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안유년(一眼流年)


소림파(少林派): 강유겸제(剛柔兼濟), 이강위주(以剛爲主)


소림파는 중원무술중 범위가 가장 넓고, 역사가 가장 길고, 권종(拳種)이 가장 다양한 무술문파이다. 중악 숭산(嵩山)의 소림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북송 <경덕전등록>등 책의 기록에 따르면, 남북조 시기에 후위 효문제 대화연간(477-499), 달마대사가 양나라에서 북으로 올라와 숭산 소림사에서 면벽한다. 9년만에 공을 이루고, <역근(易筋)>, <세수(洗髓)> 두 경을 남긴다. 이렇게 소림무술이 창립되었다. 이 내용은 여러 전적에 나오는데, 역사적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현대학자들은 이것은 그저 전설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역사적으로 달마 이전에, 북조사원의 연무(練武) 기풍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북위 효문제 태화19년(495년) 숭산 소림사가 건설되고, 최초로 온 서역의 고승 발타(跋陀, 혹은 佛陀)가 만들었다. 나중에 달마는 이 절로 온다. 달마는 비록 선종(禪宗)을 창립했지만, 소림무술의 창시자는 아니다. 사실상, 소림무술은 장기간 승려들이 무예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소림무술이 크게 떨치게 된 것은 수,당시기이다. 수나라말기, 천하가 대란에 빠지고, 진왕 이세민과 정제 왕세충이 전투를 벌였다. 소림무승은 요청을 받고 나서서 왕인칙(王仁則)을 생포하고, 왕세충이 투항하도록 압박한다. 이것이 저명한 "십삼곤승구당왕(十三棍僧救唐王)"의 이야기이다. 영화 <소람사>의 역사원형이기도 하다. 이세민이 즉위한 후, 13명의 승려에게 대거 하사품을 내리고, 소림사는 흥성해진다. 소림무술이 이때부터 번영하기 시작한다.


송에서 원에 이르기까지, 소림무술은 비교적 크게 발전한다. 원나라때 복유선사(福裕禪師)는 소림의 단타(短打)를 모아서, 수림무술의 특징을 점점 두드러지게 만든다. 명나라때는 소림이 '이박명천하(以搏名天下)'의 위명을 얻게 한다. 명나라 가정연간에 소림사는 일찌기 승병을 조직하여 강남에서 왜구와 싸운다. 천계5년(1625년) '소림관무비(少林觀武碑)"가 세워져 천하무림의 종주가 된다. 명나라 후기, 소림무술은 점점 곤법에서 권법으로 주종목이 바뀐다. 그리도 여러 민간의 권법을 흡수하여 천하무술을 집대성한다. 그리하여 강유를 겸제하며 강을 위주로 하는 소림파가 형성된다. 청나라 강희연간(일설에는 옹정연간)에 조정은 소림사에서 반청의사를 숨겨주었다고 하여 소림사를 불태우고, 민간에서 무술을 연마하지 못하게 막는다. 소림무술은 지하로 들어가고, 남소림(南少林)의 한 갈래가 된다.


무당파(武當派): 이정제동(以靜制動), 이유극강(以柔克剛)


