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레자데(Scheherzade)를 흠모함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나는 지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조곡, <<세헤레자데>> 제1악장을 듣고 있다. 막 현(絃)이 이끄는 세헤레자데의 주제가 흐른다. 그녀, 세헤레자데가 페르시아의 폭군(暴君) ‘샤리아르’ 곁에서 천일야화(千一夜話)를 시작한 듯싶다. 사실 이 세헤레자데 주제는 제4악장 끝까지 면면히 흐른다. 하여간, 그녀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폭군에게 들려주었던 그 많은 야화(夜話) 가운데 하나인, ‘바다와 신밧드의 배’다. 그녀는 폭군으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하여 선정(善政)을 베풀게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먼 후세기에 온 림스키코르사코프로 하여금 자기 이름을 딴 곡을 적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작곡가보다도 한 세기 후에 온 이 수필작가한테까지 영향을 끼쳐 이토록 글을 적도록 하였다. 하여간, 그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 낸 림스키코르사코프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그녀는 참으로 존경스럽다. 다들 알다시피,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1001일간 즉, 약 3년간에 걸쳐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주었다니! 물론, 그것이 이미 아라비아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민화(民話)였다고 하나, 그걸 수집하여 머릿속에 담아둔 것도 놀랍기만 하다. 나아가, 듣고 있던 샤리아르 왕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였다면, 날이 새자마자 그 많은 ‘하룻밤 왕비’와 마찬가지로 목이 달아났을 텐데… . 더군다나, 그녀의 기지(奇智)는 여간 신비롭지가 않다.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완급(緩急)을 조절하여, 사형에 처해질 새벽녘까지 왕의 품에서 재잘재잘 끌고 갔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결말을 알려주지 않고 다음날, 또 다음날로 넘겼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즉, 여운(餘韻)을 남김으로써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갔다는 말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재치있는 말을 하였을 것 같다.
   “대왕 마마, 닭이 울어요. 이 소녀가 내일 밤에 마저 들려드릴 게요. 어서 일어나세요. 나랏일을 보셔야죠. 신하들이 궁궐 앞에 ‘우’ 모여들었어요. ”
  잠시, 세헤레자데라는 인물에 관해 소개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그녀는 재상의 큰딸이었다. 재상은 또 이번엔 어느 처녀를 왕한테 제물(祭物)로 바쳐야 하나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미 많은 백성이, 특히 딸 가진 어버이들이 폭정에 시달려 외국으로 탈출한 상태였다. 폭군 ‘샤리아르’가 본디는 폭군이 아니었다. 어느 날 사냥터에서 돌아온 왕은,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요조숙녀 같던 왕비가 흑인노예와 놀아나는 걸 보고,시쳇말로 훽 돌아 버렸다. 그 길로 여자를 증오하게 되었다. 처녀를 불러들여 하룻밤을 지낸 다음, 목을 베곤 했다. 그러한 가운데 재상의 큰딸 세헤레자데는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 고민하지 마세요. 이 딸이 갈 게요. 설마하니 죽어 나오기야 하겠어요?”
   세헤레자데는 이처럼 대담함과 지혜를 지닌 처녀였다. 그녀 여동생 ‘둔야자드’는 언니를 굳게 믿었다. 세헤레자데는 동생 둔야자드한테 미리 계획을 말했다. 왕궁에 들어간 세헤레자데는 왕에게 간청했다. 동생을 한번만 만나게 해주십사고. 왕은 그까짓 정도의 청을 거절할 것은 없다고 쾌히 승낙했다. 세헤레자데는 동생으로 하여금 왕에게 흥미로운 사실을 흘리게 했다.
   “제 언니는요, 옛날 이야기를 좔좔 꿰고 있어요. 언니한테 조르기만 하면 흥미진진한 이야기 다 들으실 수 있을 걸요.”
   이 부분도 작가인 내가 감탄하는 부분이다. 세헤레자데는 자신이 아닌,남의 입을 통해 진실을 전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끊어질 듯 이어진 1001일간의 베개맡 이야기를 매일매일 이어나갔다. 목숨이 달아날 듯 이어진 1001일. 아침이면, ‘오늘은 여기까지에요. 제2부는 내일 밤 잠자리에서 듣기로 해요. Oh my baby!’ 했다. 상상해보면, 기가 막힌 연속극이었다.
  세헤레자데가 ‘샤리아르’ 왕에게 최초로 들려준 이야기로 추정된다.

