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13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 중촌의 안동권씨 재실 내소정


2018년 5월에 기술봉사단을 따라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입석리 중촌마을에 있는 안동권씨 재실인 내소정을 만났다.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 987번지에 위치한 내소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철집이다. 본래는 기와지붕이었지만 이후 관리가 쉬운 양철로 바꾼 것이다.
출입문은 기문에 나오듯이 비해문(匪懈門)이라 이름 하는데 ‘게으르지 말라는 뜻’이다. 내소정(來蘇亭)은 ‘이상정(李象靖) 선생의 학문’을 전하는 내산(來山)에 있는 정자란 의미이다. 내소정의 내부에는 5세손 권도용(權道溶) 선생이 남긴 ‘내소정기(來蘇亭記)’와 ‘내소정원운(來蘇亭原韻)’, 등이 걸려있다.




출입문인 비해문(匪懈門)



유당 정현복(惟堂 鄭鉉福)이 쓴 비해문(匪懈門) 편액



정면에서 바라본 내소정 모습



유당 정현복(惟堂 鄭鉉福)이 쓴 내소정(來蘇亭) 편액



윤용구(尹用求)가 쓴 주련은 모르는 것이 많아 보이는 대로 올려둔다 다만 잘 아시는 분께 물어 수정할 부분은 수시로 수정하려 한다.

老栢牕前閒雲留鶴宿 창밖의 늙은 잣나무에 한가로이 구름 머물고 학이 깃드니

新笌簾外好鳥向人言 새로 난 죽순 발 밖에서 예쁜 새가 사람에게 말하네.


煙霞朱夫子武夷 연하봉은 주부자의 고향 무이산과 같고
泉石白居易赤山 산수의 경치는 백거이의 고향 적산 같구나.






[原文]
來蘇亭記
道之不明也久矣 天道有來復之機 則邦運有來蘇之望 其勢常相因 家國天下之大小雖 殊其致一也 吾門其庶 幾乎先祖南牕公 以近道之資蚤從家庭聞陶山山海之 旨訣後朿脩于大山李先生門先生與之講論經義從容 答問以江右善士推詡之公之聞望位寘居然可知矣公 旣得依歸益自刻勵不事公車之業皇皇於天顯民彝四 勿有屛五倫有畫而勉勉循循不得不措其詩文有天然 自得之趣嘗慕陶靖節自號南牕因議其出處以示責備 之意亦師範前修而自期以高世人物也跡夫一生優柔乎 詩書之府涵泳乎術藝之場淸而不激介而不嶢休休乎 天倫至樂之閒而卒歲所謂遁世無憫之君子者匪耶居 來山之陽倡蘇湖之學來山丹之鎭也二百年來時文持 世而吾門後學有淵源蹊逕而稱述不衰者公之賜也往 在高宗中葉門父老嘗就公平日讀書處起三間草屋以 寓羹墻之慕因爲墓享時具羞齊宿之所子孫兩世從與 饗之始事苟簡歲久頹圮雲仍之齎恨靡弛至民國十年 丁酉之冬合議重創適有新築未幾而見售者瓦塼堅緻 木材完好可謂稱愜矣明年月正旣望著手以三月晦告 訖扁其楣曰來蘇之亭記實也門曰匪懈從今以後後孫 益復致誠於奉先裕後之事則是擧也豈亶爲墓享齊宿 之所而已必也立的於遠大收召後進講明先師先祖之 學使陶山宗旨賴而不墜於是乎僾然如見先祖爲先師 僕乘雲輧御培風剡剡涉江之右而陟降于庭來蘇之義 皦然躍如矣惟我後昆其各致如在之誠也夫
歲在著雍閹荗之立秋日來孫道溶謹記