명말청초의 황종희(黃宗羲)의 <왕정남묘지명>에 따르면, 무다아는 송나라때 인물인 장삼풍(張三豊)이 개창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장삼풍은 북송말년 무당산의 도사인데, 송휘종이 그를 불렀다. 가는 길에 도적을 만났는데, 꿈 속에서 원제(元帝)로부터 권법을 전수받는다. 다음 날 장삼봉은 혼자서 적 백여명을 죽인다. 그리고 내가권파(內家拳派)를 창립한다. 역사상 장삼봉이라는 사람이 있긴 있었다. 이름은 장전일(張全一) 혹은 장군보(張君寶)라고 한다. 삼풍은 그의 도호이다. 그는 불수변폭(不修邊幅)하여 랍탑(邋遢)도인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도교의 전선에서 아주 유명하기 때문에, 무당파의 조사로 모셔진 것이다. 이런 주장은 확실히 무당파가 자신을 신화한 겻이고,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무당산은 비록 당나라때부터 도관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진정한 황금시대는 명나라때이다. 명성조 주체가 등극하고 난 후 무당도교를 숭상하여, 민공 30만명을 모집하여, 13년의 시간을 들여, 무당산에 33곳의 건축물을  만든다. 팔궁(八宮), 이관(二觀), 삼십육암당(三十六庵堂), 칠십이암묘(七十二巖廟), 십이사(十二祠), 십이정(十二亭), 삼십구교(三十九橋)등이 있다. 건축풍격은 모두 경서에 나오는 진무수선(眞武修仙)의 이야기를 따랐고, 공부(工部)에서 설계하여 완성한다. 지금까지도 무당산 자소궁(紫霄宮) 정전의 대들보 위에는 대명영락11년(1413년), 12년성왕어가칙건(聖王御駕勅建)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다. 삼천문(三天門) 절벽 위에는 "일주경천(一柱擎天)"이라는 네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 장관이다. 천주봉의 꼭대기에 있는 태화궁(太和宮)은 금전(金殿)이라고도 보르는데, 전각내에는 장삼풍의 동상도금좌상이 모셔져 있다. 무당의 무술문파는 이 황금시대에 만들어졌다.


무당파의 무술은 내공수련을 강조한다. 이정제동, 이유극강, 이단승장(以短勝長), 이만격쾌(以慢擊快), 이의운기(以意運氣), 이기운신(以氣運身), 편어음유(偏於陰柔), 주호흡(主呼吸), 용단수(用短手)를 중요시한다. 주도적으로 공격하지 않으나, 쉽게 당하지도 않는다. 상대가 공격하면 즉시 반격한다.


소림 쿵후는 불가의 자비의 도리를 담고 있다면, 무당의 쿵후는 도가에서 연원을 두고 있다. 노자는 "일(一)", "도(道)"를 중시했고, 장자는 "광막지야(廣莫之野)", "소요유(逍遙遊)"를 중시했다. 그리하여 무당 쿵후는 비교적 짙은 상상력의 색채와 심미적인 뜻이 담겨 있다. 초식의 이름도 아주 시적이다: 영풍철선(迎風鐵扇), 기물투선(棄物投先), 순자투정(舜子投井), 홍하관일(紅霞貫日), 오운엄월(烏雲掩月), 원후헌과(猿猴獻果), 선인조장(仙人照掌)등이 있다. 그리고 무당파의 순양권(純陽拳)의 권결(拳訣)도 이러하다: 풍취하화(風吹荷花), 좌우요파(左右搖擺), 비운유수(飛雲流水), 천련부단(穿連不斷), 채보현주(踩步懸肘), 운기양성(運氣養性), 만경쾌타(慢勁快打), 환투팔법(環套八法). 한편으로 내공심법이고 다른 한편으로 형상화된 자태의 체식이다; 연꽃, 맑은 바람, 흐르는 물, 떠다니는 구름, 사람으로 하여금 무당의 도교의 경지인 공명영수와 청선지기를 보는 듯하게 만든다. 초식은 좌우로 흔들리며, 끝이 없이 이어져서 마치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셋이 나오고, 셋에서 만물이 나온다'는 현기와 천지초개의 황망혼돈의 자연의 힘을 느끼게 만든다.


아미파(峨嵋派): 역유역강(亦柔亦剛), 여옥수임풍(如玉樹臨風)


아미파는 소림, 무당과 함께 중원무공의 삼대종사라고 불린다. 특히 서남일대에 큰 세력을 지니고 있다. 아미파라는 이름은 불교의 사대명산중 하나인 아미산에서 나왔다.


