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설백포(薛白袍)


장작림은 북인남상(北人南相)으로 그의 일생은 전설적이다. 농촌의 일개 수의사에서, 녹림에 들어가 향마(響馬, 마적)가 되었다가, 나중에 초안(招安)된 후,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역량을 키워서, 나중에는 마침내 일방제후의 동북왕(東北王)이 되었다.


그의 신분이 올라가면서, 그의 곁에 있는 여인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후로 6명의 부인을 취한다.


원배(原配) 조춘계(趙春桂)


장작림의 부인 조춘계는 조가묘(趙家廟)의 부자 조점원(趙占元)의 딸이다. 당시 장작림은 아직 성공하기 전이었고, 마적으로 있었다. 조춘계는 그를 따라 동서로 뛰어다녔고, 그와의 사이에 딸 장수방(張首芳), 아들 장학량(張學良), 장학명(張學銘)을 낳는다. 조춘계는 38살에 사망했는데, 이때 장작림은 이미 봉천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장례는 신민(新民)에서 거창하게 거행된다. 많은 현지의 관리들까지 친히 상복을 입고 조문을 왔다.


장작림은 풍수선생을 모셔서, 풍수길지를 선정해서 조춘계를 묻는다. 여러해 후, 장작림이 황고둔(皇姑屯)에서 폭사한 후, 역시 이곳에 묻힌다.





이부인(二夫人), 노수훤(盧壽萱)


노수훤의 부친은 현지의 서당선생이었다. 문인집안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작림이 노수훤을 마음에 들어해서 노씨집안에 청혼할 때, 노씨집안에서는 계속 회피했다. 당시 장작림의 보안대는 토비나 다를 바 없었다. 집안환경이 비교적 괜찮은 문인집안에서 어찌 딸을 그런 자에게 시집보내려 할 것인가. 장작림도 방법이 없어서, 그냥 사람을 시켜 노수훤의 집을 암중으로 지켜보게 한다. 하루는 노수훤이 집을 나섰을 때, 장작림이 사람을 보내 납치한다. 노수훤의 부친은 조급해져서 할 수 없이 장작림에게 부탁하게 된다.


장작림은 호쾌하게 부탁을 받아들여 노수훤을 구출해주고, 그후에 그는 다시 사람을 노수훤의 집으로 보내어 청혼한다. 노씨집안에서도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렵게 되었다.


노수훤은 대국관이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장작림이 죽은 후 천진에 오래 거주하며 1970년대 중반에 사망한다. 향년 구십여세이다.


삼부인(三夫人) 대헌옥(戴憲玉)


대헌옥은 원래 유부녀였다. 그러나 우연히 장작림이 그녀를 보고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대씨집안에 청혼을 한다. 그리고 대헌옥을 데려와서 독립된 작은 집을 마련해주었다. 금옥장교(金屋藏嬌)한 것이다. 반년후에 대헌옥의 남편집안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녀를 정식으로 맞이한다. 대헌옥은 성격이 불과 같아서 자주 장작림과 냉전을 벌였다. 나중에 대헌옥의 남동생이 술에 취하여, 총으로 길거리의 가로등을 쏘아서 부쉈다. 장작림은 대노하여, 그를 총살하도록 명한다. 그리하여 대헌옥은 장작림과 사이가 완전히 갈라진다.


대헌옥은 산으로 가서 니고암(尼姑庵)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하겠다고 한다. 늙은 비구니는 혼자서 결정하지 못하고 장작림에게 의견을 구한다. 장작림은 출가하는 것은 괜찮으나 머리를 깍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1년후 대헌옥은 우울하게 살다가 죽는다. 향년 31살이다.


사부인(四夫人) 허주양(許澍陽)


허부인은 하북 사람이다. 9살때 홍수로 인하여 일가족이 고향을 떠나 관동으로 갔다. 나중에 요서 신민의 한 마을에 정착한다. 허주양이 18살이 되던 해, 하루는 그녀가 우룸가에 나갔는데, 부대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마르고 피부가 흰 장교가 그녀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그녀가 급히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며칠 후 촌장이 와서 청혼한다. 장작림이 그 집의 딸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부인을 취할 때처럼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다. 직접 예물을 허주양의 집으로 보내고 허주양을 맞이한다. 그녀와 동시에 장작림의 부인이 된 사람은 삼부인 대헌옥이다.


허부인은 전후로 장작림과의 사이에 딸 장회동(張懷瞳), 장회희(張懷曦), 아들 장학증(張學曾), 장학사(張學士)를 낳았다. 장학사는 나중에 해군소장이 된다. 황고둔사건후 허주양은 전후로 천진,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다. 해방후에는 귀국하여 작은아들과 같이 산다. 생각지도 못하게 아들이 죽는 고통을 겪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90여세로 사망한다.


그녀는 일생동안 장학림으로부터 그다지 총애를 받지는 못했지만, 아주 신기하게도 자신의 노력으로 4명의 아이를 길러서 인재로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반생의 노력으로 이 말을 증명한다: 불자기자천불기(不自棄者天不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도 포기하지 않는다.


오부인(五夫人) 장수의(張壽懿)





장수의는 흑룡강장군(黑龍江將軍) 수산(壽山)의 외실(外室) 왕송암(王松巖)의 소생이다. 왕송암은 원래 창극을 했는데, 수산이 전사한 후, 왕송암은 다시 창극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려서부터 수의(壽懿)는 모친으로부터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1906년 10월, 봉천여자학당의 졸업식에 수의는 강단에 올라가서 답사를 한다. 당시 봉천독군 겸 성장이던 장작림은 첫눈에 마음에 들어한다. 그래서 사람을 그녀의 집으로 보내 청혼한다. 왕송암이 망설이고 있을 때, 수의가 바로 좋다고 응락한다. 이렇게 20살의 여학생은 43살의 장군에게 시집가게 된다.


수의는 장작림에게 시집가면서 자신의 이름 앞에 남편의 성인 장(張)을 붙인다. 장수의는 장작림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 그녀를 위하여 두 개의 집을 지어주었을 뿐아니라, 수부(帥府)의 크고 작은 일을 모조리 그녀에게 맡겨서 처리하게 했다. 장수의는 자신의 장기를 잘 살려서, 일처리를 확실하게 한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육부인을 취하지만, 오부인에 대한 총애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1928년 6월 4일, 황고둔의 폭발사건으로 장작림이 앉은 의자가 폭파되고, 3시간후 사망한다. 이때 장학량은 아직 봉천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장수의는 과감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한편으로 장작림에게 여전히 식사를 올리고 약을 다리며, 다른 한편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정탐하러 온 일본총영사부인을 상대한다. 이렇게 하여 장학량이 돌아와서 국면을 주재하도록 시간을 벌어준다.


육부인(六夫人) 마악청(馬岳淸)


1906년 장작림이 수부인을 취할 때, 그의 육부인 마악청은 겨우 1살이었다. 마악청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천진의 극단에 팔려가서 갖은 고생을 다 겪는다. 18살때 창극을 하는데, 천진에 공무를 보러 왔던 장작림의 눈에 띄어, 거두어진다. 마악청은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이런 안락한 생활에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마악청은 장작림의 모든 부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와 정식 혼인을 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래서 그녀는 하녀의 신분으로 집안을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육꾸냥(六姑娘)이라고 불렀다. 황고둔사건때 육꾸냥도 전용열차에 타고 있었다. 그래서 폭파사건으로 발가락에 상처를 입는다.


장작림이 죽은 후 23살의 마악청은 평생 재혼하지 않고, 수부인을 따라 천진, 홍콩으로 가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