 백관연의(白冠練衣)인데, 명교도의 백의백관과 동일하다. 그리고 향을 사르고, 재상(災祥)을 얘기하고, 소경도 있고, 교도를 모은다. 이것은 후기의 명교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오행지설을 논술하면서, '이화극수'라고 했는데 그것도 오행상생상극과 맞지 않는다. 다만 명교와 대명국호에 관한 설은 1961년 김용이 무협소설 <의천도룡기>에 써넣어서 주원장이 비록 이심을 품기는 했지만, 궤계를 사용하여 황제위에 올랐고, 그를 도와 천하를 얻게 해준 사람들은 모두 명교의 사람들이어서, 국호는 부득이 '명'자를 남겨야 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설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양눌(楊訥)이 1983년에 발표한 <원대백련교>에서는 '오함의 추리는 상당히 엉성하고 엄밀하지 못하다"고 했다. '백련사'와 '백련교'는 같지 않다고 말하며, 현존하는 사료를 보면, 백련교는 명교와 섞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방지, 석각에서도 명교는 원나라때 합법적인 종교였다. 명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백련교와 함께 금지종교에 들어가게 된다. <원사.형법지>에는 "흰옷을 입고 친구를 사귄다는 명목으로 무리를 모아 결사를 조직하는 것은 금지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집행되지는 않은 것같다. 오함은 먼저 대명이 국호가 명교에서 왔다는 결론을 내리고, '명왕출세'를 증거로 들었다. 백련교를 신봉하는 한씨부자를 명교도로 견강부회한 것이다. 양눌은 중국종교사에 명왕이 적지 않음을 지적한다. 한산동의 소위 명왕은 <대아미타불경>의 '아미타불'이다. 즉 제불광명지왕(諸佛光明之王)이다. 그리고 주원장이 젊었을 때 화상을 지낸 적이 있다고 하므로 불경에서 국호를 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그래서 <대명률>에서 백련사, 명존교등의 좌도를 금지했지만, 아미타정토신앙은 금지하지 않았다.


양눌은 백련교가 명교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지만, 대명의 국호유래는 종교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오함이 말한 '명왕출세'에는 동의하지만, 출전은 <대아미타불경>이지 명교의 <대소명왕출세경>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그저 추측일 뿐이다. 사료의 근거가 부족하고, 유생들이 주원장이 국호를 불경에서 따온다면 받아들었을지는 음미할만한 문제이다.


어떤 학자는 다시 다른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일본학자인 와다 하쿠시(和田淸)는 남방이 '화'에 속한다는 오행설을 내놓았고, 주원장의 성씨와 결합시켜 염제(炎帝)가 주명(朱明)을 보좌한다는 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진학림(陳學霖)은 <명조국호의 연기 및 화덕문제>에서 화덕은 단지 주원장이 반원때 취했던 정치적 책략이었을 뿐이고, 명나라가 건립된 후에는 특별히 덕운을 따지지 않았다고 한다. 성화23년 진사 나기(羅)는 명나라가 '토(土)'의 덕에 속한다고 하였고, 만력연간의 장양몽이 편찬한 <오덕지운고>에서는 "우리 조의 명은 어떤 사람은 화덕을 숭상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토덕을 숭상한다고 하여 설이 분분하고 정해지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민간 유생의 개인적인 견해나 이견일 뿐이다. 이를 보면 명나라는 오덕종시의 순환이론을 가지고 정권정당성의 상징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두홍도(杜洪濤)는 <명대의 국호출전과 정통의미>에서 또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명나라의 국호는 명교, 백련교와는 모두 관련이 없다고 본다. 주원장이 장사성을 토벌할 때의 <평위주방>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불행한 어리석은 백성들이 요술을 잘못 믿고, 그 말이 황당함을 깨닫지 못하고, 미륵이 진짜 있다고 믿어 그가 세상을 통히하여 고통해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다." 주원장집단은 일찌감치 유기, 송렴등 유학자들의 인도하에 개국이전에 이미 백련교를 부정했다. 그러니 백련교 경전에서 국호를 따왔을 가능성은 없다. 두홍도는 국호가 왕조정통성의 상징이므로 당연히 유교경전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말한다. 검색을 한 후에 두 곳에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시경>의 <대명>편이고, 둘째는 <역경. 건괘>라고 했다. 후자의 가능성이 가장 많아고 보았다. <역경.건괘>의 단사(彖辭)는 이러하다: "대재건원(大哉乾元), 만물자시(萬物資始), 내통천(乃統天), 운행우시(雲行雨施), 품물유형(品物流形), 대명종시(大明終始), 육위시성(六位時成), 시승육룡이어천(時乘六龍以御天)" 대명국호와 원나라국호가 같은 출전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하로 이으면서 원,명의 정통성의 변화를 암시한다.


그리고 또 다른 방증도 있다. 아마 주원장이 출전인 <역경>에 익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유본(兪本)은 <기사록>에서 지정20년 정월초하루에 명태조 주원장이 부문(府門)에 친서로 이렇게 써붙였다고 한다; "육룡시우천관근(六龍時遇千官覲), 오호공성상장봉(五虎功成上將封)" 그중 오호는 삼국시대 유비 휘하의 오호장을 말하고, 육룡은 바로 <역경,건괘>에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