아미파는 최초에 한 여자가 만든 무림문파이다. 처음에는 옥녀권법(玉女拳法)이라고 불리웠고 나중에 조사가 불문(佛門)에 귀의하면서, 다시 여자를 아미(蛾眉)라고 부르고 불교성지인 '아미산'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아서 이름지어진다. 아미파의 무공은 소림의 양강과 무당의 음유의 사이에 있다. 역유역강, 내외상중, 장단병용이며, 이약승강(以弱勝强), 진가허실(眞假虛實)을 병용하는데 능하다. 소림, 무당의 장점을 흡수하였다. 종교연원으로 보자면, 아미산은 불교이기도 하고 도교이기도 하나, 도고(道姑)가 위주이다.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 곽정의 어린 딸 곽양(郭襄)이 마음 속으로 양과를 사랑하나, 또한 양과와 소룡녀의 애정을 존중하여, 천하를 운유한다. 나중에 기회를 얻어 <구음진경>을 읽고 아미파를 창립한다. 나중에 멸절사태로 전해지고, 그녀의 제자인 기효부, 주지약등은 모두 도고이다.


그외에 아미파의 여러 초식은 여성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예를 들어 권법의 일면화(一面花), 사삽일지매(斜揷一枝梅), 군리퇴(裙裏腿), 도채련(倒踩蓮)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검법의 문희휘필(文姬揮筆), 색녀탄진(索女撣塵), 서자세면(西子洗面), 월녀추혼(越女追魂)등이 그러하다. 잠법(簪法)중에서는 폐월수화(閉月羞花), 침어낙안(沈魚落雁)이 있어 모두 완전히 여자의 자태이다. 아미파의 저명한 병기는 아미자(峨嵋刺)인데, 다른 말로는 옥녀잠(玉女簪) 즉 여자의 비녀에서 유래했다. 아미파의 특징은 역강역유, 옥수임풍같은데 있다. 여러 무술중에서 자태가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남권(南拳): 보온(步穩), 권강(拳剛), 세열(勢烈)


남권은 명나라 이래 남방에서 유행한 권법의 총칭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처음에 남소림(南少林)에서 나왔다고 한다. 명나라때 점차 독립하여 일파가 된다. 남권의 특징은 보온, 보법이 안정되며, 권강, 주먹이 강하며, 세열, 기세가 맹렬하고, 소도약, 뛰는 것이 적고, 다단권, 단권이 많으며, 천표수(擅剽手), 손이 빠르다.


남권의 종류는 아주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광동남권이다. 광동남권은 다시 '오대명가'가 유명하다.


홍권(洪拳). 소림사에서 나왔고, 전해지는 바로는 홍희관(洪熙官)이 만들었다고 한다. 홍희관은 원래 복건성 장주의 차상인(茶商)이다. 권법을 만든 후, 남소림의 홍문오조(洪門五祖)에게 전한다. 나중에 홍권은 광동으로 들어왔고, 남권중 최대유파가 된다.

유권(劉拳). 전해지는 바에 따름녀 유삼안(劉三眼)이 만들었다고 한다. 하사부(下四府)의 유생(劉生) 혹은 유청산(劉靑山)이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뇌주반도에서 전해지고 있다.

채권(蔡拳). 복건 남소림사의 승려였던 채백달(蔡伯達), 채구의(蔡九儀)가 만들었고 나중에 광동 중산 등지로 전해진다.

이권(李拳). 복건 남소림사의 승려였던 이색개(李色開)가 만들었고, 광동 신회 사람인 이우산(李友山)이 전수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광동 혜주의 이응휘(李應輝)가 만들었다고 한다. 광동 중산, 하원, 고주, 용천, 광주 등지에서 전해진다.

막권(莫拳). 전해지는 바로는 복건 남소림사의 지선선사(至善禪師)가 만들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막달사(莫達士)가 만들어, 나중에 막청교(莫淸驕, 혹은 莫淸嬌)에게 전해지고 주강 삼각주지역에 전해진다.


오대명권은 대부분 복건 남소림사에서 유래했다. 홍문 천지회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무술문파일 뿐아니라 강포파벌이기도 하다. 오대명권 이외에 광동남권에는 채리불권(蔡李佛拳), 호학쌍형장(虎鶴雙形掌), 영춘권(咏春拳), 협권(俠拳), 백미권(白眉拳), 불가권(佛家拳) 등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