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몽(蕭夢)


총애를 받지 못한 여인은 사는게 힘들다고 얘기한다. 후궁의 여인들은 총애를 받지 못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도 있다. 폐위되는 것이다. 명선종(明宣宗) 주첨기(朱瞻基)가 즉위한 후, 황후는 조부인 영락제 주체가 골라준 황태손비(皇太孫妃)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황후 호씨에 대하여 비교적 냉담했다.


명선종이 가장 총애한 여인은 손귀비(孫貴妃)이다. 당시 호황후는 명선종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지 못했고, 그저 상덕공주(常德公主)만을 낳았다. 명선종이 즉위한 후, 계속하여 손씨를 황후에 앉히고, 호황후를 폐위시키려 했다. 당시 명선종 주첨기가 내놓은 이유는 호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록 장태후(張太后)는 며느리 호씨를 매우 아꼈지만, 황가는 후손이 중요하니, 그녀도 간섭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손귀비는 이미 명선종 주첨기와의 사이에 아들 주기진(朱祁鎭)을 낳았다. 그리고 명선종은 손귀비를 특별히 총애했다. 선덕3년, 명선종은 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호황후로 하여금 황위를 사양하는 글을 올리게 한다. 이렇게 호황후는 어쩔 수 없이 폐위되어 장안궁(長安宮)으로 물러나 거주한다. 그녀는 명나라역사상 최초로 폐위된 황후가 된다.


호황후는 그래도 시어머니 장태후와는 사이가 좋았다. 장태후는 이 며느리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폐위된 며느리 호씨를 가엽게 여겼다. 그래서 자주 궁으로 불러서 얘기를 나누다 .일부 황궁의 가연때면 호씨도 참석한다. 그리고 장태후는 호씨의 위치를 손황후보다 우선하게 놓았다. 그리하여 손황후는 기분이 상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주첨기도 모친인 장태후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명선종 주첨기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주기진이 즉위한다. 그가 명영종(明英宗)이다. 당시 장태후는 아직 살아있었고, 그녀는 자주 호씨를 불러서 힘든 와중에서도 호씨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잇었다. 손황후도 비록 불만이었지만 공개적으로 시어머니인 장태후에게 대들 수가 없었다.


명영종 정통7년, 장태후가 사망한다. 가련한 호씨는 그녀를 보호해줄 사람조차 하나 없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 장태후가 죽은 후, 호씨는 아주 슬퍼하며 1년도 안되어 그녀도 사망한다. 이를 보면 이 가련한 여인은 비통한 가운데 자신의 가련한 일생을 마친 것이다.


호씨가 죽은 후, 황후의 예로 안장해주지 않고, 겨우 비빈의 예우로 안장했다. 이 결정은 명영종이 내린 것이 아니라, 명선종의 손황후, 명영종의 모친인 손태후의 생각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화풀이를 제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명영종이 친정을 한 후에 자신의 모친이 너무 심하게 했다고 여겨, 명을 내려 호씨의 황후 신분을 회복시켜주고 그녀에게 "공양성순강목정자장황후(恭讓誠順康穆靜慈章皇后)"라는 시호를 추서한다. 그리고 호황후를 위하여 능침을 만들도록 명한다.


명영종이 이렇게 한 것은 그가 호씨의 억울함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호씨에게 만일 아들이 있었더라면, 아마 주기진이 황제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기진은 호황후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친 손씨의 조치는 실로 부당했다. 그래서 자기가 권력을 잡은 후에 호씨의 사후 일을 돌봐 준 것이고, 그녀의 황후 지위를 회복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단독으로 능침도 마련해준다. 아마도 호씨는 이제 저승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