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조(篠趙)


봉각시랑(鳳閣侍郞) 장간지(張柬之), 난대시랑(鸞臺侍郞) 최현위(崔玄暐), 좌우림장군(左羽林將軍) 경휘(敬暉), 우우림장군(右羽林將軍) 환언범(桓彦範), 사형소경(司刑少卿) 원서기(袁恕己)는 우우림위상장 이다조(李多祚), 좌우림장군 이흥종(李興宗)등과 연합하여, 이현(李顯)을 황제로 옹립하기 위하여 무측천의 남총인 인대감(麟臺監) 장역지(張易之)와 사복경(司僕卿) 장창종(張昌宗)이 모반을 꾀한다고 모함하여, 금군을 이끌고 장역지, 장창종을 참살하고, 영생전(永生殿)을 포위하고, 무측천을 핍박하여 퇴위시킨다. 다음날, 무측천은 태자 이현을 감국(監國)으로 명한다. 세째날, 선양하고, 넷째날, 이현이 정식으로 등극한다. 이월 초나흘, 국호를 당(唐)으로 회복한다. 무주(武周)조정은 이로써 끝이 난다. 역사에서는 이를 신룡정변(神龍政變)이라고 부른다. 정변이후, 장간지는 한양왕(漢陽王)에 책봉되고, 경휘는 평양왕(平陽王), 환언범은 부양왕(扶陽王), 원서기는 남양왕(南陽王), 최현위는 박릉왕(博陵王)에 봉해진다. 당시에 이들을 합쳐서 "오왕(五王)"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신룡정변은 오왕정변(五王政變)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신룡정변때, 무삼사(武三思)등은 죽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삼사는 위후(韋后)와 결탁하여, 장간지등 5명에 대해 타격을 가하고 보복한다. 나중에 5명은 아주 처참하게 죽는다.


무삼사는 어떻게 장간지등 5명에게 타격을 가하고 보복했을까? 먼저, 상권(相權)에서 파직시킨다. 무상사등이 비방하는 말을 하여, 당중종 이현은 처음에 이들 공신들을 의심한다. 그래서 성지를 내려, 장간지, 경휘, 환언범, 원서기의 재상직을 파직시킨다. 그리하여 이들은 상권을 잃는다. 작위는 높지만 실질적인 권리는 없는 왕이 된다. 다음으로, 좌천, 유배를 보내어 조정에서 쫓아낸다. 나아가 이들 5명에게 보복을 가하여, 장간지는 신주사마로 나가고, 경휘는 애주사마, 환언범은 심주사마, 원서기는 두주사마로 내보낸다. 그러고도 마음에 차지 않아서, 장간지는 다시 상주(瀧州)로 보내고, 경휘는 경주(瓊州)로, 환언범은 낭주(瀼州)로 원서기는 환주(環州)로, 최현위는 고주(古州)로 보낸다.


상주는 지금의 광동성 나정시이고, 경주는 현재의 해남성이다. 그러니 5명이 쫓겨간 곳은 모두 황량한 변방이고, 가장 소슬하고 먼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장간지, 최현위는 쫓겨가는 도중에 병사한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철저히 나머지 3명의 중신을 제거하려 한다. 무삼사는 성지를 위조하여, 혹리 주리정(周利貞)에게 세 사람을 제거하도록 지시한다. 환언범은 낭주로 압송당해가는 도중에 마침 귀주(지금의 광서성 귀항시)에서 주리정을 만난다. 주리정은 바로 환언범을 밧줄로 묶게 하고는 뾰족하게 베어낸 대나무말뚝(竹樁) 위로 끌고 간다. 그리하여 살이 대나무에 찢겨서 뼈가 드러난다. 그 후에 곤봉으로 때려죽인다.


경휘는 칼로 살이 발라져서 죽는다. 더욱 포악했다. 원서기는 강제로 야갈등즙(野葛藤汁)을 마셔서 뱃속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져 손으로 바닥을 긇는데, 손톱이 다 닳고, 선혈이 낭자했다. 그 후에 대나무로 때려서 죽였다. 이제 신룡정변에 개입했던 이씨왕조를 보호하려 했던 대신들은 장간지, 최현위가 병사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은 악독하게 살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