  ‘어느 부유한 상인이 장사 일로 멀리 여행을 나갔지 뭐에요.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더운 사막에서 야자나무 그늘을 발견했어요. 거기에 앉아 나귀에 매단 가죽포대 안에서 대추 열매를 꺼내 먹고 있었어요. 입에 씹히는 대추씨를 휙 뱉어버렸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마귀가 나타난 거에요. 마귀는 상인을 죽이려 들었어요. 놀란 상인은, 왜 죽이려느냐고 따졌어요. 마귀가 말했어요. “네가 뱉은 대추씨가 지나가던 내 아들의 눈에 들어가서 그 일로 내 아들이 죽어 버렸어. 그러니 너는 나의 원수야!”. 그래서 상인은 자기가 모르고 한 일이니, 제발 용서해달라고 애원했어요. 마귀는 그 애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상인의 목을 잡고 커다란 칼을 휘둘렀어요.’

   다시 이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내 가슴이 철렁하다. 바로 세헤레자데 자신을 품안에 안고 있는 샤리아르 왕을 빗대서 한 이야기 같지 않은가. 이렇듯 세헤레자데는, 하룻밤에 죽어나간 이전의 그 많은 처녀들과 뭔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녀는 이 짧은 이야기를 밤새도록 했다는 말이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까지도 다 들어 있었다. 함축의 묘미가 있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야기의 결말을 듣지 못한 왕은 내일 마저 들어야지 하며 사형집행을 늦추곤 했다. 사실 세헤레자데의 여동생, 둔야자드의 공로도 빠뜨릴 수 없다. 그녀는 왕궁에 머무르면서, 언니한테 기(氣)를 넣어줬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말을 곧잘 했을 법하다.
   “언니, 용기 잃지마. 여지껏 참 잘 해 왔잖아. ‘알라딘과 이상한 램프’ 참 좋았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도 그랬고. 이번엔 ‘어부와 악마’가 어때? ‘세 개의 능금’도 있잖아. 절대 포기하면 안돼. “
   하루 종일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머릿속으로 정리했을 그녀. 이젠 동났는데, 또 무슨 이야기로 하룻밤 목숨을 부지할까 고민했을 테지. 그러함에도 세헤레자데의 야화는 무려 1001일간 이어졌다. 내가, 세기를 뛰어넘은 내가 그녀를 흠모 아니 할 수 없다. 종이책으로 이미 적혀 있는 이야기일지라도 입으로 옮기기는 그리 쉽지 않거늘… .
  1000일이 되던 밤, 샤리아르 왕은 세헤레자데의 재능과 지식과 언변에,요즘 흔히 하는 말로, 감동먹게 되었다. 회개하고 악법을 폐하고 그녀를 왕비로 맞아들이고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참, 마지막 하루 1001일째 이야기는 왕과 왕비가 된 세헤레자데 자신들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고 들었다.
  나는, 수필작가인 나는 그녀를 무척 흠모한다. 나는 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3년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를 짜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나한테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둔야자드 같은 이도 곁에 없는 것 같고, 체력도 예전 같잖은 것 같고, 독서량도 전무(全無)에 가깝고… . 이참에 부끄러운 고백도 해야겠다. 56년 동안 살아오면서 완독(玩讀)한 글은 <<어린왕자>> 한 권뿐이다. 그러함에도 오늘따라 독자님들이 하나같이 ‘샤리아르 왕’처럼 여겨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고맙다. 그분들이 계시어, 나는 그나마도 살아남으려고 이야기를, 마치 마른 행주 쥐어짜듯 짜내고 짜내고 하니까.


*관련 음악 듣기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Scheherazade (Nikolai Rimsk...
림스키-코르사코프세헤라자데 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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