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재설역사(再說歷史)




내전총관태감(內殿總管太監) 연수(延壽). 대성현(大城縣) 사람. 당시 나이 48세. 청나라말기, 자금성내의 태감은 이미 대폭 감원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798년에는 2,675명이 있었는데, 1842년에는 2,216명, 1874년에는 1,596명, 1887년에는 1,693명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겨우 천여명만이 남았다.




저수궁수령태감(儲秀宮首領太監) 서복(瑞福). 직예(直隸) 하간현(河間縣) 사람. 당시 나이 44세. 서복은 비교적 바르게 생겼다. 만일 그가 태감이라는 것을 모르고 보면 그가 정상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최옥귀(崔玉貴). 서태후 신변의 이총관(二總管). 그는 무공이 뛰어났다. 연극도 잘 했다. 그래서 서태후의 환심을 산다. 1900년, 팔국연합군이 북경으로 쳐들어올 때, 서태후는 서쪽으로 도망치기 전에 최옥귀에게 명하여 광서제의 진비(珍妃)을 죽이게 한다.




내전총관태감(內殿總管太監) 소흥록(邵興祿), 남피현(南皮縣) 사람. 당시 나이 44세.




경사방수령태감(敬事房首領太監) 노래복(路來福) 창현(滄縣) 사람. 당시 나이 57세. 경사방은 내무부에 속해 있고, 태감과 궁녀의 상벌을 주관하는 부서이다.




장춘궁수령태감(長春宮首領太監) 이성영(李成榮), 장춘궁의 지위는 비교적 특수하다. 강희제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했고, 태극전(太極殿)은 장춘궁의 후전(後殿)이다.




태극전수령태감(太極殿首領太監) 왕서청(王瑞淸) 그의 이름에는 대청제국에 상서로운 일이 있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태극전은 자금성 내정의 서육궁(西六宮) 중 하나이다. 청나라때 여러번 수리되었다.




총관태감(總管太監) 이연영(李蓮英). 청나라말기 가장 권세있고 유명한 태감이다. 이연영이 남긴 사진은 많지 않다. 촬영사는 청나라궁중의 중요인물들을 촬영한 후, 처벌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사진에 후기처리를 했다. 그래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기분나쁘게 느끼지 않게 했다. 이연영이 나오는 이 사진에서 찍은 것은 서태후가 가마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찍은 것이고, 인물이 아주 많다. 촬영사가 하나하나 손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수정을 거치지 않은 이연영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수궁총관태감(儲秀宮總管太監) 겸화(謙和). 겸화는 이름 그대로 사람됨이 온화하고 조용했다. 그래서 태감중에 명망이 비교적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