[해문]
래소정기
도(道)가 어두워진지 오래 되었다. 천도(天道)에 회복의 기미가 있으면 국운(國運)이 소생(蘇生)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으니 그 동향(動向)은 항상 서로 호응한다. 집안과 나라와 천하는 크고 작은 것에 비록 차이가 있지만 그 이치는 하나인데 우리 가문이 이에 거의 가깝다.
선조 남창공(南牕公)은 도(道)에 가까운 자질로서 일찍부터 가훈(家訓)을 따라 도산(陶山, 이황)과 산해(山海, 조식)의 주요한 가르침(旨訣)을 들었다. 뒤에 대산(大山) 이선생(李先生)¹⁾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는데 선생이 더불어 유학 경서의 의미를 강론하고 조용히 묻고 답하면서 강우(江右)의 훌륭한 선비로 추중(推重)했으니 공(公)의 명망과 직위를 이에 쉽게 알 수 있다.
공은 이미 의귀(依歸)를 정한 뒤에는 더욱 힘써 학문을 익히며 과거를 위한 공부를 일삼지 않았고 천도(天道)를 따르고 인륜 실천에 정성을 쏟았다. 사물(四物)²⁾로써 병풍을 만들고 오륜(五倫)³⁾을 그림으로 그려서는 부지런히 힘써 터득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았고 그 시문(詩文)은 저절로 몸에 붙은 아취(雅趣)가 있었다. 일찍이 도연명(陶淵明)⁴⁾을 흠모하여 남창(南牕)이라 스스로 호를 짓고는 인하여 그 출처를 논하여 일신을 온전히 하려는 뜻을 보였고, 또한 선현들을 본받아 스스로 세상에서 뛰어난 인물이 되기를 기약하였다.
일생을 살펴보면 시서(詩書)를 쌓아 놓은 집에서 한가롭고 여유 있게 지내고 예술의 마당에 심취(心醉)하였으며 맑고 곧았으나 지나치지 않았고 강직 했으나 모나지 않았으며 천륜(天倫)을 지키며 지극히 즐거운 가운데 한가하게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른 바 은둔하여 아무 걱정이 없었던 군자가 아니겠는가?
내산(來山)⁵⁾ 남쪽에 거처하면서 소호(蘇湖)⁶⁾의 학문을 짝했으니 내산은 단성의 진산이다. 200년 이래 시문을 유지하면서 우리 집안 후학들로 하여금 연원(淵源)을 잇도록 하고 선대의 뜻과 사업을 쇠(衰)하지 않게 한 것은 모두 공이 내려주신 것이다.
지난 고종(高宗) 중엽에 집안 부로(父老)들이 공이 평소 독서하던 곳에 삼간초옥을 지어 추모의 정성을 붙이고 인하여 묘제(墓祭)를 올릴 때에 제물을 장만하고 재숙하는 장소로 삼았다. 그 후 아들 손자 양세(兩世)를 아울러 제사를 올리게 되어 행사를 행하기에 구차하고 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무너졌으니 후손들의 한스러움이 다함이 없었다.
민국(民國) 10년(1957) 정유(丁酉) 겨울에 중건을 합의하고는 마침 신축한지 얼마 안 되어 팔리는 건물이 있어 기와가 단단하고 목재가 온전하였으니 구입하기에 적당하였다. 다음 해 정월 16일에 일을 시작하여 삼월 그믐에 공사를 마치고 그 문미에 내소정(來蘇亭)⁷⁾이라 편액을 달았으니 사실을 표한 것이며 문(門 )은 비해문(匪懈門)⁸⁾이라 하였다.
지금 이후로 후손들이 선조를 받들고 자손을 넉넉히 하는 사업에 더욱 정성을 쏟는다면 이 재사(齋舍)는 어찌 오로지 묘제를 올릴 때 재숙(齋宿)하는 장소에만 그칠 뿐이겠는가? 반드시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후진을 불러 모아 선사(先師)와 선조(先祖)의 학문을 익히고 밝힌다면 도산(陶山, 이황)의 종지(宗旨, 학문의 요지와 근본)가 이를 힘입어 실추(失墜)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선조가 선사를 모시고 구름수레를 몰고 바람을 타고서 찬연히 강우(江右)⁹⁾로 건너와 이 뜰에 강림하리니 내소의 뜻이 이에 더욱 분명할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각기 그 살아계신 듯이 추모의 정성을 바쳐야 할 것이다.
무술(戊戌, 1958)년 입추(立秋)일 5대손 도용(道溶)¹⁰⁾ 삼가 쓰다.


【주석】
대산(大山) 이선생(李先生; 1711~1781)¹⁾ : 이상정(李象靖)을 가리킨다. 한산인(韓山人)으로 안동 출생,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 문과에 급제 후 벼슬길에 나가 가주서, 연원찰방, 연일현감, 등을 지냈으나 그때마다 곧 그만두고 학문에 침잠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황(李滉)에서 이현일(李玄逸), 이재(李栽)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어 영남 이학파(理學派)의 중추적 인물로 일컫는다.
사물(四物)²⁾ : 논어 안연(顏淵)편에 나오는 내용. 공자가 안연에게 인(仁)을 위한 극기복례를 설명 하면서 그 절목으로 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動하지 말아야 한다. 등의 네 가지 해서는 안 될 일을 제시한 것을 가리킨다.
오륜(五倫)³⁾ :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로 다섯 가지 덕목을 말하는데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을 뜻한다.
도연명(陶淵明)⁴⁾ : 중국 동진말기 남조의 송(宋)대에 활동한 시인. 생활을 위해 벼슬살이를 했지만 41세에 사임하면서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은거하면서 직접 농사를 지어 생활을 이어갔던 인물이다. 62세에 세상을 떠난 뒤 시호로 정절(靖節)이 내렸기에 정절공이라 표현한 것이다. 그의 시는 후일 孟浩然, 王維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6朝 최고의 시인으로 꼽힌다.
내산(來山)⁵⁾ : 단성면 소재지의 뒷산. 석대산 줄기에서 분화되어 싸리재를 지난 후 솟았다가 다시 마당재로 낮아진 후 단성초등학교 뒤에 이르러 뭉친 산이다. 여기서 내산 남쪽이라면 단성 지역을 뜻하는 듯하다.
소호(蘇湖)⁶⁾ : 대산 이상정 선생이 머물며 학문을 전수했던 지역 이름. ‘소호의 학문’은 ‘대산의 학문’이란 뜻이다.
내소정(來蘇亭)⁷⁾ : 단성의 주산인 내산(來山)에서 이상정(李象靖) 선생의 학문을 전하는 정자란 뜻이다.
비해문(匪懈門)⁸⁾ : 비해(匪懈)는 게으르지 말라는 뜻이다.
강우(江右)⁹⁾ : 서울쪽에서 보면 낙동강 오른 쪽이니 경남지역이 된다. 여기서는 단성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도용(道溶)¹⁰⁾ : 권도용(權道溶;1877~1963)은 안동권씨 33세손이다. 안분당의 12세손. 자는 호중(浩中), 호는 추범(秋帆), 후산(后山, 허유), 면우(俛宇, 곽종석) 대계(大溪, 이승희)의 문인이다. 고금의 학문에 두루 통하였고 경남일보 주필을 지냈으며 많은 문인들을 양성하였다. 1919년 4월 경남유림대회를 통한 항일운동을 전개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문집으로 추범문원(秋帆文苑)이 있다.




내소정 원운


출처
단성면지-단성면지편찬위원회/대보사(2019.7.30.)
산청누정지-산청문화원/동양출판사(2003.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