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난릉소소생의 <금병매>에는 서문경이 음탕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결국 음란으로 죽는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난릉소소생은 아마도 명왕조의 대재자(大才子) 왕세정(王世貞)일 것이라고 한다. 왕세정의 부친은 엄숭(嚴嵩), 엄세번 부자의 모함으로 죽었다. 권력도 세력도 없던 왕세정은 부친의 복수를 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자신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역사상 유명한 <수보전>과 희곡 <봉명기>는 모두 엄숭을 크게 욕하는 내용이다. 엄수으이 아들 엄세번은 아명이 '경아(慶兒)'이고, 호는 동루(東樓)이다. 동루에 대응되는 것이 '서문(西門)'이고 아명인 '경아'를 취해서 '서문경'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엄세번은 몸이 크고 허리가 둥글며 뚱뚱하고 목은 짧았다. 거기에 애꾸눈이니 엄청 못생겼다고 할 수 있다.


엄세번은 겉모습이 못생기기는 했지만, 하늘은 그에게 총명한 두뇌를 주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났다. 한번 보면 바로 외웠다. 사서오경을 한번 보면 잊지 않았을 뿐아니라, 대명왕조의 각종 '영갑전고(令甲典故)'에도 능통했다. 설사 방대한 역사책에서라도 그는 어떤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아냈다.


가정제는 경사류(經史類)의 책을 많이 보았다. 어쩌다 잘 모르는 부분이 나타나면, 주필(朱筆)로 종이에 써서 태감을 시켜 엄숭등에게 보내어 해석을 청한다. 그런데 엄숭등 내각대신들이 가끔 전혀 모르는 내용일 때도 있다. 다행히 모르는 것이 없는 엄세번이 도와주곤 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어느날 한밤중에 가정제는 독서를 하다가 난제를 발견한다. 그러나, 엄숭, 서개등 당직 내각대신들도 그 뜻이 뭔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바로 황제가 묻는 내용을 옮겨써서, 사람을 시켜 말을 타고 상부(相府, 재상인 엄숭의 집)로 달려가서 엄세번에게 즉시 대답하다고 한다." 엄세번은 즉시 그 말이 어느 책의 몇권 몇쪽에 나오는지 얘기하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즉시 대답한다. 엄숭등은 그 책을 찾아서 펼쳐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 해석을 잘 써서 황제에게 올린다. 가정제는 잘했다고 칭찬한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답을 묻는 서신이 엄세번의 집에 도착하는데 어떤 때는 그가 술에 취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대야에 끓는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수건에 적신 후, 뜨거운 수건을 얼굴에 붙이기를 2,3번 하면, 정신이 맑아져서 붓을 들고 글을 썼는데,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한다. 그는 부르면 달려가고, 달려가면 싸우고, 싸우면 이기는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은 가정제가 새벽3시에 성지를 내려서, 엄숭과 서개등에게 어느 말이 어느 책에 나오는지 묻는다. 엄숭의 첫번째 반응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바로 이 문제를 글로 써서 궁밖의 엄세번에게 보낸다. 한창 침대에서 여자와 뒹굴고 있던 엄세번은 한번 보더니 아 이거, 알겠다. 어느 책 몇 권 몇쪽 몇째줄에 있다. 개략 이런 이런 뜻이다. 가서 찾아보년 된다. 결과는 가정제가 대만족했고, 여러 신하들이 과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하면서 상을 내린다.


엄세번은 한번 본 것을 잊지 않았고, 계모가 뛰어났으며, 대명왕조의 율법, 전고를 모두 잘 알았다.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를 엄숭에게 물으면, 엄숭은 엄세번에게 묻는다. 그러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 점은 탄복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정력이 왕성했고, 언제든지 명을 받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낮이고 밤이고 가정제가 신하들에게 묻기만 하면 바로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내각대신들이 밤에도 당번을 섰다. 대답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힘든 일이다. 엄세번은 당연히 궁밖에 있지만, 부친이 문제를 보내기만 하면 그가 즉시 해결해냈다. 언제든지간에.


황제인 가정제의 총애를 받았고, 부친인 엄숭의 비호를 받아서, 조정의 대신들은 그가 없으면 안되었다. 그러다보니 엄세번은 더욱 교만하고 호한다.


권력에 대한 갈망과 금전에 대한 욕심이 극도에 이르른다. 집안에는 금은보화와 골동품이 넘쳐나고, 좋은 논밭과 멋진 저택이 무수히 많았다. 밤이면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술에 취한다. 매일 평균 3명의 처첩을 바꾼다. 이를 통해 그는 '음수(淫數)'의 음란계산방법을 창안해 낸다. 부랑(付朗)을 본받아서, 매일 새벽에 깨면 수십명의 희첩이 발가벗고 침대 앞에 엎드려 목을 들어 입을 벌리고 있다. 엄세번의 가래나 침을 받는 타구의 대용으로.


가정제와 유왕태자의 사이는 냉담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들은 부자간이다. 그러나, 엄세번은 정상인의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태자가 그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핑계거리를 찾아서 유왕의 3년치 '세사(歲賜)'를 내려보내지 않는다. 태자는 할 수 없이 그에게 뇌물을 주었고, 그는 그제서야 재정부에 명하여 태자의 생활비를 내려보낸다,


엄숭부자는 조정을 여러 해동안 장악하고 있었고, 가정제도 점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마침내 엄숭이 멍청한 짓을 하여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가정제는 마침내 핑계를 찾았고, 1564년 엄숭은 파면된다. 문무백관들이 눈송이처럼 상소를 올려 엄세번을 탄핵하고, 그의 뇌물, 부패, 충성스럽고 좋은 신하들을 해치고, 법을 어긴 사례들을 고발한다.


엄세번은 옥중에서 그 소식을 듣고 오히려 기뻐한다. 그는 말했다: "이러면, 나에게도 살 길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늙은 여우 서계를 만났다.


서계는 여러 신하들의 이런 상소는 비록 엄숭부자의 악행을 들춰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가정제의 책임도 끌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동시에 절대로 가정제게게 대신들이 황제의 손을 빌어 엄숭부자를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여기게 해서는 안되었다.


서개는 어사들이 엄세번에게 뒤집어 씌운 모든 죄명을 뒤집어 버린다. 단지 "왕의 등급으로 저택을 지은 것" "왜구와 결탁한 것" 그리고 "외국병사를 끌어들여 반란을 도모한 것"의 3가지만 나열한다.


이들 중 엄세번이 실제로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완전히 날조이다. 다만 엄세번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가정제가 원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정치이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엄세번이 이 죄상을 들은 후, 놀라서 소리쳤다고 한다: "이제 죽었구나!"


제일귀재 엄세번은 가정제에 의하여 참형을 당한다 나이 53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